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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시민이 배심원으로 나선 가상 법정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가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체복무제에 대해서는 환영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시민배심원들은 "현재 국민정서를 고려해 볼 때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면서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헌법에 명시된 양심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7대4로 대체복무제에 대해 찬성의사를 밝혔다. 
 
서울기독교청년회(서울YMCA)가 20일 서울 종로구 YMCA 강당에서 제2회 시민법정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범죄인가 권리인가'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피고와 변호사, 검찰, 그리고 증인의 역을 맡은 참석자들이 나와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시민배심원 "양심적 병역 거부는 실정법 위반"

 

이날 시민법정은 양심적 병역 거부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는 가운데 '시민에 의한 분쟁해결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열렸다. 국방부는 지난 18일 종교·양심을 이유로 한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정부입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피고인 역할을 맡은 임재성(남·28)씨는 실제 '반전·평화'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당사자다. 그는 지난 2004년 입영을 거부, 병역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1년 6개월간 복역한 바 있다.  

 

재판장(한기찬 변호사)이 개정을 선언한 뒤, 임씨는 3년 전 법정으로 되돌아간 듯 진지한 목소리로 모두진술을 이어갔다. 그는 "병역 의무를 면제 받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은 아니다"면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원한다"고 '집총'을 거부한 사유를 밝혔다. 

 

이어 진행된 검사·변호인 측의 신문에서 임씨는 "누군가는 먼저 총을 내려놔야 전쟁·폭력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신념을 밝히면서 "국방의 의무가 반드시 병역의 의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임씨는 검찰(이헌·임영화) 측의 공격적인 질문에 대해 '논리전'을 펴며 양심적 병역 거부와 대체복무제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임씨는 "'대체복무제가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안보 위기를 가져온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검찰 측의 질문에 대해 "기우"라고 일축한 뒤 "소수자에 대해 관용을 베풀지 않고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 오히려 또다른 사회 문제를 일으킨다"고 맞섰다.

 

이어 임씨는 '대체복무제가 병역 기피 풍조를 불러온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국방부의 고위 관계자가 특수병원 및 노인전문시설을 둘러본 뒤 '형사처벌을 감수할 각오 없이는 대체복무를 못할 것'이라고 하더라"며 항변했다. 

 

'병역 거부가 사실상 병역 기피가 아니냐'는 검찰 측의 날선 질문에 대해서도 "병역 기피는 특권층이 돈으로 면제를 받는 것이고, 병역 거부는 신념으로써 행하는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지위를 악용한 병역 비리에 대해서는 분노한다"고 토로했다.

 

또 임씨는 '양심에 따른다는 말이 현역병은 비양심적이란 뜻이냐'는 물음에 "'양심'라는 말이 자칫 '현역병은 비양심적'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만큼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로 용어를 바꿔야 할 것"이라며 "또다른 방식으로 복무할 수 있기를 바랄 뿐 현역 군인을 폄하하려는 뜻은 전혀 없다"고 답변했다.

 

"다양한 의견을 용인해야" vs "국가의 존재가 먼저"

 

 

이날 시민법정은 대체복무제를 둘러싼 토론회를 연상케 했다. 증인으로 시민법정에 선 정진우 서울제일교회 담임목사·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과 교수와 김혜준 자유주의연대 정책실장·정창인 박사(전 재향군인회 연구위원)는 각각 대체복무제 찬·반의 편에 서서 검찰·변호사 측의 신문에 답변했다.

 

정진우 목사는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평화주의"라면서 종교·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옹호했다. 정 목사는 검찰 측이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집총을 거부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하자 "다양한 의견을 용인할 수 있는 사회가 훨씬 더 안전한 사회"라고 말했다.

 

한인섭 교수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형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면서 "국방의 의무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극히 자제돼야 한다"고 정 목사를 거들었다.

 

반면, 정창인 박사는 "북한이 무력으로 남한을 점령한다면, 양심의 자유를 지킬 수 있겠는가"라고 따져 물은 뒤 "양심의 자유도 국가가 존재할 때에 지킬 수 있는 것이다"고 못박았다.

 

김혜준 실장은 대체복무제에 대해 "병역 의무에 대체복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병역의 핵심은 목숨을 걸고 국가를 지키는 것이다. 봉사활동을 통해 목숨을 거는 경우는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정부의 방침은 시기상조"라며 "대체복무제는 군의 사기를 저하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김 실장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처벌을 두고 "제재의 수준이 가혹하다면 형량을 조절하는 것은 가능하다"면서도 "현행법 상 범법행위이므로 처벌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검찰과 변호인단(박형상·유남영 변호사)도 최후변론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검찰 측은 ▲병역 거부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는 점 ▲남북은 '휴전' 상태이기 때문에 국방의 의무가 필요하다는 점 ▲대체복무제는 아직 사회 공감대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징역 2년을 구형했다. 또 검찰은 "평화주의는 피고가 독점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 "현역병들도 평화주의라는 이름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변호인단은 ▲양심의 자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것이 전세계 흐름이라는 점 ▲소수자를 끌어안아야 국가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임씨의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 측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전과자로 만드는 것은 사회 효율의 측면에서도 바람직 하지 않다"고 밝혔다.

 

임씨 또다시 유죄... 양심적 병역 거부자 한 해 600명

 

임씨는 이날 시민법정에서도 3년 전과 같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임씨는 모의재판이 끝난 뒤 "이번 재판에는 시민배심원이 참석해 판결이 뒤집히기를 기대했으나 그렇지 못해 섭섭한 마음"이라면도 "배심원 측이 대체복무제를 찬성한다고 밝혀 만족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둘러싼 법적 문제는 지난 1961년 "입대 현역병증서를 받은 후 종교상의 이유로 입대를 거부하는 행위는 처벌받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로부터 촉발됐다.

 

그 뒤 지난 2004년 5월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양심의 결정에 따른 병역 거부는 헌법적 보호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판결을 내려 새로운 국면을 맞는 듯 했으나, 3개월 뒤 헌법재판소가 "병역법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려 논란을 원점으로 되돌려놨다.  

현재 한 해 약 600여명이 양심·종교를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고 있다.


태그:#양심적 병역거부, #임재성, #시민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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