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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상태가 가히 좋지 않지만, 집을 나섰다. 추석 연휴라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도 몸에 좋지 않을 듯하여 자전거를 타고 오랜만에 공촌천과 들에 나가보았다.

 


비가 내려 하늘은 더 없이 청명하고 공기는 티 없이 맑았다. 그리고 들녘은 탐스러운 열매와 농작물들로 가득했다. 알차게 여문 수수도 보이고 낡은 하우스 철재를 타고 오른 콩이 주렁주렁 맺혀 있는 것도 보인다. 세찬 비바람에 참깨는 모두 한쪽 방향으로 몸을 뉘이고 있었다. 아직 캐지 않은 고구마 덩굴은 밭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고, 김장을 위해 밭 한편에는 배추와 무가 심어져 있었다.

 

ⓒ 이장연

 

공촌천변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황금빛으로 물든 논이 눈앞에 펼쳐졌다. 계양산을 등지고 자리한 들녘은 그렇게 가을의 풍요로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난 태풍과 돌풍으로 쓰러진 벼들은 농부의 바쁜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촌교 아래까지 자전거를 타고 자연형 하천공사 중인 공촌천을 둘러보고는 올라오는 길에 우리 논을 찾았다. 논두렁을 따라 가다 오랜만에 메뚜기와 마주했다. 벼 잎을 많이도 베어 먹었는지 메뚜기는 토실토실 살이 올라있었다.

 


그리고 멀리 황금 들녘에 한 노인이 보였다. 그 모습이 낯익어 살펴보니 우리 할아버지였다. 몸이 편찮으신 할머니와 함께 계시다가 어제 집에 돌아오셨는데, 점심을 드시고는 들에 나오신 듯 보였다. 7남매 자식들 장가 시집보내느라 논과 밭을 팔아 이젠 얼마 남지 않은 논뙈기를 둘러보고 계셨다.

 

논두렁을 따라 논을 둘러보시는 할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WTO, FTA 신자유주의 세계화 때문에 이 땅과 생명과도 같은 쌀, 농업을 포기하려는 이놈의 세상이 참 한심스러워진다. 평생 땅을 일궈온 농군들이 살맛나는 세상은 언제쯤 볼 수 있을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체념하고 이 땅과 쌀, 농업을 포기할 순 없다. 거센 태풍을 이겨낸 벼처럼 이 땅을 어떻게 해서든 지켜나가야 한다. 그러리라 황금빛 들녘과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거뉴스,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태풍, #땅, #쌀, #농업,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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