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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가 구분한 기독교의 두 패러다임
 보그가 구분한 기독교의 두 패러다임
ⓒ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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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기독교 내부에는 서로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두 개의 시각이 충돌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 차이는, 똑같은 성경과 언어(기독교 용어)를 사용하는 기독교를 거의 두 개의 종교로 갈라놓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 시대의 두 패러다임은 사실상 두 개의 기독교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그 차이점을 요약해보면 위 도표와 같다.

이처럼 두 패러다임으로 구분되는 기독교인들은 서로 자주 미심쩍어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기존의 낡은 패러다임에서 보면, 새롭게 등장하는 패러다임은 기독교의 변질 혹은 축소처럼 비춰질 것이다.

성서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데서 자유로운 입장을 취하면 그 권위에 의문을 불러 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동정녀 탄생이나 빈 무덤이 역사적 사실임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사람은, 예수님의 신성과 하나님의 권능에 힘입은 놀라운 기적에 대해 의심한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의 전적인 유일성과, 그분을 구원의 유일한 길로 반드시 믿어야 하는 데서 벗어나는 것은 기독교 자체를 의문에 붙이는 처사이다. 일부 혹은 이 모든 데서 자유로운 입장을 갖고서도 여전히 기독교인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다.  

반면 새로운 기독교 패러다임 입장에서 보면, 낡은 패러다임에 서 있는 사람은 반지성적이고 완고한(그러나 선택적인) 도덕주의자로 보인다. 성서 문자주의에 대한 주장은, 과학이 문자주의와 충돌을 일으킬 때마다 과학의 거부로 나타나기 때문에 별로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지지자들은, 특히나 낡은 패러다임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서 여성의 복종을 요구하고,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보이며, 정의로운 문제보다는 보수적인 쟁점을 선점하기 때문에 당혹스러워하거나 종종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곤 한다.

은 패러다임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자비와 정의 보다는 개인적인 의를 더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타종교에 대해 거부하는 그들의 온당치 못하고 해롭기 짝이 없는 배타주의는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단 하나의 종교에만 알려질 수 있단 말인가?(그리고 아마도 그 종교의 '올바른' 형태에서만?)" - 마커스 보그, <The Heart of Christianity>(2004), 15∼16쪽

기독교의 심장
 기독교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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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보그(오레곤 주립대, 종교와 문화 교수)가 근작 <기독교의 심장>에서 예리한 필치로 낡은 기독교 패러다임과 새롭게 태동하는 기독교 패러다임을 구분하면서 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보그는 북미 역사적 예수 연구의 대표 주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국내에도 그의 책이 벌써 여러권 번역 소개되어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다(<새로 만난 하나님>, <예수 새로보기>, <성경 새롭게 다시 읽기>, <예수의 의미>…).

그는 <기독교의 심장>에서 교회가 변화와 충돌의 시대에 돌입한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고도 명쾌하게 풀어낸다. 고집불통의 낡은 기독교 패러다임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지 명료하게 드러내고 새로운 기독교로 탈바꿈시키려는 야심찬 시도로 보인다.

(거칠게나마 소개한) 위의 글을 보면, 보그는 성서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냐에 따라 기독교의 패러다임이 두 개로 갈라진다고 보고 있다. 성서를 문자 그대로, 사실로 믿는 기독교인들을 일컬어 흔히 '문자주의자', '근본주의자'라고 부른다.

