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는 인문학이 사람들의 고난과 좌절·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는 인문학이 사람들의 고난과 좌절·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 주재일

관련사진보기


김민웅 교수(성공회대·목사)는 대학생들에게 세계 체제에 대해 강의하고, 대중들에게 한미FTA나 2·13합의가 몰고 올 변화 등을 설명하며, NGO 활동가들에게 대선 정국에서 어떤 판단을 하고 운동을 해야 하는지 토론하느라 바쁘다.

김 교수는 차분하고 논리정연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가 하면, 어느 때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선동'하는 웅변가의 얼굴을 하고 대중 앞에서 서기도 한다.

그렇게 바쁜 사람이 틈을 어떻게 냈는지 <자유인의 풍경(한길사)>이라는 인문학 책을 펴냈다. 시·소설·만화·연극·미술·영화·동화·사회학·신학 등 인문학으로 담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관한 평가와 해설이 담겨있다. 책 제목처럼 김 교수는 학문의 분과와 장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김 교수를 지난 8월 29일 서울 역삼동 한 제과점에서 만났다. 그의 말은 바쁜 일상만큼 빨라, 말에 담긴 뜻의 깊이를 다 헤아리기 전에 벌써 저만큼 달려가 버린다.

커피 향에서도 역사의 아픔을

<자유인의 풍경>/ 김민웅 지음/ 한길사 펴냄/ 477쪽/ 1만 6000원.
 <자유인의 풍경>/ 김민웅 지음/ 한길사 펴냄/ 477쪽/ 1만 6000원.
ⓒ 주재일

관련사진보기

김 교수의 책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커피에 얽힌 단상으로 시작한다.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들의 국경이 직선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모든 생명이 곡선이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도 자연 지형과 생태의 환경을 따라 곡선이어야 당연한 데도 그 나라들의 경계는 직선이다. 유럽의 제국들이 지도 위에 자를 대고 땅따먹기를 했기 때문이다.

커피 향을 음미하지만, 향에만 취하지 않고 커피에 밴 생산자들의 쓰디 쓴 인생과 역사를 체감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감탄하는 기법으로 그린 이중섭의 '은지화'. 김 교수는 이 그림의 기법이나 미술사적 의미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이 작품에 밴 이 화백의 고통스러운 인생까지 끄집어낸다. "쓰다가 버리는 은박지를 조심스럽게 되살려서 철필로 정성껏 그린 은지화가 꼭 이 화백과 우리 민중들의 인생을 닮았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이렇듯 김 교수의 인문학 가로지르기는 언제나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에서 민중의 고난을 읽고, 영화 <간장선생>에서는 약자들과 함께 하려는 지식인의 연민과 열정을 추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민중이 아무리 고난 가운데 헤매더라도 희망의 내일은 온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김 교수가 민중에게서 희망을 빼앗는 지구 제국,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을 분석하고 미국의 횡포를 폭로하느라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런 주장을 <밀실의 제국> <보이지 않는 식민지> <패권시대의 논리>와 같은 책으로 펴냈다. 그렇지만 이번 책에서는 제국의 압제로 삶의 희망마저 빼앗길 처지에 놓인 이들의 삶으로 깊게 들어가고 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거대한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을 분석하는 것은, 곧 제국으로 인해 신음하는 이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민중들의 희망을 노래하는 것은 제국에 대한 저항을 부르짖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제국 분석과 삶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사람답게 사는 길을 찾는, 하나의 작업이다. 신학을 포함한 인문학은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사랑과 좌절·행복 등 실존의 결에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 실존과 역사가 만나는 일을 추구하는 게 인문학자의 길이다."

상식적 잡학을 넘은 가로지르기

잡학다식 하면 깊지 못하고 경박하다고 한다. 김 교수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시와 노래·연극·소설·그림·철학 등을 논했다면, 김 교수의 학문 영역 가로지르기도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김 교수는 자신이 다양한 분야를 펼쳐놓지만 어떤 분야를 논해도 전문적인 수준의 논리와 분석을 내놓았다고 자부했다. 김 교수는 "어느 분야를 건드려도 최대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가는 게 올바르게 지식을 구성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학문의 경계선이란 없다고 본다. 그저 필요에 의해 방편적으로 분류한 것일 뿐이지, 고정된 구분은 가능하지 않다. 우리 시대 지식인이라면 삶의 전 영역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전방위적인 지적 섭취가 가능해야 한다. 특히 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지적인 영토를 좁히지 말고 무한하게 넓혀서 총체적인 눈으로 보아야 한다.

