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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 민박집을 나서서 버스를 타고 서호로 향했다. 서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큰 호수인데다가 그 근방에 둘러보고 싶은 곳이 많아서 서호 유람을 하루 만에 끝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민박집 주인의 추천과 인터넷에서 얻은 추천 여행지를 참고하여 오늘은 '뇌봉탑'과 '육화탑'을 답사하기로 하였다.

 서호의 저녁풍경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 바로 뇌봉탑이다.
 서호의 저녁풍경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 바로 뇌봉탑이다.
ⓒ 조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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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뇌봉탑(雷峰塔)은 977년에 건축되었다가 그 후 1924년에 무너져서 최근 2002년에 복원한 것이다. 뇌봉탑은 서호 남쪽의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서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오월왕비가 뇌봉산 정상에 탑을 건축하였는데, 매일 저녁이 되면 석양이 서쪽으로 져서 탑 그림자에 비치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한다. 매처학자(梅妻鶴子)로 알려진 임포(林逋)가 지은 뇌봉사(雷峰寺) 시에 '석조전촌견(夕照前村見)'이라 하였기 때문에 뇌봉탑에 비친 석양의 아름다움은 서호 10경(雷峰夕照)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뇌봉탑이 세워진 이래 천여 년이 되도록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서호에 와서 뇌봉탑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묘사하였는데, 원나라 때의 시인인 윤정고(尹廷高)는 뇌봉탑에서 바라본 석양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안개 낀 산 빛 흐릿한데
천 길 불탑 우뚝 공중에 솟아있네.
호수 위의 화려한 배는 다 돌아가려는데 
외론 봉만이 홀로 붉은 석양빛을 띠었네.
煙光山色淡溟朦 千尺浮圖兀倚空 湖上畵船歸欲盡 孤峰獨帶夕陽紅


 뇌봉탑에서 바라보는 서호의 풍경
 뇌봉탑에서 바라보는 서호의 풍경
ⓒ 조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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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봉탑에 들어가니 탑안에는 현재의 탑이 신축되기 전 구뇌봉탑의 잔재가 보관되어 있었다. 흙더미 아래에는 관광객들이 던져 놓은 동전과 지폐가 많이 널려 있었다. 이 동전에는 불자들의 돈독한 불심이 실렸거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을 것이다. 뇌봉탑의 천장을 보니 누런 금빛이었다. 실제 모두 진짜 금으로 장식하였다고 하여 놀랬다.

뇌봉탑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서호를 바라보니 서호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푸른 호수에 떠 있는 세 개의 섬이 한 눈에 들어오고, 호수의 끝과 끝을 이어 놓은 듯한 소제가 멀리서 보였다. 이곳에서 호수에 비친 석양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울 지 상상이 되었다.

 백사전의 전설이 전하는 뇌봉탑. 인간의 몸을 빌어 세상으로 하강하는 백사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백사전의 전설이 전하는 뇌봉탑. 인간의 몸을 빌어 세상으로 하강하는 백사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 조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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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비 허선과 백사(白蛇)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이 전해오는 뇌봉탑을 내려오면서 사랑 이야기보다 소동파가 만들었다고 하는 소제를 걸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소제는 소동파가 항주 태수로 있을 때에 만든 둑으로 전체 길이가 2.8킬로미터가 된다. 둑 위에는 모두 여섯 개의 다리가 있고 양쪽의 둑방 사이로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어 대단히 운치가 있었다. 호수 바람이 시원하게 불긴 하였지만 여전히 후텁지근한 날씨에 숨이 턱턱 막히고 청바지가 땀에 젖어 무겁기까지 했다.

퉁퉁거리며 가지 않겠다고 하는 아들을 달래어서 오픈카를 타고 소제를 한번 갔다가 다시 산책하듯이 걸어서 되돌아왔다. 호수 주위에는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이 여럿 있었다. 어떤 할아버지가 팔뚝만 한 고기를 낚아 올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환호하는 모습도 보였다.

 서호에서 주옥 같은 시편들을 쏟아내었을 소동파를 떠올려본다.
 서호에서 주옥 같은 시편들을 쏟아내었을 소동파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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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의 입구에는 수염을 휘날리며 먼 곳을 응시하는 소동파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푸른 호수와 짙은 녹음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서호를 소동파가 얼마나 사랑하였을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서호에 배를 띄우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얼큰한 술기운에 얼마나 많은 주옥같은 시편들을 쏟아냈을지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파육. 기름기가 많아 보이지만 맛은 아주 좋다.
 동파육. 기름기가 많아 보이지만 맛은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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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를 걷고 나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소제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항주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동파육'이 메뉴판에 보여서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주문했다.

이 음식은 소동파가 즐겨 먹었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큼지막하게 썰린 고기의 반쯤은 비계이고 반쯤은 살덩이인데 간장에 졸인 것으로 고기의 누린내가 전혀 나지 같았다. 기름기가 많아 보였지만 느끼하다거나 속이 거북하지 않았다. 아들과 나는 채소를 곁들여서 동파육을 배가 부르도록 맛있게 먹었다.

 전당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세웠다고 하는 육화탑.
 전당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세웠다고 하는 육화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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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다시 육화탑(六和塔)으로 이동했다. 육화탑은 서호의 남쪽 전단강가의 월륜산(月輪山)에 위치해 있다. 이 탑은 송나라 개보 연간(서기 970년)에 창건되었다가 북송 선화 3년에 탑이 병화(兵火)로 허물어지자 남송 소흥 연간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육화탑은 육합탑(六合塔)으로도 불린다. 이것은 불교어인 '六和敬'에서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고, 천지사방을 대표하는 '육합'의 뜻에서 나왔다고 하는 설도 있다. 탑의 구조는 겉에서 보면 13층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7층으로 되어 있다. 좁다란 계단을 따라 7층까지 올라가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말이 좋아 관광이지 이것은 마치 '극기훈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탑 안에는 매 층마다 칠보장엄(七寶莊嚴), 사천보강(四天寶綱), 삼명정역(三明淨域), 초지견고(初地堅固)와 같은 불교용어가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었다.

 육화탑에서 항주 시내를 흐르는 전당강과 대교가 한 눈에 보인다
 육화탑에서 항주 시내를 흐르는 전당강과 대교가 한 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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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봉탑에 올라가니 서호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더니, 이곳 육화탑에 올라오니 전당강이 흐르는 항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강을 가로지르는 대교도 보였다. '저 강이 정말 범람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탑을 내려오다가 보니 '돌을 손에 든 귀여운 어린아이'의 동상이 있었다. 이 어린애의 이름은 '육화'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육화의 아버지는 범람하는 전당의 조수에 휩쓸려 익사하였고, 어머니마저 전당강에 사는 용왕이 데리고 갔다. 그래서 몹시 분개한 육화가 돌을 전당강에 집어던지자 수정궁이 흔들려 살 수 없게 된 용왕이 금은보화를 주면서 화해하고자 하였으나 육화가 허락하지 않았다. 용왕은 하는 수 없이 육화의 어머니를 되돌려주고, 다시는 전당강의 조수로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 후로 항주의 백성들은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년을 기리기 위해 그가 돌을 던진 작은 산 위에 탑을 만들고 육화탑이라고 하였다."

항주를 대표하는 것이 서호라면 서호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는 것은 뇌봉탑이요, 전당강의 범람으로부터 항주의 백성들을 보호해 준 것은 육화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불탑에 전해지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 효심 지극한 소년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서호에 배를 띄우고 시를 읊었던 동파를 추억하면서 항주에서의 둘째 날은 그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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