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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중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화려한 문물을 바탕으로 세계로 널리 뻗어나간 나라가 있다. 바로 한반도의 작은 땅에 있었던 백제로, 덩치는 작지만 문화대국으로 당시 일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우리가 학교를 다니면서 모두 배웠던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백제의 역사를 말하라면 우선 머뭇거리기 마련이다.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그 자료가 적어 가야와 함께 '잃어버린 왕국'이라는 별명이 있는 백제. 그러나 이곳에 오면 백제의 역사가 한눈에 펼쳐진다!

백제역사문화관의 모습. 한국전통문화학교 옆에 위치하며, 백제역사재현단지에 속해있다. 현재 백제역사재현단지는 공사중이다. 이 백제역사문화관의 테마는 바로 "백제하늘아래서다"이다.
▲ 백제역사문화관 백제역사문화관의 모습. 한국전통문화학교 옆에 위치하며, 백제역사재현단지에 속해있다. 현재 백제역사재현단지는 공사중이다. 이 백제역사문화관의 테마는 바로 "백제하늘아래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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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시내에서 호암리나 신성리로 가는 버스를 타고 20~30분 가량 죽 오면 한국전통문화학교가 보인다. 한국전통문화학교는 문화재청에서 설립한 국립 4년제 대학교로 우리의 옛 문화를 배우고, 그러한 전통을 계승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학교다.

작은 학교지만 아름다운 교정이 있는 이 학교의 옆쪽으로 조금만 가면 거대한 주차장이 펼쳐진다. 주차장이 왜 이렇게 클까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보면 한 건물이 보이고, 그 뒤에 굉장한 규모의 한옥들이 보인다. 그런데 왠지 이상하다. 평소에 보던 한옥들과는 생긴 게 조금 다른데?

바로 이곳은 백제역사재현단지로 현재는 공사 중이다. 안에는 백제시대 건축양식을 가지고 여러 건축물들을 만들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백제왕궁과 능사라는 절을 복원하고 있다. 현재 이 백제역사재현단지는 공사 중이기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지만, 그 앞의 백제역사문화관은 개관되어 있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백제 하늘 아래 서다

백제역사문화관의 조형개념은 '백제 하늘 아래 서다'라고 한다. 미륵사지 3탑 3금당을 모티브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전통건축의 느낌을 담은 것이 아닌 전통건축의 원리를 이용하여 건축에 반영하였다는 점이 색다르다. 그리고 백제역사문화관 주위의 곳곳에는 여러 조형물들이 있는데, 모두 백제와 관련된 것들로서 이곳에는 미세한 것 하나하나가 모두 백제와 연관시켜 만들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깃발들과 그 꽂혀있는 깃대들은 무심코 지나가기 쉽다. 그러나 깃대 위의 장식은 바로 칠지도로 되어 있다. 이렇게 백제역사문화관은 세부적인 측면에도 여럿 신경을 썼다.
 사진에 보이는 깃발들과 그 꽂혀있는 깃대들은 무심코 지나가기 쉽다. 그러나 깃대 위의 장식은 바로 칠지도로 되어 있다. 이렇게 백제역사문화관은 세부적인 측면에도 여럿 신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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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를 들자면 위의 사진에선 깃발들이 차례로 그 몸을 숙이고 있다. 이 깃발들이 걸려 있는 꽂이는 무심코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윗부분의 장식이 바로 '칠지도(七支刀)'를 형상화 한 것이다.

칠지도란 백제의 근초고왕이 일본에 하사한 것으로서 고대 시대의 흔치 않은 보검이다. 또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오면 당시 백제의 무역도나 강역도가 아래에 그려져 있다. 이처럼 백제역사문화관에서는 작은 것 하나하나도 백제와 연관시키고 있으니 이 또한 관광객들에 대한 배려라 하겠다.

내부 벽면의 모습. 밋밋할 수도 있는 벽면을 저렇게 장식해 놓았다. 가운데의 금동관음보살입상을 중심으로 사방에 백제의 유물과 디자인들을 놓아두었다.
 내부 벽면의 모습. 밋밋할 수도 있는 벽면을 저렇게 장식해 놓았다. 가운데의 금동관음보살입상을 중심으로 사방에 백제의 유물과 디자인들을 놓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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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역사문화관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거대한 부처와 함께 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유물과 그림들이다. 불상 뒤의 광배에서 빛을 비추듯 세상을 비추는데, 그 세상은 바로 백제를 나타낸다. 이 불상은 국보 293호로 지정된 백제의 금동관음보살입상이다.

