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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시름, 망상, 탐욕 까지도 모두다 씻어줄 것 같은 그 바닷가, 홍련암엘 다시 또 가보고 싶다.
 번뇌, 시름, 망상, 탐욕 까지도 모두다 씻어줄 것 같은 그 바닷가, 홍련암엘 다시 또 가보고 싶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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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다. 눈물이 쑥 빠지도록 가고 싶고, '아∼' 하는 신음이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를 만큼 그곳에 가고 싶어진다. 가고 싶다는 갈망에 부르르 몸이 떨릴 만큼 가고 싶고, 때 꺼리를 팔아서라도 훌쩍 다녀오고 싶어진다.

낭만파라서가 아니라, 사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곳이기에 가고 싶어진다. 입맛 다실 과자 한 조각 없어도 좋고, 입술 적셔 줄 음료수 한 잔 없어도 좋다. 벼랑 위 바닷가, 울퉁불퉁한 바닷가 바윗돌에 털썩 주저앉아 턱 괴고 바다 바라보며 그냥 그곳에 머물고 싶다.

많이도 아니고, 오래도 아닌 시간, 엄마가 호미질을 하던 짧은 뙈기밭 고랑 길이만큼 이거나, 뚝딱 밥숟가락 놓던 한 식경만큼이라도 그곳에 머물고 싶다. 끼룩거리는 갈매기 소리, 연애감정처럼 붉어진 석양 노을은 보지 못해도 철썩거리며 파도를 일구는 그 바닷가에서 서성거리고 싶다.

저만치 있던 파도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오더니 짭짜래한 소금기 풍기며 하얗게 무너져 간다.
 저만치 있던 파도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오더니 짭짜래한 소금기 풍기며 하얗게 무너져 간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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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벼랑 위, 울퉁불퉁한 바닷가 바윗돌에 털썩 주저앉아 턱 괴고 바다 바라보며 그냥 그곳에 머물고 싶다.
 바닷가 벼랑 위, 울퉁불퉁한 바닷가 바윗돌에 털썩 주저앉아 턱 괴고 바다 바라보며 그냥 그곳에 머물고 싶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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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이 있으면 더 좋고 혼자여도 좋다. 동행이 있으면 담소를 나누고, 혼자여야 한다면 사색을 할 수 있어 좋기만 할 거다. 기쁜 마음으로 보면 학춤이 보이고, 슬픈 마음으로 보면 어머니의 뒷모습,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조석으로 산발(散髮)을 하고 상청에 앉아 '애고 애고'하며 통곡을 하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그려지는 하얀 파도가 다시 또 보고 싶어진다.

폭풍이 불지 않아도 파고가 3미터 이상은 돼야 내리는 파랑주의보(波浪注意報)는 기상청에서만 내리고 바닷가에만 해당되는 줄 알았더니 마음으로도 내리고 가슴에서도 인다.

바람 없는 바닷가에서 높게 이는 파도는 사람의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바람과 파도는 불가분의 관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다. 바람이 없어도 이렇듯 철썩철썩 높은 파도를 일으키지 않는가.

동행이 있으면 담소를 나누고, 혼자여야 한다면 사색을 할 수 있어 좋기만 할 거다.
 동행이 있으면 담소를 나누고, 혼자여야 한다면 사색을 할 수 있어 좋기만 할 거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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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썩거리는 파도에 두 발을 담그면, 여름 내내 묵힌 발꿈치 때, 발가락 사이에 숨어있는 묵은 때조차 시원하게 씻어 줄듯 하지만 바닷물이 짜다는 핑계로 언저리만을 빙빙 맴돈 게 후회가 된다.

저만치 있던 파도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오더니 짭짜래한 소금기 풍기며 하얗게 무너져 간다. 몸뚱이 던지면 몸뚱이 씻어주고, 마음을 던지면 마음마저 깨끗하게 씻어줄 듯하니 다시 또 그곳에 가고 싶다.

그 사람,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지만 간절하게 108배를 올리던 남자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상을 맺는다. 무슨 사연이 있고, 무슨 바람이 있어 그토록 애절한 모습으로 기도하였는지는 몰라도 나그네가 보았으니 파도도 보았을 거다.

그곳엘 가지 못하는 마음은 벼랑위에 선 낙락장송의 외로움이다.
 그곳엘 가지 못하는 마음은 벼랑위에 선 낙락장송의 외로움이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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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이라도 하나 주워 편지 정도는 띄울 걸 그랬나 보다. 받는 이도 나그네고 띄우는 이도 나그네지만 일엽편주 돛대가 되어 두둥실 마음 띄울 걸 그랬나 보다. 훌쩍 다녀온 곳이기에 금방 잊을 줄 알았는데 부서지던 파도가 꾹꾹 불도장을 찍는다.

번뇌, 시름, 망상, 탐욕 까지도 모두다 씻어줄 것 같은 그 바닷가엘 다시 또 가보고 싶다. 파도소리가 보이고, 포말의 속삭임이 들릴 것 같은 홍련암엘 가지 못하는 마음은 벼랑위에 선 낙락장송의 외로움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8일 오후,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찍은 것입니다.



태그:#홍련암, #낙산사, #의상대, #낙락장송,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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