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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둠초밥
▲ 초밥 모둠초밥
ⓒ 맛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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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우리에게 풍부한 식재료를 제공해준다. 그래, 음식을 안다는 건 계절을 안다는 것이지. 계절을 안다는 건 자연을 아는 것이고. 그래서 궁극의 미각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데 있다고 맛객은 지난날에 말했다.

이 가을 가장 맛있는 초밥을 말할 때 참치 위에 전어초밥을 올려놓는다. 가을과 함께 돌아온 전어의 맛은 가을의 맛을 담고 있기에 그러하다. 그렇다고 보편적 기준이 아니라 맛객의 미각이 그러하다는 얘기다. 초절임해서 만든 전어초밥을 맛본 자리는 초밥 명인으로서 40여년 외길 인생을 걸어 온 남춘화 선생의 '남가스시'에서였다. 그게 저 날(5일)의 일이었다.

초밥에 앞서 입맛 당긴 가지조림과 찐 땅콩

남가스시는 삼성역 현대백화점 길 건너편에서 사잇길로 들어가면 보인다. 저녁시간보다 1시간여 이른 오후 5시경, 모둠초밥과 청하 1병을 앞에 두고서 남춘화 선생과 마주앉았다. 초밥에 앞서 나온 것은 장국, 락교, 가지조림, 찐땅콩, 샐러드 등이다. 그중에 특히 맛객의 미각을 당기게 한 건 가지조림이었다.

가지조림
 가지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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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지를 요리할 때 주로 쪄서 무치지만 일본은 좀 더 다양하게 조리하고 있다. 이 음식도 그 중에 한 가지이다. 조리법을 물었다. 가지를 튀긴 후 뜨거운 물을 부어 기름을 뺀다. 가츠오부시 넣고 달인 간장에 튀긴 가지를 넣고 차게 만들었다가 먹으면 된다고 한다. 맛은 부드럽고 달착지근했다. 작년 일본에서 이 음식을 처음으로 접하고 맛에 감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제철인 찐 땅콩도 별미다. 어린 시절 주전부리했던 기억이 솟아난다. 고소한 볶음땅콩보다 구수한 찐 땅콩이 더 입에 맞는 건, 어린 시절의 미각을 되찾았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삶이 벌써 고소함보다는 구수함을 챙기는 지점에 다다랐다는 방증 아닐까. 이래서 먹는 음식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하였나 보다. 음식은 사람을 표현한다.

초밥 맛을 알려면 달걀말이를 먼저 먹어보라

도우미가 모둠초밥 접시를 내려놓는다. 재료가 지닌 다양한 색상이 마치 그림 같다. 그래서일까? 모둠초밥이 접시 위에 놓인 게 아니고 그려진 듯하다.

달걀초밥
▲ 달걀초밥 달걀초밥
ⓒ 맛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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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옛부터 그 집 초밥 맛을 알려면 달걀말이를 먼저 먹어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달걀초밥은 요리사의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이자 자부심이란 얘기로 들린다. 달걀말이쯤이야…, 하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쉬운 게 어렵고 어려운 게 쉬운 법이다. 장인일수록 기교가 아닌 단순함을 추구한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이 단순한 달걀말이가 단순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젖가락으로 집어 입에 가져갔다. 눈에 보이는 건 형체지만 잇새에 안기는 순간 형체는 사라지고 부드러움만 남는다. 아이스크림이 녹아나는 맛이다. 알고 보니 새우살과 마, 생선 등을 갈아 넣은 달걀말이는 고급요리에 속한다고 한다.

"이번 달걀말이는 특히 더 부드러운데요?"
"허허 그렇습니까? 오늘따라 입맛이 특별한 건 아니구요?"


겸손하다. 찬사에 대한 겸손함은 다시 명인들이 가지고 있는 내공으로 드러난다. 달걀초밥으로 입맛을 돋우고 나자 초밥 한 개 한 개가 특별한 맛으로 여겨진다. 광어초밥의 육질은 육안으로 보기에 도미에 가깝다. 잇새에서 느껴지는 쫄깃함과 탄력에 대한 답은, 자연산이기도 하지만 산지에서 찾는다.

광어초밥
 광어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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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어는 남해산이 가장 비싸고 맛있다. 동해산은 살이 연하고, 작고, 부드럽다. 서해 광어는 육질이 무르고 빨리 상해 가격이 남해산의 반 정도밖에 안한다. 이곳의 광어는 남해에서 숨 쉰 자연산 광어이다.