그리고 이 불상이 비추고 있는 세상을 보면 불상의 오른쪽 위엔 무령왕릉에서 나온 금동관식, 즉 왕의 왕관과 함께 고리자루칼이 있으며, 불상의 왼쪽 위엔 무령왕릉에서 나온 왕비의 왕관이 보인다. 다시 왼쪽 아래엔 국보 중의 국보라고 불리는 백제금동대향로가 보이며, 오른쪽 아래엔 삼존불과 함께 백제의 전돌들이 보인다. 즉 벽면의 밋밋함을 방지하기 위한 디자인 하나가 백제를 한 눈에 펼쳐놓는 세계의 입구로 변화한다. 이러한 세세한 배려가 백제역사문화관의 매력이라 하겠다.

현재 백제역사문화관에선 특별전을 하고 있다. 바로 '名品 백제 디자인을 만나다'란 주제로서, 백제의 여러 디자인을 현재의 물품에 접목시키고 있다.
▲ 名品 백제 디자인을 만나다 현재 백제역사문화관에선 특별전을 하고 있다. 바로 '名品 백제 디자인을 만나다'란 주제로서, 백제의 여러 디자인을 현재의 물품에 접목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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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기자가 방문했을 시엔 '名品 백제 디자인을 만나다'란 주제로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백제의 문양 등을 이용하여 이를 현대적 디자인으로 변화시켜 여러 물건들에 반영하여 명품으로 승화시키며, 고대와 현대와의 만남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서양적 디자인을 벗어나 우리의 디자인을 이용한 다양한 물품과 콘텐츠의 접촉을 시도한 이번 특별전은 10월 31일까지 한다고 한다.

백제의 역사를 만나다

백제역사문화관은 총 5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앞에서 말한 특별전시실을 제외한 상설전시실은 총 4개인데, 1층에 2개, 2층에 2개가 있다.

제 1전시실은 백제의 역사에 대해 한눈에 알 수 있게 해 놓은 곳이다. 주로 정치사를 중심으로 해 놓았는데, 한성백제부터 웅진백제, 그리고 사비백제와 그 멸망까지를 다루고 있다. 자연 굵직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보여줘, 백제의 영광과 번성, 그리고 비운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다.

제 1전시실을 걸어가다가 옆으로 가면 흥미로운 것을 볼 수 있다. 옆에 작은 방이 있어, 이 속에 들어오면 갑자기 문일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일본의 한 건물이 보인다. 바로 이소노카미신궁이라는 칠지도가 보관된 건물이다.

이 영상물에선 칠지도가 어떻게 일본으로 전래되었으며, 칠지도의 표면에 어떠한 글귀가 써 있는지에 대해 간단하게 나온다. 그리고 영상물이 끝나면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영상물이 사라지고 그 영상물이 상영되던 곳에서 무엇인가가 돌면서 올라온다. 바로 칠지도인데, 이러한 다양한 방식을 통하여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강열무식은 백제가 지금의 황해도 배천에서 고구려와 싸워 이긴 것을 기념하여 시행하였던 대규모 군사 사열식을 말한다. 이때 황색 깃발을 썼는데, 이는 백제가 천하의 중심이란 뜻이다.
▲ 한강열무식의 모습. 한강열무식은 백제가 지금의 황해도 배천에서 고구려와 싸워 이긴 것을 기념하여 시행하였던 대규모 군사 사열식을 말한다. 이때 황색 깃발을 썼는데, 이는 백제가 천하의 중심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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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앞에는 여러 병사 피겨들이 정돈되어 있다. 크게 2개의 군대로 나뉘고, 가운데에선 빨간 옷을 입은 문관들 7명이 있다. 기마명과 보병들이 질서 정연하게 배치되었고, 노란색 깃발을 든 사람들도 보인다. 이 피겨는 한강열무식을 표현한 것이다. 한강열무식이란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지금의 황해도 배천인 치양에 군사를 보내 공격할 때, 이를 맞서 싸운 후에 한 것이다. 대대적인 군사 사열식이 이 한강열무식으로, 백제가 스스로 최고의 전성기임을 크게 자랑한 사건이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백제는 군사를 모아 고구려의 평양성을 쳐들어갔다. 고구려의 평양성에서는 고국원왕이 이들과 맞서 싸웠는데, 그만 고국원왕은 이 싸움에서 전사하게 된다.

