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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왼쪽)와 박승호 경상대 교수.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왼쪽)와 박승호 경상대 교수.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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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박근혜는 박정희의 두 얼굴일 수 있다. 극우반공주의적 박정희가 박근혜라면, 강력한 개발주의적 박정희는 이명박인 것이다. 이명박 후보가 '신개발주의'를 내세우는 점도 사실 박정희와 닮아 있다." (조희연 교수)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를 계기로 세계 공황을 포함해 장기불황으로 들어갈 것 같다. 세계자본주의 아래에서 한국자본주의가 대단한 위기로 간다면 박정희와 같은 자본주의 파쇼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박승호 소장)

최근 '박정희 연구서'를 잇달아 출간한 두 진보학자가 있다. 조희연(52) 성공회대 교수는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역사비평사 간)>를, 박승호(50)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장은 김수행 서울대 교수와 함께 <박정희 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몰락(서울대학교 출판부)>를 냈다.

죽은 박정희는 부활하는데, 진보는 뭐하고 있나

두 진보학자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 '진보개혁세력의 건승'을 빌었다. 커다란 변수가 없는 한 '이명박 승!'으로 가는 지루한 '대선게임'에서 아직도 '진보'의 이름으로 할 일은 많다는 게 두 학자의 지적이었다. 박정희 연구서를 낸 것도 이 같은 시대흐름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미 30년 전에 죽은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진보학자들이 쏟아내는 것도 이유가 있다고 했다. 보수세력이 박정희를 부활시켜 '선진화 담론'을 내세우면서 자기정당성을 부여하는 활동에 여념이 없는데, 이에 맞불을 놓을 진보담론이 없다는 것은 '민망한 진보의 빈자리'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조희연 교수는 이 대담을 통해 이번 대선에서 "최소주의적 기대와 최대주의적 기대를 하고 있다"며 "민노당 300만표, 제3기 '민주정부' 출범이 가장 큰 기대라면, 중도자유주의세력(민주신당)이 풍비박산 나고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 승리를 거둬 위력적인 신보수주의시대가 개막되는 것이 가장 낮은 치의 기대"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너무 결정론적으로 보지 말자고 당부하고, 대선의 승자가 누구냐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못 박았다.

박승호 소장은 "진보학계가 박정희를 평가하면서 공과론적(공도 있고, 과도 있다는) 평가를 하는 것은 유럽 사민주의자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제3의 길'을 주장하며 투항했던 것과 같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두 진보학자는 '현실'이 될 지 모르는 '신보수주의 시대의 개막'과 '자본주의 파쇼의 등장'에 앞서 진보의 역할론은 진정 부재한지 진지하게 묻고 있다.

이 대담은 4일 서울 구로 항동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두 진보학자가 나눈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유럽 '제3의 길' 그리고 한국 '박정희 공과론'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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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박정희시대에 대해 두 가지 견해를 듣게 된다. 진보 쪽에서 말하는 폭군으로서의 이미지, 다른 하나는 조국근대화의 영웅이다. 두 가지는 전혀 다른병립적 현상으로 인식됐다. 조국 근대화를 성공했으니까 훌륭한 지도자지만, 폭정과 폭압을 저질렀던 부정적 측면도 있다는 식으로 이해됐다. 나는 이 책을 중고생까지도 읽었으면 한다.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박정희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박승호 "김수행 서울대 교수와 함께 쓴 내 책은 논문을 발전시킨 것이다. 97년 IMF 이후 서민생활이 곤란해졌다. 그 뒤로 박정희 신드롬이 다시 등장했다. 보수 세력들이 박정희를 부활시켜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형국이 됐다.

또 진보학계가 박정희를 평가하면서 공과론적(공도 있고 과도 있다는) 평가를 했다. 그것은 마치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자 제3의 길을 주장했던 것과 같다. 진보학계가 박정희에 대해 공과론적 평가를 제기하는 것은 보수세력이 쥔 헤게모니에 투항하는 성격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박정희체제를 둘러싼 다양한 시각에 대해 평가하고자 했다."

조희연 "박 소장이 박정희시대의 이념적 성격을 드러냈다면 나는 우파들이 주장하는 논점이 확장된 진보의 프레임에서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가 고민했다. 박정희가 추진했던 근대화 프로젝트가 왜 헤게모니 성격을 가졌나, 대중적 포섭력을 가진 이유가 뭘까 묻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체제는 왜 붕괴할 수밖에 없었나. 왜 그렇게 폭압적이었나 등등에 대해 우리가 그동안 묻지 않았던 질문들을 진보적 시각에서 물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히틀러가 실업자 구제했다고 '공과론' 말하나"

박승호 "진보학계가 박정희에 대해 공과론적 평가를 하는 것은 자본주의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패배적인 생각에 기인한다고 본다. 어차피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수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또 새삼 죽은 박정희가 최근 진보학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한국사회가 극도로 우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조 교수가 이번 책을 통해 진보학계의 논의를 풍부화 시켜야 한다는 인식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를 종합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논리적으로 성립이 가능한가 의문이다. 자칫 유럽의 '제3의 길'처럼 진보와 보수가 절충돼는 방식으로 논의가 돼서는 안 된다고 본다."