쇠고기초밥
 쇠고기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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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서 보기 쉽지 않은 초밥이 눈에 띈다. 쇠고기초밥이다. 우리보다 앞서간 초밥문화를 지니고 있는 일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맛이다. 언제나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를 찾는 선생의 실험정신이 만들어낸 결과물 중 하나이다. 안심의 부드러움에서 느껴지는 쇠고기의 풍취는 익숙한데 초밥으로 대하니 신선하게 다가온다.

참치초밥
 참치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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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초밥
 장어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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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초밥의 맛은 사르르 녹아 난 육즙이 밥을 감싸 안은 데 있다. 회와 재료가 하나 되는 데 이보다 더 나은 재료가 있을까. 하지만 참치 못지않은 게 장어초밥이다. 초밥 중에 가장 온도가 있는 장어초밥은 바로 먹어야 제맛이다. 부드러운 육질과 소스의 궁합이 절묘해야 하는 것도 맛을 살리는 비결이다.

도미초밥
 도미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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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는 꼬리가 있어야 하고 도미는 껍질이 붙어야 한다. 껍질 벗겨진 도미는 광어로 오인받기도 하지만 그보다 맛이나 시각적으로 껍질이 있어야 월등하다. 그런데 맛객의 시각을 사로잡은 건 껍질보다 육질의 색상이었다. 흙장미가 들어앉았는지 보통 붉은 게 아니다. 설명인즉, 자연산 도미이기 때문이란다. 벌써 식감부터 다르다. 쫄깃함을 넘어 꼬들하게 사라져간다.

"이건 철이 아닌데요?"
"제철에 영하 30~40도에서 급냉을 시켰다가 해동해서 씁니다."


겨울철에나 맛 볼 수 있는 방어가 보이기에 물어본 것이다. 제철 신선한 방어의 맛에는 못 미치지만, 그리워하고 있던 재료를 만난 뜻밖의 즐거움이랄까. 그런 재미의 맛이었다. 짭쪼롬함이 이색적인 맛을 선사하는 피조개 초밥으로 인해 자칫 무뎌질 수 있는 미각에 긴장감을 돌게 했다.

전어초밥
 전어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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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어초밥. 전어의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재료의 단점은 잡고 장점은 살리는 게 전어초밥 맛을 살리는 비법인 듯하다. 파와 생강이 올려진 전어초밥은 풍미가 있다. 새큼 짭쪼롬한 전어초밥의 맛에서는 계절을 느낀다. 봄철에 맛보는 두릅초밥도 그러하다. 이처럼 계절이 느껴지는 음식을 먹는다는 건 건강한 먹을거리를 챙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연어회
 연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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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깔과 맛으로 느끼는 자연산과 양식의 차이

한 병 더 가져온 술은 남았는데 초밥이 보이지 않자 선생은 도우미를 불러 연어회 5점을 가져오라고 이른다. 맨날 먹다시피 하는 연어가 뭐 새삼스러운 맛이겠는가? 맛객의 생각은 잘못되었다.

"연어 색을 보세요. 일반 연어와 다르지 않습니까?"
"어? 정말 그렇네요. 쇠고기 빛깔인데요."
"참치 색깔 나죠?"

그동안 보아왔던 연어의 주황색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이것 또한 양식과 자연산의 차이라고 한다. 어디 색상의 차이뿐일까? 물렁하고 약간 능글스런 연어의 맛과는 다르다. 잇새에 안기는 첫 맛은 식감뿐이지만 더 지나자 풍부한 맛이 우러난다. 하지만 양식 연어처럼 느끼한 맛은 아니다. 담백하면서 진하다. 오늘 연어가 말하는 듯하다. 맛의 정진은 끝이 없다고. 맛객이 모르고 있는 또 다른 자연산 연어는 무엇일까?

밖은 들어 올 때와 달리 비가 내리고 있다. 우산이 없는 맛객에게 고맙게도 우산을 챙겨주신다. 문밖까지 배웅해주시는 선생께 포즈를 부탁드렸다. 카메라에 담긴 선생의 모습은 어느새 위생복을 차려입고 계셨다. 요리사 남춘화 부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선생이… 아니 남춘화 부장이 존경스런 이유는 초밥 명인이어서가 아니다. 10여년 후 연세가 70을 넘겨도 현역을 꿈꾸는 요리사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업소 정보는 http://blog.daum.net/cartoonist/11042900 에 있습니다.



태그:#남가스시, #초밥, #전어초밥, #남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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