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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월 8일) 하루, 전 너무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시각은 새벽 3시경입니다. 피곤함에 절어 눈꺼풀이 절로 내려오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 글을 씁니다. 왜냐 하면 오늘 겪은 많은 일들을, 꼭 오늘 쓰고 싶어서입니다. 지금 쓰지 않으면 이 기분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것만 같아서입니다.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1인 시위'라는 걸 해보았습니다. 우리 동네에 있는 '2001 아울렛'(2001 아울렛도 이랜드 계열사지요)에서 정오 즈음부터 한 시간가량 이랜드 불매운동을 알리는 피켓을 들고 한 것입니다.


처음이라서 그런지 시작하기 전에 얼마나 떨렸는지 모릅니다. 누가 와서 해코지하면 어쩌나, 아는 사람이라도 지나가면 어쩌나…. 얼마나 걱정이 되었으면 1인 시위 시작하기 전에 배가 무척이나 아팠답니다. 신경성 복통, 그런 거지요. 그런데 그 모든 걱정과 두려움들, 그리고 복통까지도 '1인 시위'를 시작하는 순간 모두 사라졌습니다.


왜냐구요? 배가 아프기에는, 두려움에 떨기에는 눈앞에 보인 풍경들이 너무 안타깝고 속상했기 때문입니다. 토요일이라 그랬을까요? '2001 아울렛'에는 손님이 정말 많았습니다. 하물며 '티셔츠 5000원', '헤드 운동화 3만9000원' 이런 문구들이 이곳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저도 눈길이 갔습니다. 그러니 주말을 맞아 쇼핑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한테는 얼마나 매력 있게 다가왔겠습니까?


처음에 겁먹고 하기 싫다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어느새 하루종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 한 명이라도 제가 들고 있는 피켓을 바라보는 그 눈길이 너무 소중해서, 그 한 사람이라도 붙잡고 싶어서 하루 종일이라도 그렇게 서 있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는 정말 상상도 못했던 제 마음의 변화지요.

 

하지만 남은 다른 일정들이 있어서 한 시간 정도로 1인 시위는 끝냈습니다. 여전히 '2001 아울렛' 정문으로 들어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말이죠. 점심을 먹고 바로 '이랜드-뉴코아 1차 상경투쟁'이 열리는 여의도로 갔습니다. 제가 오늘 저녁에 다른 일정이 있는 관계로 '여의도' 집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오늘 제 이랜드 투쟁을 마무리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 이럴 수가요! 갑자기 시커먼 차가 움직이더니...

 

저녁 일정을 마치고 밤 11시 즈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홈에버 상암점에 들렀습니다. 그곳에 있는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려는, 정말 소박한 마음에서 들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내가 도착하기 전에는 조용했다던 그곳이, 내가 도착한 바로 그 순간 무척이나 긴장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었습니다. 도착한 그곳에는 '천막 농성장'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밤이라서 그랬을까요? 전경들 숫자는 여느 때보다 많아 보이고, "지금 이곳에 천막을 설치한 것은 불법이니 어서 해산하기 바란다"는 경찰 쪽 마이크 소리가 무척이나 위협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아직도 전경만 보면 지레 겁먹는 나는 얼른 뒤쪽으로 피해 주변 정황을 살폈습니다.


아∼ 이럴 수가요! 갑자기 시커먼 차가 움직이더니 사람들을 향해, 천막 농성장을 향해 거침없이 물대포를 뿜어대기 시작합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나한테는 꼭 '대포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데도 그 물줄기가 뿜어대는 '힘'은 엄청나 보였습니다. 천막은 그 물줄기 앞에 흐늘흐늘해지고 그 강한 물줄기를 맞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그 거대하고도 강력한 물줄기는 꼭 진짜 '대포' 같기만 했습니다. 그 순간에는 '물'이 더는 '물'이 아니었습니다. 힘없는 우리 노동자들을 무너뜨리는 총구나 다름없었습니다. 갑자기 무서워졌습니다. 만약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20년 전 어느 곳이었다면 저 물대포는 진짜 대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월드컵 경기장을 찾은 많은 시민들이 물대포가 사람들을 쏘는 그 광경을 열심히 '구경'하는 가운데, 그 주변을 서성거리던 내 눈에도 물기가 맺혔습니다. 그 물줄기를 함께 맞을 용기도 없고, 그 물줄기를 막을 힘도 없고, 그렇다고 얼른 외면하고 집으로 돌아갈 기운도 없는 나. 그런 나를 지탱하고 서 있으려니 저절로 '눈물'이 나온 것이겠지요.


이렇게 떨어진 곳에서 들어도 저렇게 물대포를 내뿜는 소리가 큰데, 혹시라도 저 물대포를 맞아 상처 입은 사람들은 없는지, 전경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아 다친 사람들은 없는지, 가까이서 확인할 용기도 없는 난 멀찍이 떨어져서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하철로 들어가면서 난 다시 한 번 크게 놀랐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 그 지독한 시간은 끝이 났습니다. 천막 농성장은 물대포의 폭격에 하릴없이 무너지고, 비를 흠뻑 맞은 사람들은 폭력경찰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그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몸이 굳어버린 채로 그 참혹한 장면들을 바라만 보던 나도 지하철을 타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지하철로 들어가면서 난 다시 한 번 크게 놀랐습니다. 물을 흠뻑 맞은 채로 지하철로 들어오는 '파란 옷'을 입은 이랜드 노조원들 얼굴이 무척 밝은 것을 본 때문입니다. 그 험악한 광경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난 새파랗게 질렸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일을 겪은 아주머니들은 씩씩한 얼굴들로 계단을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랜드, 뉴코아 가지 말아 주세요. 저희를 도와주세요" 하고 맑은 목소리로 외치면서 말이죠.


난, 그 언니들을 보면서 '기쁘게' 무너졌습니다. 난 그 언니들도 나처럼 겁먹었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는데…. 물대포를 온몸으로 막아낸 우리 언니들은 겁을 먹기는커녕 힘차고 당당하기만했습니다.


내 권리를 찾기 위한 정당한 행동을, 옳은 일을 하고 있기에 그 시커먼 전경들도, 내일 아침 등짝을 살펴봤을 때 어쩌면 멍이 들었을지도 모를 만큼 강력하게 내뿜던 그 물대포도 전혀 두렵지 않았던 겁니다.

 

난 오늘 하루. '이랜드 투쟁' 때문에 세 곳을 거쳐야 했습니다. 2001 아울렛, 여의도, 그리고 홈에버 상암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고, 힘든 시간들도 있었지만 그 시간들을 마무리하고자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기분이 좋습니다.


그건 오로지 파란 옷 입은 '스머프' 우리 언니들, 바로 이랜드 노조원들의 밝고 힘찬 얼굴을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 분들의 씩씩하고 힘찬 얼굴이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망일 겁니다. 그리고 겁 많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희망이자 힘찬 기운이기도 합니다.v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은평시민신문(www.ep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랜드, #비정규직, #홈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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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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