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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은 업지만 안녕!^^"
▲ 생일축하 "할 말은 업지만 안녕!^^"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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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좀 때리지 마!"
▲ 생일축하 "애들 좀 때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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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해. 할 말은 없지만 안녕!"
"애들 좀 때리지 마!"

8살짜리 조카가 생일날 친구들에게 받은 축하인사입니다. 여러 가지 색깔을 이용해 조카 친구들이 삐뚤빼뚤 쓴 축하그림편지를 본 저는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말았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못 했어도 그만?) 총각인 제게는 조카가 둘 있습니다. 형과 여동생에게 한 명씩 있는 조카들은 동갑내기 머슴아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어쩌다 두 녀석들이 모두 집에 와 있습니다.

37살 나이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저는, 조카들 보는 즐거움이 생각보다 쏠쏠합니다.

웬 재미냐고요?

조카들은 삼촌인 제가 만만한가 봐요. 가끔씩 휴일에 늦잠이라도 잘라치면 녀석들은 제 팔과 다리를 비틀며 가만두질 않습니다(차라리 일어나라고 깨우든지ㅠㅜ). 휴일 이른 아침부터(오전 7시 30분이면 어김없지요) 괴롭히는 조카들은, 모른 척 이리저리 뒤척이며 코 고는 소리를 내면 약속이나 한 듯 저를 더욱 못 살게 굽니다.

학교 가는 날에는 지각하기 일쑤인 녀석들이 희한하게도 휴일엔 왜 그렇게 부지런도 한 지. 녀석들은 휴일로 따지면 새벽 같은 시간에 일어난 게 무척이나 억울한가 봅니다. 눈을 뜨기가 무섭게 학교를 가자, 컴퓨터 오락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 공을 차면서 놀자 등 저를 괴롭히며 누워 있는 꼴을 못 봅니다. 당최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조카들이요? 당연히 밉지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정말 밉다가도 녀석들의 짓궂은 재롱을 보면 순식간에 웃음이 터지며 너무 사랑스러워진다는 겁니다.

그렇게 조카들을 못내 귀찮아하면서도 사랑하던 저는 지난 15일 여동생의 조카 생일에 뜻하지 않던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난 선물 없어" "침을 흘리는 재영" 대체 아이들이 말하는 'M비타'는 무얼까?
▲ 생일축하 "난 선물 없어" "침을 흘리는 재영" 대체 아이들이 말하는 'M비타'는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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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만이 크고 오래 사러"
▲ 생일축하 "키 만이 크고 오래 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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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만이 크고 오래 사러."

8살짜리 생일에 축하한다는 말이 오래 살라니요? 맞춤법은 그렇다 치고, 잘 못 쓴 글자가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쓱싹~ 엑스를 그어버리면 끝입니다.

조카의 말(!)도 안 되는 돌림종이 모음집을 보며 한참을 웃다가, 문득 까마득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스쳤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때에는 몽당연필에 침을 발라가며 썼던 쪽지를 짝꿍에게 건네기도 하고, 생일축하엽서를 좋아하던 아이에게 쑥스럽게 건네기도 했습니다.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닐 때까지도 그랬지요. 나이를 먹음에 따라 연필과 색연필에서 샤프펜슬, 그리고 볼펜으로 글을 쓰는 도구가 달라졌지만요.

그나마 볼펜으로 쓴 글은 정감이라도 있지요. 스무 살 후반 언제부터인가는 뭔가를 손에 잡고 글을 쓰는 것조차 드물었습니다. 컴퓨터가 없이는 글을 쓸 수가 없었으니까요.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으로 들어가면 이메일을 쉽게 보낼 수 있고, 휴대전화만 있으면 언제 어느 때고 수시로 문자 연락을 할 수 있으니, 몽당연필을 애써 볼펜자루에 끼울 필요는 없어졌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무언가 마음을 담아 전하는 글은 손으로 종이에 꾹꾹 눌러쓴 것보다 좋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이메일과 문자로 쉽고 편하게 보내는 내용은, 받는 사람 역시도 쉽고 편하게 지우기 마련일 테지만, 손으로 보내 온 글은 쉽게 버리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제가 조카의 생일축하 돌림종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은 건.

8살짜리가 또박또박 잘도 쓴 생일 축하 글.
▲ 생일축하 8살짜리가 또박또박 잘도 쓴 생일 축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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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전학을 간다면서도 축하로 남긴 글은, 어릴 적 숱하게 겪으며 마음아팠던 제 이야기 같아서 살짝 코끝이 찡하기도 했습니다.

"10월 31일부터 못 보면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놀아. 전학 가서 미안해."

"사이좋게 놀아 전학가서 미안해"
▲ 생일축하 "사이좋게 놀아 전학가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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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앞으로 연필과 색연필 대신, 컴퓨터와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겠지요. 과연 조카는 어른이 되어서 이 돌림종이에 쓰인 글들을 보면 어떤 말을 할까요.


태그:#조카, #돌림종이, #몽당연필, #생일축하,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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