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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이 흩뿌려진 듯 피어난 메밀꽃
▲ 메밀꽃 소금이 흩뿌려진 듯 피어난 메밀꽃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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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중략)…

"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줏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지.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나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 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 가는 일색이었지 - 팔자에 있었나부지."(이효석-<메밀꽃 무렵> 중에서)

하얀 꽃에 붉은 꽃술이 매혹적이다.
▲ 메밀꽃 하얀 꽃에 붉은 꽃술이 매혹적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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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봉평장의 파장 무렵 조선달에 이끌려 충주집을 찾은 허생원은 나이가 어린 장돌뱅이 동이를 만난다. 대낮부터 충주집과 짓거리를 벌이는 동이가 미워 따귀를 올린다. 나귀에 짐을 싣고 달밤에 다음 장터로 떠나는 길, 그들이 가는 길가에는 달빛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소금이 뿌린 듯 피어난 메밀꽃의 정경에 취해 허생원은 옛 이야기를 꺼낸다.

성 서방네 처녀와의 첫날밤이자 마지막 밤을 보낸 봉평, 그때부터 허생원은 반평생을 두고 봉평에 다니게 되었다. 이야기 끝에 동이가 편모와 살고 있음을 알게 되고, 그의 어머니 고향이 봉평임을 알게 된다. 동이와 제천으로 가는 허생원은 동이가 자기처럼 왼손잡이임을 알게 된다.

이효석은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달빛 은은한 밤에 보는 메밀꽃밭의 정경을 표현했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달빛이 밝은 가을 밤, 찬바람이 휑한 마음에 풀벌레들이 울어대는 소리를 듣다 보면 옛 생각이 나지 않을까?

그 첫날밤이자 마지막 밤에 성 서방네 처녀가 아기를 가졌다면 동이 나이쯤 되었을 터인데 하필이면 허 생원과 같은 왼손잡이다.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고 이후의 상상은 독자들에게 맡겨 버린다. 동이가 허생원의 아들일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작아서 옹기종기 모여 피운다.
▲ 메밀꽃 작아서 옹기종기 모여 피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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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의 단편소설 <바위>에도 잡풀속에 섞여 핀 돌메밀꽃이긴 하지만 메밀꽃이 등장한다. 돌메밀꽃은 바람을 타고 잡풀들 사이에 떨어져 야생의 상태에서 피고지기를 반복하다가 메밀꽃보다 하찮은 꽃과 열매를 맺는다. 게다가 무리지어 피어 있지도 못하고 잡풀들 사이에 드문드문 피어날 뿐이다. 메밀꽃이긴 하지만 앞에 붙은 '돌'자가 상징을 하듯 메밀꽃에 비하면 천대를 당하는 꽃이다.

<바위>의 서두는 북쪽 하늘에서 기러기가 울고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무 데나 쓰러지는 대로 하룻밤을 세워야 하는 이들에게는 기러기 소리도 반갑지가 않다. 그 한 떼의 사람들은 읍내 가까운 기차 다리 밑에 사는 병신과 거지와 문둥이들이었다. 같은 사람이지만 사람 취급을 당하지 못하는 현실, 잡풀 속에 섞여 피어나는 돌메밀꽃의 삶과 다르지 않다.

길죽길죽한 붉은 다리는 꿩의다리를 닮았다.
▲ 메밀꽃 길죽길죽한 붉은 다리는 꿩의다리를 닮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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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는 긴 덧니를 젖히며 자꾸 울기만 하였다. 피와 살은 썩어 가도 눈물은 역시 옛날과 변함없이 많았다.
"엄마, 날 얼마나 찾았능교, 얼마나…."
술이는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목을 놓고 울었다. 길바닥 잡풀 속에 섞여 핀 돌메밀꽃 위에 빨간 고추쨍이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길 건너 언덕에서는 알록달록한 뱀 한 마리가 돌 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내 얼른 돈 벌어 올게. 엄마 나하고 살자…. 내 돈 벌어 올 때까지 부디 죽지 마라."
아들은 어미의 어깨와 팔을 만져 주며 이렇게 당부했다. 그의 붉은 두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자꾸 솟아 나왔다. 그들은 다시 장터로 들어갔다.(김동리-<바위> 중에서)


피어난 것과 아직 피어나지 않은 것들
▲ 메밀꽃 피어난 것과 아직 피어나지 않은 것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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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바위>의 줄거리는 이렇다.

술이의 엄마는 문둥이다. 아들 술이는 장가갈 밑천으로 모아둔 돈 대부분을 어머니 약값으로 써버리고는 남은 밑천도 술과 도박으로 없애버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엄마는 아들을 기다리다 영감에게 학대를 당해 읍내 가까운 기차 다리 밑까지 굴러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근처의 복바위를 갈며 아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보름만에 장터에서 아들을 만난다. 그러나 사나흘 뒤에 다시 온다던 아들은 나타나지 않고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폭행을 당한다. 마을 사람들은 살던 집도 불태워 버린다. 결국 이 여인은 복바위를 안고 죽는다. 마을 사람들은 "더러운 게 하필 예서 죽었노"하며 바위를 아까워한다.

돌메밀꽃과 문둥이 아주머니는 소외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문둥이 여인의 모성애가 다르지 않듯 돌메밀꽃도 피고 짐에 있어 메밀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외당한 인간이 극복해야할 현실적인 장벽, 그것은 바위처럼 단단한 것일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소외당한 인간보다도 그를 소외시킨 인간들이 깨뜨려야 할 장벽들이 그 바위처럼 단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에 등장한 돌메밀꽃은 소외당한 삶을 살아가는 사회 저변의 사람들을 닮았다.

그들이 꽃이듯 사람은 사람이다.
▲ 메밀꽃 그들이 꽃이듯 사람은 사람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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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풀 속에서 피어나도 꽃이요, 몹쓸 병에 걸렸어도 사람이다. 꽃은 꽃으로, 사람은 사람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이 그리운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눈에 들어 있는 들보와 마음에 쌓아 놓은 고정관념이라는 벽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성철 스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를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고 사도 바울의 탄식을 하게 된다.


태그:#메밀꽃, #이효석, #김동리,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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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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