메뉴 건너뛰기

close

 

"차별 신청하면 뭐하나, 해고됐는데…."

 

이병수 민주노동당 대구시당 비정규운동본부장이 이윤호(39)씨를 두고 한 말이다.

 

농협 고령 축산물공판장 도축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이씨는 동료 19명과 함께 지난 7월 24일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 신청을 했다. 지난 7월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차별시정 신청의 첫 사례였다. 이씨는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지만 임금, 복리후생 등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9월 14일, 그에게 돌아온 건 10월 16일자로 계약 해지가 된다는 통보였다. 농협 쪽은 "도축장을 도급화하는 과정에서 업무가 소멸돼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씨는 "억울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비정규직법 제정 때부터 "노동자 개인이 차별시정을 신청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차별시정 신청 1호인 이씨의 해고 통보는 노동계의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

 

이씨의 말을 들어보자. 이씨는 2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차별신청 했다고 해직 통보, 비정규직법을 우롱하는 것"

 

 

- 농협 고령 축산물공판장 도축장에서는 언제부터 일했나?
"돼지 도축작업을 하고 있다. 2001년 9월, 1달 동안 일당을 받고 일하다 10월부터 계약직이 됐다. 농협중앙회 규정을 보면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고 5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5년 근무 뒤 퇴사된 후 다시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다."

 

- 그동안 어떤 차별을 받았나?
"도축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섞여서 같은 일을 했다. 정규직 10년차의 경우 5000만원~6000만원을 받는데, 우리는 2500만원 정도를 받았다. 또한 정규직은 상여금이 600%지만 우리는 없었다. 성과급이나 다른 복리후생도 많은 차별이 있었다."

 

- 차별 시정 신청을 했더니, 계약 해지가 된 셈이다. 
"지난 9월 14일에, 10월 16일 계약해지가 된다고 통보를 받았다. 지금까지 자동갱신이 되었다. 회사에서는 비정규직법안이 나오니까, 차별시정 회피를 위해 지난 6월 전적 동의서를 쓰라고 했다. 도급업체로 가라는 것이다.

 

농협 공판장은 돼지 잡는 라인을 지난 7월 9일 도급회사로 넘겼고, 20명의 계약직 중에서 9명은 도급 업체로 갔다. 나머지 11명은 계속 남아 있는데, 현재 환경미화, 냉동실 보조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다들 계약 만료가 되면 모두 해고 통보를 받을 것이다."

 

- 농협의 계약 해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비정규직보호법 안에 차별 시정이 있다. 하지만 회사는 차별시정 신청했다고 해직 통보했다. 이는 준공기업인 농협이 정부가 만든 법을 우롱하는 것이다. 정부를 우습게보고 비웃고 있다. 

 

개인적으로 너무 억울하다. 6년 근속을 했는데, 회사는 회유, 협박을 했다. 농협중앙회 인사개발부에서 내려와 '버텨도 안 된다. 버티면 계약 기간 만료 때 잘린다'고 했다. 우리가 농협을 상대로 무슨 힘이 있겠나."

 

- 차별 시정 신청 결과는 어떻게 됐나?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무기계약직 전환 ▲계약 연장 등의 조정안을 내놓고 있지만 회사에서 거부하고 있다. 1일 첫 심문회의를 열렸고, 3일에도 계속된다. 결과를 빨리 내놓을 것을 재촉하고 있지만 노동위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회사에서 중노위에 항소할 것 같다."

 

-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 일주일에 한번 씩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집회를 열고 있다. 대구지방노동청 북부지청에 불법 파견 진정서를 제출했다. 또한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 전직 진정을 내고 차별 시정을 신청했다. 최선을 다해 싸우겠다."

 

농협 "차별시정과 이씨의 해고는 관련이 없다"

 

반면, 농협 쪽은 "차별시정과 이씨의 해고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종천 농협 고령 축산물공판장 관리차장은 "경영차원에서 도축업무의 도급화를 추진했다"고 말했다.

 

윤 차장은 "도급회사로 가면 임금을 보장하고 고용 승계를 해주겠다고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말했다"며 "도급회사로 간 사람들은 임금이 7.8% 인상됐다"고 밝혔다.

 

윤 차장은 이어 "도급회사로 가기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수차례 면담을 했지만 이들은 정규직화만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어 "업무가 소멸됐는데, 월급을 줄 수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왜 돼지 도축만 도급화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윤 차장은 "정규직은 중간해고하기 곤란하다"며 "정년으로 정규직의 숫자가 감소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른 차별시정 회피를 위한 도급화가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서 오주학 농협 홍보팀 차장은 "이미 2000년 부천 공판장, 2001년 나주 공판장의 도축업무를 도급화했다"고 해명했다.

 

법률·노동단체 "노동조합에 차별시정 신청권 부여해야"

 

한편, 법률·노동단체 등은 이윤호씨의 해직 통보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고 "농협이 차별시정을 회피하기 위해 비정규노동자의 생존권을 박탈한 것이다"며 "비정규노동자의 분노에 찬 투쟁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이어 "차별시정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외주화나 계약해지로 차별시정을 회피하는 사용자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또한 비정규직법의 맹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9월 11일 기준으로 차별 시정을 신청한 곳은 10개 사업장, 130명에 불과하다"며 "이는 법 자체의 결함으로 인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신분 불안정 등에 기인한 것이다"고 밝혔다. 

 

권영국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노동위원회 부위원장은 "차별시정을 신청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게 되면 제재를 받게 된다"고 밝혔다.

 

권 부위원장은 "이렇게 큰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고용관계에 있는 노동자의 차별 시정 신청은 쉽지 않다는 점은 법 제정 당시부터 충분히 지적됐다"며 "당사자가 아닌 노동조합이 차별 시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차별시정, #비정규직, #농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