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잣나무에 오르고 계신 아버지, 올해 여든 넷이시다.
 잣나무에 오르고 계신 아버지, 올해 여든 넷이시다.
ⓒ 최성수

관련사진보기


일요일 아침 하늘이 잔뜩 흐린 것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주말 내내 비가 오더니, 개울물 소리가 귓가에 시끄러울 정도다. 올해는 여름 내내 비가 그칠 날이 없더니, 가을이 돼도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들다. 마당가의 벌개미취도, 노랑물봉선도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 괜히 배추밭 가를 서성이고, 뒷산 숲길을 걸어 가을꽃들에 마음을 빼앗기다 돌아오니, 아내가 어느새 일어나 아침 준비에 바쁘다.

"배추가 온통 벌레 먹은 잎 천지야. 그래도 김장거리는 될 거야."

나는 괜히 할 말이 없어 그런 소리를 하며 가져갈 짐을 챙긴다. 이제 아침을 먹고 나면 바로 출발해야 밀리지 않고 올라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창가에 앉아 잔뜩 흐린 하늘 너머 낙엽송 숲을 바라보는데, 어디서 부릉부릉 하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길게 빼고 내다보니,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조심스레 오토바이 한 대가 올라오고 있다. 아버지다.

아버지는 몇 해 전부터 오토바이를 한 대 사더니, 시장이나 이웃에 갈 때마다 그걸 타고 다니신다. 위험하다고 몇 번 만류를 했지만,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고 하신다. 아버지 연세가 여든넷이니, 아마 우리 마을에서 최고령 오토바이 운전자이실 게다.

"아침은 먹었냐?"

이웃 골짜기에 사시는 아버지는 어느새 아침까지 드시고, 오토바이를 몰고 오신 것이다.

"이제 먹어야죠. 그런데 웬일이세요."

내 말에 아버지는 오토바이 뒤에 실은 자루를 주섬주섬 내려놓으며 웃으신다.

"잣을 따야지. 놔두면 그냥 버리는 건데. 얼른 사다리 가지고 와라. 장갑 끼고."

아버지는 먼저 집 뒤 비탈에 올라가 사다리를 놓고 잣나무에 올라가셨다. 밑에서 바라보는 내가 아슬아슬해서 연신 '조심하세요'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정작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꼭대기서 잣을 따시는 아버지, 아슬아슬하다.
 꼭대기서 잣을 따시는 아버지, 아슬아슬하다.
ⓒ 최성수

관련사진보기


잣나무 위에서 잣송이가 툭툭 떨어지고, 나는 그저 아래에서 잣송이를 주워 비료포대에 담는 일이 고작이었다. 집 뒤 세 그루의 잣을 다 따고 난 뒤, 집 옆의 잣나무의 잣도 땄다. 아래에서 보면, 잣나무가 금방 부러질 듯 휘청거려 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마지막으로 뒷산 초입 제일 큰 잣나무 두 그루의 잣을 따고 난 뒤, 아버지와 나는 외발 수레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잣나무는 삼십 년도 전에 내가 심은 것이란다. 심을 때는 언제 딸까 싶어도 나무는 어느새 자라 이렇게 잣을 맺는 법이지."

아버지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다시 한 번 당신이 올라갔던 잣나무의 아득한 위를 바라보셨다. 거기 잣나무에는 아버지의 세월이 칭칭 감겨 있는 것 같았다.

삼십 여년 전 아버지가 심은 잣나무, 그 위에서 잣을 따신다. 삼십 년 세월이 저 나무에 감겨 있다.
 삼십 여년 전 아버지가 심은 잣나무, 그 위에서 잣을 따신다. 삼십 년 세월이 저 나무에 감겨 있다.
ⓒ 최성수

관련사진보기


아버지는 평생 나무를 심는 일을 해 오신 분이다. 숱한 산에 수많은 나무를 심으셨다. 요즘도 보리소골 집 근처 곳곳에 나무를 심으신다. 작년 가을에는 주말에 내려가 보니 마당 가 세 군데에 함박꽃나무를 옮겨 심으셨다. 내가 <한겨레신문>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함박꽃 이야기를 썼더니, 그 글을 읽으시고 함박꽃나무를 심으신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는 당신이 심으신 나무를 통해 오랜 훗날에도 당신의 모습을 자손들이 떠올릴 것이라고 믿고 계시는 것 같았다.

여든넷의 아버지가 휘청이는 나무 위에 올라가 따온 잣송이가 자루에 가득하다. 나는 마당가에 쌓인 잣송이를 바라보며, 잣송이에서 풍겨나는 향긋한 잣 내를 맡으며, 평생 나무를 심어오신 아버지의 마음을 새삼 헤아린다.

지금도 신발 끈 동이고 나서면 젊은 나보다도 훨씬 빨리 산을 오르시는 아버지, 잠시 산책을 하실 때도 낫을 들고 나서서, 나무에 감긴 칡넝쿨을 끊어주시는 아버지의 나무 사랑은 끝이 없다.

"남들이 늙은이가 주책이라고 할까봐 잣나무 올라가는 게 그렇지, 지금도 얼마든지 올라갈 힘이 있다."

아버지는 그런 말로 그날의 잣 수확을 마무리하셨다. 잣 수확이 끝난 아름드리 나무를 바라보는 아버지는 그대로 잣나무를 닮아 있다.

수확한 잣이 자루에 그득하다. 이 잣을 까 먹으며, 큰 나무같은 아버지 생각을 나는 겨우내내 할 것이다.
 수확한 잣이 자루에 그득하다. 이 잣을 까 먹으며, 큰 나무같은 아버지 생각을 나는 겨우내내 할 것이다.
ⓒ 최성수

관련사진보기


이제 몇 해 후면 보리소골에는 아버지가 심은 나무들이 제법 자랄 것이다. 집 앞에 심은 은행나무들도 봄이면 어린 아이 같은 잎을 내밀고, 가을이면 노란 물이 들 것이다. 함박꽃나무도, 자두나무도, 산벚나무나 주목도 제 이름만큼의 몸집으로 자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이리라.

집 앞 산의 낙엽송을 심은 지가 이십 년이 넘어간다. 그 나무를 심을 때, 아버지와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내가 함께 저 산을 누볐었다. 그 나무들은 이제 아름드리로 자라 숲 속을 보여주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다.

앞산을 바라보면, 그 나무를 심던 이십 년 전의 세월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것 같다. 아마 아버지는 세월을 당신이 심은 나무에 감아 간직하고 싶으신지도 모른다. 평생 나무와 벗하며 살아오신 아버지가 오늘따라 유난히 큰 나무로 여겨지는 것은, 나무의 삶처럼 아버지의 삶도 묵묵하고 넉넉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돌아오는 겨울이면 팔순의 아버지가 따 온 저 잣을 까먹으며, 결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한없이 고소한 잣처럼 깊고 그윽한 아버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숱한 세월의 풍상을 견뎌내 마침내 큰 나무로 자란 아버지라는 나무를 말이다.


태그:#잣나무, #아버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