지식을 통섭하고 문명을 융합할 수 있어야 우리의 삶과 대안이 풍성해지는데, 우리는 자신의 전문적인 영토에 갇혀 빈곤한 삶을 산다. 그러니 타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편견과 선입견을 못 벗는 것 아니겠는가."

인문학이 위기라고 말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지식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자기 연구 분야에만 빠져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하며 자아도취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문학의 힘을 이해하기도 전에 멀어졌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식인들이 일상과 뒤엉키지 못하고 현학적인 논의만 하고 있을 때, 보통 사람들의 갈증과 희망 찾기를 외면할 때, 이미 인문학은 위기였다"고 말했다.

고민은 우리 삶의 현장에서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 주재일

관련사진보기

김 교수는 <자유인의 풍경>에서 일본의 지성계를 살펴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일본인들은 무슨 논의를 하든지 일본의 현실로 고민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문학이든, 마르크스주의든, 경제학이든, 실존주의든 어떠한 사유를 토로하더라도 일본의 현실에서 그러한 논의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는 지적 풍토를 세밀하게 분석했다. 우리는 어떨까.

"가령 프랑스 철학을 공부하면 한국인들은 프랑스에서 자기 땅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지식의 출처가 거기에 있더라도 고민의 출처는 이 땅이어야 하는데…. 결국 지적 유희에 빠져 자기 삶과 자기의 과제를 잃어버리니, 다른 이들에게도 생명력 전하지 못하는 죽은 지식을 쌓을 뿐이다. 인문학을 최대한 삶의 자리까지 오게 해야 한다."

다양한 분야를 깊게 이해하고 창조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어쩌면 한 지식인이 죽을 때까지 작업해도 부족함을 느낄만한 과제다. 김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사고 훈련을 했던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문화·철학·심리학 등 분야의 얼개를 짜면서 독서하는 습관을 길렀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성서 읽기가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오병이어 이야기에서 그 정도의 양식으로 버텨야 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예수를 만나고,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앞에 신과 담판을 벌인 아브라함의 심정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성서에서 삶을 읽는 게 아니라 교리만 본다. 읽기도 전에 결론이 정해져 있다. 그러니 신 앞에서 흔들리며 고뇌하는 인생을 이해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다른 이들의 고통에 같이 아파하는 기독교인들을 찾기 힘든 것도 성서를 교리로만 보기 때문이다. 영화 <밀양>을 봐라. 교회는 여인의 아픔에 동참하지 않고 교인만 늘리려고 한다. 그게 우리 교회의 모습이다."

"한국 교회 설교, 교리에 신변잡기 버무린 수준"

김 교수는 교회가 낮아져서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겉돌기에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는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교회가 하는 일을 조금만 주목해도 긍정하기 어려울 것이다"며, 최근 교회 밖의 비판에 대해 '교회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교회 내부에서 선포하는 설교도 교리를 뒷받침할 성서 본문을 넣고, 일상의 신변잡기를 결합한 수준이다. 얼마 되지 않는 설교 시간을 사람들의 고통을 승화하려 하지 않으니, 교인들도 목사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훤히 안다. 비개신교인이 들어도 저런 통찰이 있나 하는 감동이 나와야 하는데, 교인들에게만 익숙한 방식으로 이야기해서는 외부 사람과 소통할 수 없다. 한국교회는 선교가 불가능한 구조다."

김 교수는 사람들의 삶으로 파고들어 고난을 깊게 이해하고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인문학 풍토에, 한국교회의 수준에 쏟아 부은 비판은 끝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황급히 자리를 일어나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시국강연을 하기로 약속한 장소로 달려갔다.


태그:#김민웅, #자유인의풍경, #한국교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원도 영월에 살면서, 산림형 예비사회적기업 영월한옥협동조합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