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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우성아파트 부녀회원과 주민 10여 명이 아파트 정문에서 관악푸르지오아파트 아이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지난 1일, 우성아파트 부녀회원과 주민 10여 명이 아파트 정문에서 관악푸르지오아파트 아이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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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부녀회가 초등학생들이 등교를 하며 떠든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통학로를 폐쇄하는 일이 발생했다.

문제가 일어난 곳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우성아파트(10개동 2314세대, 99년 12월 준공). 이 아파트 부녀회는 인근 봉천초등학교가 개학한 지 3일째인 지난달 29일, 이 학교 초등학생 약 800명이 통학로로 이용하는 우성아파트 후문을 폐쇄했다. "초등학생들이 통학을 하며 소란스럽고 아파트 시설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우성아파트 부녀회가 모든 학생들의 출입을 막는 건 아니다. 자신들 아파트에 사는 370여 명의 봉천초등학교 학생들은 선별해서 무사히 통과시킨다. 그러나 바로 길 맞은편 관악푸르지오아파트(22개동 2496세대, 2003년 12월 준공)에 살고 있는 400여 명의 학생들은 '통행불가'다.

남의 집 앞마당 지나는 것 자체가 나쁜 짓?

우성아파트 부녀회는 관악푸르지오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들이 자신들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직접 '보초'를 서기도 한다. 지난 1일, 우성아파트 부녀회원 10여 명은 마스크로 자신들의 얼굴을 가린 채 아파트 정문에서 관악푸르지오아파트 아이들의 출입을 막았다.

이들은 "이웃에게 고통 그만!" "(아파트) 후문은 통학문이 아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기도 했다. 많은 초등학생들과 다른 지역 주민들은 이 광경을 말없이 지켜봤다. 이때 양쪽 주민들의 충돌을 우려해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우성아파트 부녀회의 등굣길 폐쇄로 인해 현재 관악푸르지오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봉천시장을 거쳐 약 30분 정도 걸어 등교를 하고 있다. 우성아파트 후문을 통하면 10분이면 등교가 가능하다. 부녀회의 후문 폐쇄로 아이들은 등하교에 3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는 셈이다.

등교길 폐쇄 이전 관악푸르지오 학생들의 통학로(파란색)과 폐쇄 이후 통학로(붉은색)
▲ 멀어진 등교길... 등교길 폐쇄 이전 관악푸르지오 학생들의 통학로(파란색)과 폐쇄 이후 통학로(붉은색)
ⓒ 김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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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성아파트 부녀회 쪽은 물러설 의향이 없다. 우성아파트 부녀회로 활동한 홍모씨는 "학생들은 남에게 피해주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라며 "조금만 돌아가면 될 텐데 자기 편하자고 남의 집 앞마당을 지나가는 것 자체가 나쁜 짓"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홍씨는 "관악푸르지오에 사는 학생들이 복도를 뛰어다녀 시끄럽고, 나무를 꺾거나 요구르트를 훔쳐간 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학생이 최우선이라면 관악푸르지오아파트를 지을 때 학생들을 배려한 단지 내 통학로를 만들었어야지, 단지 내 조경에는 신경 쓰면서 왜 통학로는 안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결국 우성아파트 부녀회와 관악푸르지오 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골이 깊어졌다. 길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지만 '이웃사촌'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관악푸르지오 학부모들은 최근까지 아침마다 "아이들과 함께 등교하자"는 안내 방송을 내보냈다.

관악푸르지오에 사는 학부모 이호강(35)씨는 "아이들의 등하교 시간 30여 분을 못 참는 우성아파트 주민들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그들도 우리 아파트의 놀이터·농구장 등을 이용하면서 왜 아이들 통학로는 폐쇄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물론 우성아파트의 모든 주민들이 부녀회의 결정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우성아파트 학부모대표 주노임(38)씨는 "요구르트 도난사건이 관악푸르지오아파트 아이들 짓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일 아니냐"며 부녀회의 통학로 폐쇄를 비판했다. 주씨를 통해 "우성아파트 주민의 1/10이 서명에 참여한 가운데 입주자 대표 회의를 거쳐 지난 4일 부녀회가 해체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통학로 이용을 반대하지 않는 우성아파트의 한 주민은 "부녀회에서 관악푸르지오가 우성 아파트가 같은 평수인데도 아파트 가격이 1억 원 이상 차이나는 것을 시샘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면서 "부녀회 회원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아서 초등학교 학부모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학교를 지어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이 관악푸르지오 단지 내에 걸렸다.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학교를 지어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이 관악푸르지오 단지 내에 걸렸다.
ⓒ 김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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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관악푸르지오 주민들은 결국 '푸르지오 통학로 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 초등학교를 새로 하나 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근 이들은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학교를 지어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을 아파트단지 내에 걸기도 했다.

또 두 아파트 주민들의 갈등을 틈타 '통학버스 탈 학생 모집'이라고 적힌 유인물을 대우아파트에 부착하는 여행사도 생겼다.

"친구들과 함께 다니고 싶어요"

이번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봉천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파트의 학생들이다. 초등학생들이 멀리 돌아서 갈 때 거치는 봉천시장에는 변변한 인도조차 없다. 이 길에서 만난 봉천초등학교 5학년 이소연·김수진(가명)양은 이렇게 말했다.

"우성아파트 친구들과 같이 못 다녀서 아쉬워요. 우성아파트 아이들이건 관악푸르지오 아이들이건 떠드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길이 있으니까 가는 건데…. 잠깐 시끄러운 것 때문에 통학로를 막는 건 너무 심해요."

우성아파트에 사는 김은지(가명·6학년)양은 "등교시간에는 마스크 낀 아주머니들이 관악푸르지오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을 막고 있어요"라며 "(그 때문에) 저학년들을 관악푸르지오아파트 근처까지 데려다 주는 선생님도 있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다니는 일방통행길과 봉천시장길은 인도가 없는데다 차가 많아 위험해 보였다.
 학생들이 다니는 일방통행길과 봉천시장길은 인도가 없는데다 차가 많아 위험해 보였다.
ⓒ 김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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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봉천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우성·푸르지오아파트 학생들은 "친구들과 함께 다니고 싶다"는 말로 자신들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양쪽 아파트의 어른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태그:#봉천동, #봉천초, #대우, #우성, #통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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