조희연 "보수와 진보를 절충적으로 종합하자는 문제의식은 아니다. 보수가 부각시키는 박정희 시대의 한 측면, 우리가 크게 다루지 않았던 측면을 진보적 시각에서 다뤄보자는 문제의식이었다."

박승호 "왜 지금 시점에 죽은 박정희가 평가되고 논란이 될까. 그 이유는 우리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전망, 대안과 직결된다고 본다. 이 책을 내게 된 것도 그것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보학계의 박정희논쟁은 한국사회의 대안을 놓고 벌이는 이데올로기 투쟁이다. 왜냐, 지금 전두환에 대해 공과론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못 봤다. 그러나 박정희에 대해 공과론적 평가를 진보학계가 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전두환에 대해서도 공과론적 평가를 하자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히틀러가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일 때 완전고용에 가까운 정도로 실업자를 구제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공과론적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박정희에 대해 공과론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렇게 말하면, 전두환은 광주에서 수천명을 학살했지만 박정희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니 그는 '파쇼였지만 심한 독재자는 아니었다'는 식으로 평가할 수 있나. 그건 역사적 맥락에 맞지 않다. 사실 우리 역사와 민중의 입장에서 보자면 박정희는 적이다."

"진보세력이 적극적이면 이명박 거품 깰 수 있다"

- 그런데도 사람들은 박정희식 개발주의에 후광을 입은 이명박에 열광한다. 지지율이 50%가 넘는다. 왜 그럴까.

박승호 경상대 교수
 박승호 경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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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호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노동자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 됐다.실업자들도 심각한 수준으로 늘었다. 이를 타개할 방법이 뭘까.

진보학계는 철저하게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프레임에 갇혀 대안을 찾고 있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시각에 닫혀 있다. 박정희도 인정해주고, 신자유주의를 완화시켜서 가자는 전망만 나온다. 매우 수세적이고 패배적인 것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중들은 경제라도 살릴 수 있는 이명박에게 기대하는 심리가 작용하게 된다. 사실 이때가 민주노동당에게는 기회다. 그런데 이 기회를 적절히 잘 활용하고 있지 못해 안타깝다."

조희연 "이명박과 박근혜는 박정희의 두 얼굴일 수 있다. 극우반공주의적 박정희가 박근혜라면, 강력한 개발주의적 박정희는 이명박인 것이다. '신개발주의' 표상을 내세우는 점도 사실 박정희와 닮아 있다. 또 반 박정희세력(민주화세력)의 대안부재나 사회경제적 무능에 기인하는 면도 있다고 본다. 노무현정부의 사회경제적 실패가 드러내는 문제점도 있다. 그렇지만 이 문제를 노무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고 싶지는 않다. 진보 일반의 문제로 본다.

반 박정희세력이 대중을 먹고 살게 해주지 못한 면이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때문에 선택 폭이 대단히 제한적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민중들이 이 정도면 살 만 하다고 느낄 정도로 경제사회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명박 현상이 나온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명박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번 한나라당 경선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이명박의 부패스캔들을 공유했다고 본다. 진보세력이 좀 더 적극적인 돌파구를 만들면 이명박 거품은 뺄 수 있다."

"이명박이 압도적 지지 받고 있나? 아니다"

- 진보세력이 어떤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고 보나.

박승호 "사실 민주노동당에게 기회가 왔었다. 진보적 성격을 내걸고 지배세력과 맞짱을 뜰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스스로 차려준 밥상을 걷어찼다. 민중경선제….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대중적 정치세력화를 통해 국민에게 대안세력으로 나아가는 길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에서 꼴찌하다 나온 범여권 1등 후보 손학규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붙는 상황, 고만고만한 여권의 후보들, 여기에 문국현씨가 합세한다 한들 유일한 돌파구는 민주노동당이 대중적인 정치세력화에 나서는 것뿐이라고 본다."

조희연 "이명박 현상은 극우적 보수가 개발주의적 신보수로 자기 혁신을 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넓은 의미의 반 박정희세력이 대중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대중들이 개발주의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진보적 사회운동이 노력해야 한다. 정치세력은 두 측면이 존재한다고 본다.

열린우리당-문국현으로 대표되는 '중도자유주의 그룹'과 민주노동당과 민주노동당 좌측이 차지하는 '급진 진보정치세력'이 있다. 민주노동당이 사회경제적 의제를 가지고 중도자유주의세력과 구별되는 진보적 대안을 내세우도록 해야 한다. 또 중도자유주의세력도 자기 급진화를 해야 한다고 본다. 문국현이 중도자유주의세력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사회경제적 의제들을 만들어내고 실현해야 한다고 본다."