피겨에서 보이는 군사들은 그 당시의 군사들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노란색의 깃발은 당시 기록에도 보이는데, 노란색은 방위 중에서 중심을 뜻한다. 즉 백제는 모든 세상의 중심이라는 그들의 자부심이 그대로 들어난다. 가운데의 7명의 빨간 옷을 입은 이들은 좌평과 상좌평으로 보이는데, 이들은 백제의 최고 관직이다.

백제는 이렇게 강인한 나라였고, 이를 국제사회에 제대로 어필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성기는 생각만큼 오래가지 않았다. 고국원왕의 손자인 광개토태왕의 대대적인 복수와 광개토태왕의 아들인 장수왕은 도림을 보내 백제 조정을 어지럽힌 후, 결국 위례성으로 쳐들어왔고 백제의 왕이었던 개로왕은 패배하게 된다. 결국 개로왕은 달아나다가 본래 백제의 신하였다가 고구려의 편에 붙은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의 손에 붙잡히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이로서 한성백제 시대는 끝나게 된다.

한성백제 시대 다음이 바로 웅진백제이다. 웅진, 지금의 공주로 천도한 백제는 다시 그 힘을 차차 회복한다. 남쪽으로 세력을 뻗혀 완전히 마한의 영역을 백제로 포함시킨 후 예전의 그 강했던 모습을 회복하려고 고군분투한다.

피겨의 중심엔 성왕과 왕비가 탄 수레가 있다. 백제는 공주로 천도 한 후 사비 천도를 준비하였으며, 사비도성은 철저한 계획도시로 당시 습지를 메꾸는 등 대규모 공사를 통해 만들어졌다.
▲ 사비천도행렬 피겨의 중심엔 성왕과 왕비가 탄 수레가 있다. 백제는 공주로 천도 한 후 사비 천도를 준비하였으며, 사비도성은 철저한 계획도시로 당시 습지를 메꾸는 등 대규모 공사를 통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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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백제는 또다시 수도를 옮긴다. 웅진 천도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준비해온 계획 도시 사비, 즉 지금의 부여로 도읍을 옮긴 것이다. 도읍을 옮긴 사람은 바로 성왕으로, 성왕은 지금도 부여 시내에 가면 로터리에 그의 동상이 의자에 앉아 백제를 바라보고 있다. 백제역사문화관엔 이런 성왕의 천도행렬이 복원되어있다. 사람과 말에 모두 갑옷을 씌워 중무장한 개마기병과 중장보병들, 그리고 시녀들과 신하들, 또한 가운데에서 황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가고 있는 성왕과 왕비의 모습 등 당시의 모습을 피겨들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피겨를 지나 걸어가면 둥그런 홀이 있다. 이곳엔 여러 백제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다수는 복제품으로 다른 박물관에 전시된 것이다. 백제의 특이할 만한 유물들, 이를테면 남성용 변기인 호자랄지, 무수한 다리가 있는 벼루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유물들이기도 하지만, 벽면의 문양이다. 이는 부여 능산리 1호분의 문양으로서, 백제의 정취를 세세하게 담고 있다.

홀을 지나면 황산벌 전투의 장면이 나온다. 나당연합군의 급습으로 효과적인 방어를 하지 못하고 결국 마지막으로 신라군과 겨루기 위하여 나가는 계백의 모습. 결사적으로 방어를 하였으나, 결국엔 패배한 그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700년의 역사를 가진 백제는 이렇게 멸망하게 된다.

백제의 생활 속으로

제 2전시관은 백제의 생활문화란 주제로 전시를 하고 있었다. 입구부터가 다른 곳과는 달리 범상치 않았는데, 백제의 성문으로 해 놓았다. 그것도 단순한 성문이 아닌, 성문을 건축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로 판축기법이라는 것을 이용하는 모습인데, 판축기법이란 주로 성벽에 썼던 기법으로서, 건축하고자 하는 곳의 좌우에 목판을 대고 그 사이에 흙을 넣어 이를 계속 다져나가는 기법이다. 이는 주로 중국의 토성에서 쓰던 방식으로, 우리나라도 예부터 널리 사용하였다.

