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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은 강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전망은 좋으나 바로 앞이 큰 도로라 시끄럽다. 자동차 소음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아내는 투덜거린다. 전날의 7시간 버스 여행 탓이었는지 아니면 간밤에 마신 캄보디아 맥주 “앙코르 왓” 때문이었는지 나는 잘 잤다. 창 밖에는 제법 굵은 비가 내린다. 그래도 아침은 때워야 하겠기에 조그마한 우산 하나 들고 가까운 식당에 들어섰다. 아침을 먹고 나니 빗줄기가 조금은 가벼워진다. 간단한 비옷을 걸치고 혼자 밖으로 나왔다.

 

비 오는 날 아침,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사람들이 뜸한 강변을 거닌다. 어제 보았던 남한과 북한 국기는 비를 맞으면서도 여전히 펄럭이고 있다. 조금 걸으니 메콩강에 어린아이와 함께 그물을 던지는 사람이 보인다. 그물에 걸린 조그마한 고기를 강둑에 던지면 어린아이가 열심히 통에 집어 넣는다. 정겨운 모습이다. 나같이 팔자 좋은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저들은 하루의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힘겨운 삶의 현장일 것이다.

 

조금 더 걸으니 왕궁이 나타난다. 이곳 캄보디아 사람은 왕을 존경한다. 웬만한 가정집과 식당에 왕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왕궁 바로 건너편에는 꽤 고급스럽게 보이는 호텔이 있다. 그리고 그 호텔 담장에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비닐 천막 안에서 열악한 생활을 영위한다. 천막 사이를 걸었다. 비가 오는 날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은 아직도 천막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하늘만 가린 천막에서 남녀가 부둥켜안은 채 시시덕거리기도 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찐 옥수수를 팔고 있다. 동남아 여행 중 즐겨 사먹는 옥수수다. 먹을 것이 마땅치 않은 곳에서는 옥수수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옥수수 두 개를 500원 정도 주고 샀다. 현지인보다 조금 비싸게 샀을 것이다. 

 

못사는 나라에서 어렵게 장사하는 사람한테는 바가지를 써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호텔에 돌아와 옥수수를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 옥수수를 먹은 후 밖으로 나왔다. 왕궁을 따라 사람 구경, 동네 구경하며 목적지 없이 마음 편하게 걷는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삶, 현재를 있는 그대로 만끽하며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승복을 입은 사람들이 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 아침 예불이라도 드리러 가는 것일까? 도로변 곳곳에는 절과 석탑이 있다. 한 석탑의 울타리에는 많은 빨래가 널려 있다. 공들여 만들어 놓은 석탑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스님들도 땅 위에 발붙이고 사는 한 의식주를 무시하지는 못하리라.

 

관광객 냄새가 물씬 풍기는 모습으로 사진기를 어깨에 걸머지고 걷는데 눈에 익은 태극기가 캄보디아 국기와 함께 나란히 걸려있는 건물이 보인다. 한국어 교육원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이다. 길을 건너니 한국어를 가르치는 또 다른 건물이 있다. 캄보디아에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베트남에서도 한국어를 배우는 베트남 젊은이가 많다. 한국어를 배워 한국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수입이 더 좋다고 한다.

 

동남아를 여행하다 보면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제법 큰 재래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목도 마르고 하여 재래시장 근처 음료수 파는 카페에 들어갔다. 이 층 옥외 난간에 앉아 재래시장을 내려다보며 오렌지 주스로 더위를 식힌다. 재래시장 앞 도로는 오토바이, 톡톡, 자동차 그리고 장을 본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로 붐빈다. 프놈펜에는 값비싼 렉서스 지프가 눈에 많이 뜨인다. 남루한 옷차림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과 렉서스 지프가 대조를 이룬다.

 

캄보디아에는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자동차도 많다. 대중 버스 대부분은 한국의 중고차라고 보면 된다. 한 잔의 주스로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한국 경찰차가 지나간다. 한국에서 수입된 중고차일 것이다. 들고 있던 카메라의 셔터를 재빠른 동작으로 눌렀다. 촬영 성공이다.

 

 

 

      
재래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옷가게, 꽃가게, 선물가게 등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발 디딜 틈이 없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냄새를 흠뻑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살 물건이 없어도 이국 사람들 틈에 섞여 그들의 언어와 표정을 만날 수 있어 좋다.

 

과일 가게에 들러 베트남에 살면서 좋아하게 된 과일 중의 왕이라 불리는 듀리안을 샀다. 과일 중에 왕이라는 듀리안은 냄새가 지독하다. 타이 여행 중 호텔 입구에 듀리안을 가지고 들어오지 말라는 안내문을 써 놓은 것을 본 적도 있다. 시장 구석에 아내와 함께 서서 듀리안을 단숨에 먹어 치우고, 배낭에 가지고 다니는 물로 입가심을 한 후 시장을 천천히 둘러본다.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는데 한 무리의 한국 아줌마 관광객들이 물건을 열심히 고르고 있다. 가게 주인도 간단한 한국말로 가격을 흥정하며 물건을 팔고 있다. 동남아 시장에서 장사를 하려면 한국어 몇 마디 할 수 있어야 하는 시대가 온 느낌이다.

 

반나절 이상을 걸었더니 배가 출출하고 피곤하다. 근처에 있는 냉방이 잘된 백화점에 들렀다. 시원하다. 방학이라 그런지 젊은 아이들로 붐빈다. 피자집을 비롯해 서양식 먹을거리가 많다. 휴대전화를 비롯해 최근 유행하는 사진기 등 젊은 세대들이 좋아할 물건이 많다. 현대식 백화점은 세계 어디를 가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맥도널드 빼닮은 규모가 꽤 큰 식당에 들어갔다. 모든 시설이 맥도널드를 연상케 한다. 맥도널드와 같은 어린이 놀이터도 있으며 실내 장식도 거의 똑같다. 생각해 보니 캄보디아에서는 맥도널드 가게를 본 기억이 없다. 유사 맥도널드 가게인 셈이다. 햄버거로 늦은 점심을 대신했다.

 

유사 맥도널드 햄버거, 그러나 맛은 진품과 다를 바 없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8월 초에 다닌 여행 기록입니다. 다음 회에 계속 이어집니다


태그:#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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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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