박승호 "진보학자들은 민주주의에 과잉 집착한다. 박정희도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웠고, 전두환도 마찬가지다. 전두환이 광주학살을 하고 등장할 때 민주정의당을 들고 나왔다. 진보진영은 민주주의를 넘어선 대안을 과감하게 제출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주의 사회원리를 고민해야 한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후보가 과감하지 못한 형태나 택지국유화를 들고나왔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원리가 아니다. 사회주의 원리다. 선진한국 창조라는 허상에 맞선 대안을 세워야 한다고 본다."

"문국현의 경제담론, 이명박에게 경쟁력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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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박세일 교수가 내세운 선진화 담론이 박정희시대와는 다른 '위로부터의 동원담론'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여기에 중도자유주의 세력까지 인입돼 있다고 본다. 민주노동당의 진보정치연구소가 선진화 담론에 맞서 사회연대국가론을 내세웠다.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에 진보세력이 어떻게 국민경제를 유지·발전·재생산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보수의 입장에서는 국민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대중동원력을 갖는 선진화 담론을 내세우는 것이겠지만 진보세력은 민주노동당이 제도정치세력으로서 한국경제를 어떻게 유지, 재생산을 할 것인가 급진적 응전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박승호 "지배세력이 주장하는 선진화 담론은 세부 계획이 없는 큰 담론일 뿐이다. 진보세력은 어떤 담론을 내세울 때 세부적인 안을 항상 고민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 꼭 세부예산까지 다 염두에 두고 담론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조희연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신보수주의적 경제담론이 대중들을 현혹하고 호소력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중도자유주의적 개혁담론 자체가 부재하다. 문국현이 상징하는 것이 일정한 대중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중도자유주의적 경제담론을 만들어낸다고 본다.

혁신된 중도자유주의적 경제담론이 신보수주의적 경제담론에 경쟁력을 가질 지 그것은 올 대선을 앞두고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경제가 화두가 돼 있으니까. 경제는 기본적으로 정치의 문제다. 민주노동당의 급진적 정치를 통해 경제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사실상 신자유주의적 조건 하에서 경제의 문제는 정치의 영역인 게 많다. 또, 경제문제가 한국사회의 주요 화두가 되는 것 자체가 보수적 담론인 것이다.

신자유주의로 파괴된 자신의 경제생활이 복원될 수 있다고 보는 상황인데, 민주노동당은 이것을 진보정치 활동으로 바뀔 수 있다고 선전전이라도 해야 한다. 혁신적인 경제담론을 대중화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이 급진적인 사회운동의 공간이어야 한다."

"이번 대선만 보지 말라, 방향을 잡아야 한다"

- 17대 대통령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대선을 어떻게 전망하나.

조희연 "실패냐 성공이냐가 중요한 건 아니다. 이 시기를 통해 변화된 대중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더 높은 사회경제적 요구를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대중을 만들어야 한다. 심하게 말하면 이명박정부 5년동안에도 사회진보를 추동할 수 있는 대중적인 진보의제를 형성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될 것이냐로 협예화 하면 안 된다.

이번 대선에 앞서 나는 최소주의적 기대와 최대주의적 기대를 한다. 민노당이 300만표를 얻고, 3기 '민주정부'가 들어서는 게 최대주의적 기대이며, 중도자유주의세력(민주신당) 풍비박산 나고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으로 승리해서 위력적인 신보수주의시대가 개막되는 것이 최소주의적 기대다. 어떤 분은 최악의 기대도 얘기한다.

민주노동당이 약진하지도 못하고, 중도세력이 게임도 해보지 못하고 패배하는, 대선 이후에는 사회진보의 기반이 균열되는 상황까지 가는 걸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나는 결정론적 과정으로 보지 말았으면 한다. 혁신된 사람들이 더 높은 대중적 요구를 하는 변화의 창출과정으로 대선을 봤으면 좋겠다."

박승호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를 계기로 세계 공황을 포함한 장기불황으로 들어갈 것 같다. 지배세력은 파시즘과 전쟁, 침략으로 대응전략을 짤 것이다. 솔직히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대선국면과 맞물리면서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낀다. 정치적 헤게모니도 빼앗기고, 세계자본주의 하에서 한국자본주의도 대단한 위기로 간다면 박정희와 같은 자본주의 파쇼가 또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혹자는 이번 대선 이후에 '자본주의 파쇼'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진보세력이 지금이라도 대안적인 비전과 강령, 담론을 가지고 대중적 결집을 해야 한다. 표에 연연하지 않고 큰 흐름에서 방향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


태그:#조희연, #박정희, #박근혜, #이명박, #문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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