궁남지 발굴 과정에서 출토되었다. 발자국의 길이는 약 26cm 정도로 오늘날과 크게 차이는 없다. 백제인의 발자국을 따라 우리도 같이 그 길을 걸어가면 어떨까?
▲ 백제인의 발자국 궁남지 발굴 과정에서 출토되었다. 발자국의 길이는 약 26cm 정도로 오늘날과 크게 차이는 없다. 백제인의 발자국을 따라 우리도 같이 그 길을 걸어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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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을 건축하는 인부들, 그리고 성문을 호위하는 군사들 앞에 왠 발자국이 있다. 바닥 아래에 유리를 대었는데, 그 발자국은 바로 백제인의 발자국이다. 이 발자국은 1995년 부여 궁남지 목조 집수시설 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가장 오래된 백제인의 발자국이다. 발의 크기는 길이는 약 26cm, 너비는 10cm이다. 즉 지금의 우리와 비교해서 거의 차이가 없다.

백제인의 기분으로 제 2전시관을 들어갔다. 제 2전시관은 우리의 옛 시골 모습처럼, 백제인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로 초가에 살고 거기에서 농사를 짓고, 베쌈을 하고, 또한 공방이 있는 모습은 정겹게 느껴진다. 그리고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 모습도 보이며, 가운데에는 부여 일원의 당시 백제의 모습을 보여준다. 백제의 상업은 당시 세계로도 뻗어나갔는데, 중국, 일본과의 활발한 교류는 물론이거니와 동남아시아에까지 뻗어간 흔적이 보인다. 그밖에 백제의 선박, 즉 조선기술과 당시 왕과 신하들의 모습 등이 복원되어 그 당시의 삶을 쉽게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제 2전시관을 나오다가 옆을 보면 상영관이 하나 있다. 이 상영관은 바로 국보 중의 국보라고 일컫는 백제금동대향로에 대한 영상물을 상영한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가 자랑하는 최고의 보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당시 백제인들의 사상과 생활모습, 그리고 공예기술 등을 단 하나로 압축하여 보여준다. 상영이 끝나면 복원된 백제대향로가 화면 아래로 나오는데, 금빛 찬란한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백제는 어떤 정신세계를 가졌을까?

제 3전시관은 2층에 있다. 백제의 정신세계라는 주제로 전시를 하고 있다. 고분, 제사유적, 불교사상 등과 관련된 것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중 흥미로웠던 것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무령왕릉의 모습을 꼽을 수 있다.

무령왕릉 출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앞에는 왠 기계가 있는데 이것으로 유물을 향해 바라보고 빨간불이 들어오면 버튼을 누르면 그 유물의 3차원 모습이 화면에 뜬다. 특히 어린애들이 이걸 좋아하는데, 일전에 예전 여자친구와 이곳에 와서 이를 보고 아이처럼 좋아하던 그 애가 생각나서 잠시 약간의 미소를 띄었다.

불교에 관한 여러 전시품들은 흥미를 끈다. 미륵사지 복원 전경이나 서산마애삼존불도 보인다. 이 중에서 서산마애삼존불에는 돌로 된 광배가 있는데, 이 광배의 대좌에는 관람객이 올라 갈 수 있게 해 놓았다. 그러면 화면에서 잠시 있다가 광배에 서 있는 그 관람객의 모습이 투영되어 마치 석불과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당시 백제 건축의 정수를 볼 수 있는 미륵사지 9층목탑의 모습. 현재 남아있지는 않지만, 과거엔 무려 60m나 되었다고 한다.
▲ 미륵사지 9층목탑 복원 모형 당시 백제 건축의 정수를 볼 수 있는 미륵사지 9층목탑의 모습. 현재 남아있지는 않지만, 과거엔 무려 60m나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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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인상 깊은 것은 작게 복원된 미륵사지 9층목탑의 모습이다. 사실 이 백제역사재현단지는 실제로 목탑을 복원하고 있긴 하다. 바로 능산리고분군 옆에서 발굴 중인 능사라는 절의 목탑을 복원하는 것으로, 현재 거의 다 건축됐다. 아무튼 이곳에 전시된 미륵사지 9층목탑의 모습은 그 화려함과 실제로 실물을 보면 얼마나 웅장할까란 일종의 기대감도 들게 해 준다.

미륵사지엔 본래 중앙에 목탑 1기와 동서에 석탑이 각각 1기씩 남았다고 한다. 현재는 서쪽의 석탑, 즉 서탑이 6층만 남아서 굉장히 훼손된 모습으로 겨우 잔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복원을 하고 있으며, 오랜 시일에 걸쳐 최첨단 방식을 동원하여 지금 이 순간도 복원작업중이라고 한다.