안타깝게도 이런 문자주의자가 한국 기독교인의 약 80∼9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입증이 불가능한 사실을 '믿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본령이라고 본다. 그러나 보그는 이런 성서에 대한 문자주의적 시각이, 역사적으로 초기 기독교부터 유래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근대적 산물임을 지적한다. 근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근본주의'를 표방하면서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을 고집한 결과 그것이 곧 기독교의 전부인 것처럼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에 의하면,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인 아프간의 탈레반도 근대의 급격한 세속화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여성들에게 직업을 갖지 못하게 하고 부르카를 쓰고다니도록 강요하면서 이슬람 세계가 세속화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세속화의 거센 흐름을 거스르기란 처음부터 무리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한다고 할지라도, 세계를 이웃집처럼 가깝게 만든 정보통신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사밀한 배타적 공간이 거의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조가 모래에 머리 처박는 것 마냥 눈 감고, 귀 막고 살지 않을 바에야 세속사회와 종교는 부지런히 대화하면서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종교들 서로 간에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종교다원주의'를 징그러운 벌레마냥 무턱대고 기피하거나 탁상에서 나온 어떤 이론이나 선택사항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건 순진한 착각이 아닌가 싶다. 실은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오늘의 정보통신 사회야말로 종교 간의 대화와 만남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종교들은 내키지 않더라도 그러한 흐름을 엉거주춤 따를 수밖에 없게 된 측면이 크다. 이젠 더 이상 아무도 만나지 않고, '나 홀로' 정보를 독점하며 살 수는 없는 시대에 이미 들어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앞서 보그의 글과 관련하여, 1987년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던 시절에 발표한 박성준(성공회대) 선생의 옛 글이 떠올랐다. 박 선생은 '한국기독교의 변혁과 기독교운동의 과제'라는 제하의 글에서 "두 개의 기독교가 존재한다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기존의 지배체제를 옹호하고 유지시키려는 지배층의 기독교와 현실의 잘못된 지배 질서를 고치고 바꾸려는 민중의 기독교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두 기독교가 엄존하는데도 '우린 주 안에서 하나'라는 말로 교묘히 은폐하면서 '교회는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진정한 교회의 일치를 이루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보았다. 그의 이런 생각은, 남미의 개신교 해방신학자 보니노(J.M.Bonino)가 1985년 한국에 와서 강연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에는 두 개의 기독교가 존재한다. 지배자, 식민주의자들의 기독교와 민중, 피지배층의 기독교, 이렇게 두 개의 서로 다른 기독교가 존재한다. 지배자, 식민주의자의 기독교는 영광의 그리스도, 높이 올려진 그리스도, 왕으로 군림하는 그리스도를 설교한다. 그러나 피지배계층인 민중의 그리스도는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과 더불어 고난당하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다."

물론 보니노나 박성준 선생이 '두 개의 기독교'를 말했던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당시처럼 민주 대 반민주, 독재와 반독재 저항의 전선이 분명한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같은 기독교에 속해 있으면서도 판이하게 성격이 다른 두 부류의 기독교인들이 오늘날도 여전히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보그는 "낡은 기독교 패러다임"과 "새롭게 생겨나는 기독교 패러다임"으로 편의상 구분하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그것이 무 자르듯 선명하게 구분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21세기 기독교가, 기존의 낡은 틀을 버리고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밑그림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그가 잘 지적하고 있듯, 현재 개신교 내에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교파가 존재한다. 열광적인 오순절 계통으로부터 예배조차 침묵기도를 당연시하는 퀘이커까지 양극단이 존재하고 있다. 이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생물처럼 다양한 변화를 꾀하며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바람직한 기독교의 청사진이 제시된다면 새로운 기독교의 출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키가 훌쩍 커버린 아이는, 그동안 즐겨 입던 옷이 맞지 않는다면 주저 없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낡은 패러다임이 오늘의 시대에 설득력을 잃어버렸음을 깨달은 기독교인들이라면, 서슴지 않고 새로운 기독교 패러다임을 채택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기독교 패러다임이 궁금한 분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다음의 책들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마커스 보그, <성경 새롭게 다시 읽기>(연대출판부)
<새로 만난 하느님>(한국기독교연구소)
오강남, <예수가 외면한 그 한가지 질문>(현암사)
쉘비 스퐁, <새 시대를 위한 새 기독교>(한국기독교연구소)
정강길, <미래에서 온 기독교> (에클레시안)



기독교의 심장

마커스 보그 지음, 김준우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2009)


태그:#패러다임, #마커스 보그, #기독교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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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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