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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마음의 소리가 아닐까. 마음의 씨앗이라고도 하는 말. 말 한마디로 다섯자의 몸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는 중국 속담처럼, 우리는 말 한마디로 마음이 구겨지기도, 찢어지기도 한다.

 

말로 표현하면서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좋은 말은 듣기도 좋고, 마음도 즐겁다. 그러나 말을 잘 하기는 어렵다.

 

일상을 옮겨놓은 드라마나 영화 심지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말도 다 이미 대본에 의해 전달되는 글이다.

 

실제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을 살펴보면, 매우 간단하고 똑같은 말의 반복이다. "안녕하세요?"하고 물어오면, "안녕하세요?" 앵무새처럼 말을 하게 되고, "식사 하셨나요?" 물으면 "네" 하고 대답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던지 가로 젓는다.

 

친구들과 만나도 똑 같은 말의 리바이얼이다. 학교 다닐 때 했던 이야기들을 가만히 보면 몇 십년씩 만날 때마다 하고 있다. 가족간이나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말은 간단 명료하고 대부분 할말이 없는 표정으로 식사를 하거나 TV를 본다.

 

특히 경상도 남자들의 무뚝뚝함을 이야기하는 재미난 일화가 있는데, 이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는 집안에 들어서면서부터, 부인에게 하는 첫 마디가 "밥 안 주나 ?" 그렇게 부인이 밥을 갖다주면 말한마디 없이 밥을 먹고 난 뒤, "이제 밥 먹었으니 불 끄고 자자." 라고 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우스개 소리지만, 실제 우리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을 잘 하면, 천냥 빚도 갚는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중 앞에서 말을 잘하지 못하는 편에 속하지 않을까. 요즘 세대들은 말을 잘 하지만, 40-50대 사람들은 대개 마이크 앞에 서면 말에 자신이 없어진다.  


유명한 처칠수상은 말을 보석을 고루듯이, 화려한 문장처럼 구사하여, 그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 적으면, 어떤 글보다 정확하고,설득력이 있는 글이 되었다고 한다. 

 

가끔은 멋있고 진실된 말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그래서 혹,천냥의 빚이라도 갚게 된다면, 말만으로 행운을 잡을 수 있는 데 말이다.

 

모든 글은 말을 언어로 빌려 기사화하고 편지도 쓰고 시도 쓰고 그외 책이나 법조문이, 일반문서 등도 언어로 빌려진 말의 표현이다. 이렇게 말은 생활 속에 널려있지만,우리가 쓰는 생활어로는 글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시인들은 누구도 쓰지 않은 말을 찾아 사전을 뒤적인다.

 

내가 아는 기자 한분은 "수습기자 시절 사전을 한 페이지 익히고 나면 그 사전을 찢어 꼭꼭 씹어 먹었다" 고 이야기를 털어 놓은 적이 있다. 아, 다르고 어, 달라지는 그 차이에서 문장은 잘못 되거나 오자와 비문이 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여러가지 책을 구해 읽지만 읽는 순간은 그대로 쓰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아니다.

 

시의 경우는 더욱 더 하다. 쓸 때마다 시를 쓴 적이 없는 것 같이 막막해 진다. 모 잡지사에서 '봄'에 관한 시를 청탁받은 적이 있는데, 갑자기 며칠 안에 시를 달라고 해서 어찌나 난감했는지 모른다. 몇 시간을 '봄...봄...' 중얼거리며 앉아 있었다.

  

봄이란 단어만 입안에서 맴돌고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쥐어 짜듯이 생각하니 겨우 '진달래,개나리,봄비,실버들,봄처녀,달래,냉이...' 이런 단어들만 벌떼처럼 머릿속을 웅웅거렸다. 마감일자는 다가오는데 시는 써지지 않고, 밥맛 조차 없다. 청탁을 거부해 버리면 그만인데 그런 수는 없었다.


'봄'의 뜻을 찾기 위해 사전을 뒤적여 보았다. '보'와 '봄' 사이에 얼마나 많은 낱말이 숨어살던지. 그 계단 사이에 내가 모르는 말이 이처럼 많이 살아 있다니, 말의 뜻도 모르고 써 버리는 말, 몰라서 쓰지 않던 말들 너무 많아서, 사전을 들추면서, 깜짝 놀랐다.

 

간직하고 있는 사전은 낡은 것으로 크기도 크지만 너무 오래되어서 겉표지가 다 떨어지고 테이프로 덕지 덕지 발라놓은 <국어대사전>의 '보'와 '봄' 사이에 있는 단어의 분량이, 자그마치 2400여개에 이르는 단어(이희승편,<국어대사전>, 민중서관, 1961)가 실려 있었다.

 

이렇게 큰 사전 속에는 내가 평생 한 번도 들어 본 적도 써 본 적도 없는 낱말들이 사전 속에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많은 낱말을 알고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라 늘 쓰고 있는 말을 되풀이 해서 글로 옮겨 적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전이야 말로 언제나 내가 아는 것의 것을 초라하게 만든다. 가난한 내 언어로 빚은 글과 기사들, 그리고 시들, 이렇게 속수무책 사전의 숱한 말의 몇 마디를 나는 알고 가는 것인지. 무얼 잘 안다고 쓰고 있지만, 실제 내가 아는 말만 쓰고 있다는 회의가 든다.

 

그 염소 기자처럼 나도 하루 한 페이지의 사전을 익히면 꼭꼭 씹어 먹어야 되나. 오늘따라 기사가 되지 않아서, 말도 아닌 기사를 쓰고 있다. 여전히 똑 같은 낱말로.

 


태그:#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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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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