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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나갔다가 우연히 시위대를 목격했다.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이랜드 그룹 소유의 이천일 아울렛 빌딩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시위는 그 분위기가 통상적인 시위와 사뭇 달랐다. 노조원들이 매장 앞에서 단순히 이랜드 그룹을 성토하는 것이 아니라 사찰행위를 규탄하는 격렬한 항의의 자리였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니 그들이 그렇게 흥분할 만도 했다. 그들은 시위 참가자들을 사찰하는 사람을 데려오라고 난리였다. 

 

   

처음부터 보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노조원들은 평화적으로 이천일 아울렛 빌딩 앞에서 집회 및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측 요원이나 이랜드그룹 직원으로 보이는 어떤 이가 카메라로 노조원들을 촬영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을 발견한 노조원들이 그에게 따진 것 같았고, 그는 잽싸게 아울렛 매장 안으로 도망친 것이었다. 흥분한 노조원들은 그를 잡기 위해 매장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고, 경찰은 전경을 동원하여 필사적으로 막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쌍방 간에 폭행과 욕설이 난무했다.

 

어떤 노조원은 자신을 폭행한 전경의 모자를 들고, 그 모자에 적힌 전경의 이름을 마이크를 통해 공개하면서 흥분하고 있었다. 참으로 어이없으면서도 예전의 쓰라린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씁쓸한 모습이었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녔거나 노동운동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행위가 하나 있다. 경찰이나 학교, 혹은 사용자측에서 노조원들을 몰래 촬영하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망원렌즈를 동원하여 시위 참가자들을 몰래 촬영하였고, 나중에 시위참가자들을 협박하거나 구속하는데 이를 이용하곤 했다. 시위참가자들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며 아연실색하기도 했고, 구속될지 모른다는 무언의 헙박에 시달리곤 했다. 참으로 신사답지 못한 행위요, 비겁한 행위이며 굴욕적인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왜 그리 떳떳하지 못한지. 왜 그리 비겁한 방법을 동원하는지. 사찰이라는 단어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요즘에도 버젓이 행해지는 걸 보니 그저 입맛이 쓰디 쓸 뿐이다.

사람이 사람을 감시하고 협박하는 행위는 반인간적이요 반문명적인 행위이다. 우리나라는 법치주의 국가이니 법리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하면 된다. 그런데 왜 불법적인 행위를 자행한단 말인가. 만일 이랜드 측에서 사찰을 자행하였다면 이는 명백히 초상권 침해에 해당되는 일이다. 또한 경찰 측에서 사찰을 자행하였다면 이는 공권력 남용에 해당되는 일이다.

떳떳하게 했으면 좋겠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서로의 차이를 냉정하게 인정하면서 페어플레이를 했으면 좋겠다. 사찰이라니! 문명국가에서 사찰을 하다니. 도대체 그 언제쯤 사찰이란 용어를 안 듣는 날이 올까? 돌아가는 길에 바라본 이천일 아울렛 앞은 조금 전의 격렬함이 사라진 평화의 거리였다. 이런 평화만이 왔으면 좋으련만….  


태그:#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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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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