반면 동탑은 1993년에 복원하였는데, 그에 대해서 잘못 복원되었다고 아직도 비판하는 학자들이 여럿 있다고 한다. 목탑은 그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다만 기존에 남은 서탑을 보고 그 모습을 대충 짐작하고 일본의 자료들과 금동탑편 등을 보고 복원한 것이다. 실제로 세워진다면 높이가 무려 60m에 이를 정도라고 하니, 가히 그 어마어마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백제역사문화관에서 바라본 백제역사재현단지의 모습. 완공되려면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현재의 진척상태도 제법 되었다. 왕궁과 능사, 그리고 능사에 있는 5층목탑의 모습이 보인다.
 백제역사문화관에서 바라본 백제역사재현단지의 모습. 완공되려면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현재의 진척상태도 제법 되었다. 왕궁과 능사, 그리고 능사에 있는 5층목탑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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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2층에서는 현재 건립중인 백제역사재현단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이 조성되었는데, 앞으로도 완공되려면 멀긴 멀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궁의 모습이나 거대한 목탑 등은 그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아마 이곳이 완공된다면 전국의 수학여행 필수 코스 중 하나로, 그리고 유명한 관광지로 외국에 알려질 것이다.

백제를 이은 사람들, 그리고 그 산물들

제 4전시실은 백제의 계승을 주제로 한 곳이다. 백제의 부흥운동이나 아직도 일본에서 하고 있는 백제와 관련된 축제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백제계석탑에 대해서도 그 모습과 함께 모형을 진열하고 있다. 백제계 석탑은 목탑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백제시대의 석탑은 미륵사지석탑과 정림사지오층석탑이 있다. 목조건축물처럼 서로 다른 돌을 쓴 1층 탑신의 부재랄지, 공포와 같은 3단의 층급받침, 그리고 넓은 옥개석과 처마 끝 등이 바로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시실을 나오면 백제관음이라는 게 전시되어 있다. 이 백제관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 있는 유물이 아닌, 일본에 있는 유물이다. 일본의 법륭사, 즉 호류지에 있는 7세기 초의 작품으로, 이 전시관엔 1/2 크기로 복원되어 있지만 실제 모습과는 약간씩 차이가 있게 해 놓았다.

백제와 놀자란 코너에 있으며 기념촬영을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백제가 한층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 백제왕과 왕비의 모습을 한 테디베어 백제와 놀자란 코너에 있으며 기념촬영을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백제가 한층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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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층으로 내려가면 '백제야 놀자'란 코너가 있다. 이는 백제와 관련된 여러 콘텐츠를 아이들이 즐겁게 가지고 놀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백제금동대향로에 보이는 악기들을 직접 연주할 수도 있고, 백제의 유물들을 퍼즐처럼 직접 복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좀 어렵지만 백제의 건축물 일부를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으며 자료 검색 등도 가능하다. 또한 테디 베어에 백제왕과 왕비의 옷을 입혀 놓고, 여기에서 기념촬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아이들로서는 당연히 좋아한다.

밖으로 나와 홍보관으로 가면 백제역사재현단지의 조감도를 볼 수 있다. 현재로선 왕궁과 능사 등은 만들어졌으며, 전통민속촌과 개국촌 등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백제역사재현단지의 뚜껑은 열리지 않았으니 뭐라고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그 웅장한 규모와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 고증 등은 다른 재현단지와 비교해서 결코 부족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고증논란 등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긴 하나, 이는 사실 모든 역사관련 콘텐츠가 마찬가지이다. 다만 백제역사재현단지, 그리고 백제역사문화관은 백제의 역사를 한 눈으로 알 수 있게 해 놓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번 공사와 부여군 등의 노력에 대해 기대를 걸어도 괜찮다고 본다.

백제역사재현단지가 백제 하늘 아래에 서는 그 날을 기다려본다.

능사라는 절의 목탑으로서, 능사는 능산리고분군 옆에 있고, 현재 발굴 중에 있다. 이 목탑은 그동안의 자료를 이용하여 복원한 것이다.
▲ 백제역사재현단지에 있는 5층목탑 능사라는 절의 목탑으로서, 능사는 능산리고분군 옆에 있고, 현재 발굴 중에 있다. 이 목탑은 그동안의 자료를 이용하여 복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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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7년 8월 23일 백제역사문화관에 갔다온 것에 대해 쓴 것입니다.



태그:#백제역사문화관, #백제, #백제역사재현단지,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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