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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마음을 흔든다. 탑도 그대로고 풍경소리도 그대로인데 빛깔이 달라지니 탑이 달리 보인다. 탑이 달리보인다고 착각을 하니 마음이 달라지고 느낌도 달라진다. 달라지는 마음을 따라 휘적휘적 지난 시간을 뒤돌아본다.


세상에 알몸 아닌 사람이 누가 있나


알몸사진이 난리였다. 그놈의 알몸이 뭔지 사람들의 관심을 단번에 흡수해 버렸다. 솔직히 말해보자. 결혼 생활을 하는 성인, 아니 결혼을 하지 않았다 해도 대다수의 성인 중 알몸을 보지 못한 사람이 몇이나 되나. 보기만 한 게 아니라 함께 알몸이 되어 뒹굴고 더듬지 않았는가? 그걸 사랑이라고 했고 생명의 신비가 이어지는 숭고한 과정이라고도 했다.


세상에 알몸 아닌 사람이 누가 있는가? 목욕탕에서 속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땀 흥건하게 부부관계를 맺으며 정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의 본질은 벌거숭이다. 벌거숭이의 몸이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기운 천 조각을 걸쳤을 뿐이다.


멀뚱멀뚱한 눈으로 보면 살갗을 덮고 있는 천만 보이지만 상상의 눈, 마음의 눈으로 보면 다 그만그만하게 보이는 게 인간의 몸이다. 관음증 환자라고 터부하지 마라.


오동통한 살집, 보들보들해 보이는 피부, 깊숙하게 감춰진 사타구니 그 사타구니 속의 촉촉함까지 다 알고 있거나 보아왔던 게 우리네 몸뚱이며 신체의 한 부분 아닌가?


다 먹어보지 않아도 짠 게 바닷물이듯 다 들여다보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의 알몸은 거기서 거기다. 조금 싱겁거나 짠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 개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관심이 더 가거나 더 좋아하는 대상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인간의 육신은 어차피 알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렷하지도 않은 알몸사진 한 장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발광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알몸이라는 사실보다 거기에 덧칠해진 이런저런 느낌이나 추측 때문은 아닐까하고 생각된다.


느낌은 마음의 작용

 

느낌이 뭐지? 같은 사물, 비슷한 현상을 보았을 때 비슷한 느낌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말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같은 현상이니 현상론적으로는 다를 게 없는 하나인데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느낌은 다른 것일까?


느낌은 마음의 작용이다. 꼭 같은 현상을 보고 있을지라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프리즘이 다르기 때문에 그 프리즘을 통해 맺히는 느낌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쯤 삼각프리즘을 통해 햇살을 분석해 본 경험이 있을 거다. 무색의 햇살을 프리즘 어느 곳을 통해서 보느냐에 따라 빨주노초파남보로 색다르게 보이는 것도 경험해 봤을 거다.


살아가면서 보게 되는 각양각색의 사건이나 일들도 이와 마찬가지다. 똑같은 사물, 똑같은 사건을 볼 때 각자가 들여다보거나 받아들이는 프리즘은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파란색이나 남색으로 보이는 사고의 프리즘을 통해서 봤을 것이며, 어떤 사람은 붉은빛으로 보이는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보고 판단했을 거다. 그러기에 같은 현상을 보고도 다르게 판단하거나 달리 느끼는 거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은 인정되어야 하지만 강요를 해서도 강요를 받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황색프리즘을 가지고 있어 세상을 온통 노랗게만 보는 언론이나 지도자가 자신의 프리즘으로 본 황색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노랗다고 주장하는 건 시대의 불행이며 자기억지다.


마음 누드가 더 역겨워

 

더 웃기고 가소로운 건 껍데기 한 꺼풀 벗겨지는 데는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마음의 꺼풀, 양심의 꺼풀, 체면의 꺼풀이 벗겨지는 데는 거의 무덤덤하다는 사실이다.


설령 신여인 누드사진이 진실이라 해도 그 누드 사진이 담고 있는 무게와 어느 정치 지도자가 들통나 어쩔 수 없이 인정한 벗겨진 양심, 위장전입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운가.


껍데기 옷 하나를 벗은 건 그렇게 단죄해야 할 죽을죄가 되는데 곱게 지켜나가야 할 사회적 규범을 조롱한 비뚤어진 양심은 문제가 되지 않는 이놈의 세상이 한탄스럽다. 그 누드사진이 사실이라 해도 벌거벗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한 모양이니 벌거벗겨진 신여인의 누드사진은 별것도 아니고 별로 볼 것도 없다.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돌아가는가? 알몸에서 알몸으로 왔고 알몸으로 돌아갈 것 아닌가? 신여인의 누드사진보다 더 리얼하고 섹시한 건 바로 자신이거나 자신이 더불어 사랑해 줄 수 있는 상대방의 몸이기 때문이다.


더욱더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입방아라도 찌어야 할 건 바로 옷 속에 감춰져 잘 드러나지 않는 마음이라고 아무 곳에서나 홀라당 누드가 되는 몰염치한 모리배들의 양심이다.


인간을 감각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가끔은 감각에서 벗어난 원초적인 면에서 봐야만 제대로 보일 때도 있다. 너니 나니 할 것 없이 이상한 느낌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건 아닌지, 황색프리즘을 가진 못된 바람에 휩싸여 두둥실 떠다니고 있는 건 아닌지를 돌아보려 하지만 마음이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문제일 뿐, 홀딱 벗겨진 몸뚱어리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게 그거임을 불 꺼진 탑을 보면서 깨닫게 된다.


태그:#누드, #알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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