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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공고 운동장
 동호공고 운동장
ⓒ 동호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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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유치원부터 같이 다녔던 20년 지기 동네 친구 놈의 전화였죠.

"나, 며칠 전에 고기집 오픈했다. 고기 먹으러 와라."

일요일 오후에 받은 전화 치고 참 생뚱맞기 그지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해서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청담동 근처에 열었다는 그 녀석의 고기집으로 향했습니다. 평소 그 녀석이 좋아하던 매운 갈비찜을 주 메뉴로 삼았더군요. 서른도 되기 전에, 동업이라고는 하지만 강남에 깔끔하고 아담한 고기집을 낸 녀석을 보니 왠지 뿌듯해지더군요.

무턱대고 친구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다름 아니라 그 친구가 동호공고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아, 요즘은 학력 위조 처벌의 시대니 정확히 얘기해야겠군요. 네, 그 녀석은 동호공고 자퇴생입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10대 후반부터 생업에 뛰어든 녀석이 근 10년만에 청년사업가가 됐으니 그 정도면 성공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마이뉴스>의 동호공고 관련 기사를 접하면서 친구 녀석과 함께 몇 가지 상념이 스쳐갔습니다. 전 10살 때까지 옥수동에서 살았고, 그 이후 군대가기 전까지 다녔던 교회 역시 동호공고 인근이라 그 학교에 대한 추억이 적지 않거든요.

공고를 졸업한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다

기사를 처음 접하고 처음엔 의례적인 아파트 주민들과 학교 측의 갈등이라는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동호공고 학생들을 직접 취재한 기사를 읽고 나서야 문제의 심각성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더군요. 문득 다른 공고를 졸업한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90년대를 전후한 동호공고 주변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동호공고가 설립된 92년엔 분명 지금과 같은 홀대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동호공고가 걸쳐 있는 성동구 옥수동과 약수동에 재개발 붐이 시작됐던 때거든요. <서울의 달>에 출연했던 채시라, 한석규, 최민식씨가 그 동네에 직접 촬영 차 왔던 것이 94년이었으니까요. 매봉산과 인접해 있고 너른 운동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근 주민들이 생활 체육을 즐기기에 딱이었더랍니다.

저도 10대 시절이던 90년대까지 교회 사람들과 종종 동호공고를 찾았습니다. 지금이야 중·고등학생들이 PC방으로 몰려가고 인라인스케이트나 놀거리들이 많이 생겼지만 90년대 중반은 농구공 하나면 그만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도 동네는 다르지만 주말엔 교회 친구들과 함께 동호 공고의 농구 골대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더랬죠. 네, 높은 지대에 위치한 탓에 오르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공기도 좋고 물도 그냥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깨끗했었습니다.

예전에 한 번 둘러 본 적이 있는 남산타운 아파트는 인근 아파트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더군요. 아직도 동호 공고 아랫자락에 살고 있는 그 친구 녀석 집에 들르느라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과연 '서울의 달' 시절이 있었느냐 싶을 정도로 깔끔하고 쾌적한 아파트 단지였습니다.

기존 교육환경 무시하는 '동호공고 사태'

동호공고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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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대교 바로 건너편이고 강북 중에서도 교통의 요지인 만큼 땅값 꽤나 나오겠구나, 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죠. 상계동을 비롯한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의 서울 재개발 붐을 이어받은 곳이 바로 옥수동, 약수동 일대니 만큼 서울의 변화상을 집약해 놓은 곳이거든요.

하지만 문제의 발단이 초등학교 건립 건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씁쓸함이 더해졌습니다. 이전까지 이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은 인근 금옥초등학교와 옥수초등학교, 장충초등학교, 금호 초등학교 등지로 통학을 했었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도보로 가기 만만치 않은 거리거니와 어른들과 함께 마을버스나 버스를 타고 통학하기도 버거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3000세대 이상의 아파트 단지를 건립할 때 초등학교를 세워야 한다는 의무를 비켜가기 위해 편법으로 시공사 측에서 1700세대씩 지었다는 사실은 혀를 내두르게 하더군요. 5000세대가 넘는 아파트를 지으면서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은 편의주의적 발상이 작금의 문제를 낳은 발단이었으니까요.

더욱이 인근 금옥초등학교를 인문계 고등학교로 재건립하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보도를 접하고서는 문제가 꽤나 근본적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일련의 사태들이 기존의 교육 환경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뿌리 깊은 학벌 위주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무턱대고 공고 무시하는 비정상적인 한국 사회

다시 친구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제 20년 지기 친구 놈은 대학은 물론 공부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대학생이 많아질지 몰랐죠, 저도, 제 친구도요. 어찌 보면 제 친구 놈은 소위 말하는 '날라리'였을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교를 마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친구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고 남들에게 절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물려주지 않았음에도 남들보다 빠른 나이에 차도 사고, 결혼도 내년 안에 할 예정이고요. 네, 이것저것 생각 많고 글쟁이로 살아가는 저보다는 사회적인 기준에서 훨씬 성공한 삶일지 모릅니다.

청년사업가가 별 것 있나요? 자기 사업 열심히 꾸리며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공부를 못해서라기보다 '안'하는 친구들을 학창시절에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기준, 그거 별 거 아니지 않나요. 학창시절에는 성적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다가 성년이 되면 학력이라는 기준을 따지려는 한국 사회의 비이성적인 프레임이 문제 아닐까요.

실업계 고교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나 무시도 분명 한몫을 하고 있겠지요. 학벌 검증하는 시대, 학력에 광적으로 반응하는 사회라고는 하지만 무턱대고 공고를 무시하는 이 한국 사회가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는 것은 분명합니다.

열심히 사는 친구들 위해 발전적 방향으로 일단락 됐으면...

공고를 졸업한 제 또 다른 죽마고우는 일찍 군대를 제대하고 지금 수입 가전 회사에서 대리 직함을 달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예쁜 아가씨 만나서 일찍 결혼하는 것이 급선무인 평범한 샐러리맨이죠. 개인적으로 이번 동호공고 사태가 제 친구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 같아 남의 일 같지 않고 기분이 나쁘기까지 합니다.

하루 빨리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됐으면 합니다. 우선 폐교 결정은 철회됐다니 다행이고요. 방송특성화 고등학교로의 전환이 얼마나 빨리 이뤄질지 모르겠지만 실업계 고교에 대한 편견과 학벌 위주 사회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동호공교 사태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일단락됐으면 하네요. 그게 열심히 살고 있는 제 친구들을 위한 길이기도 할 것 같고요.


태그:#동호 공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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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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