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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도·일본·미국인 가운데 50년 후 미국이 독점적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있을지 가장 의심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대학원 강수정씨의 석사학위논문('중국의 부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과 대응') 속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런 생각이 가장 강한 나라는 한국이다.

 

강씨가 각 나라별로 표본(1000~3132명)을 추출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현재 영향력을 묻는 질문에 한국인들은 6.7(0은 '전혀 없다', 10은 '매우 영향력이 있다')로 가장 높게 평가했다. 뒤는 미국(6.5), 인도(5.9), 일본(5.6)의 순이었다.

 

향후 영향력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50년 후 미국의 영향력을 묻는 질문에 한국인 응답자의 51.4%가 미국만큼 강한 국가가 등장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38.6%인 일본이나 36.8%인 인도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중국의 힘은 느낀다, 그러나 모른다

 

중국의 힘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체감도가 상승한 것은 당연하다. 한중수교 15주년을 맞은 현재 한국의 거의 모든 움직임은 중국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교 당시 50억 달러였던 연간 무역액은 지난해 1343억 달러로 늘어났다. 또한 인적 교류는 480만명, 중국 내 상주인구는 70만명에 달한다. 실제로 한국인이 쓰는 공산품이나 농산품의 중국산 비율을 생각하면 이미 모든 것이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을 모른다. 마늘파동, 김치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의 대처방식에서 중국에 대한 무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학계·기업이 따로 논다는 데 있다. 마늘파동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부는 농업과 제조업 부문을 동시에 고려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고, 기업은 다가올 불이익을 생각해 농업 부문의 희생을 말했고, 학계는 농업 쪽의 손을 드는 등 한국 자체의 불협화음으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와 달리 중국의 경우 대외적인 부분에서는 후진타오 주석이 책임지는 외사판공실의 주도 아래 대외연락부가 태스크포스 역할을 하고 외교부는 이를 집행하면서 체계적이고 일관된 목소리를 냈다. 

 

15년 전 잘못 끼운 첫 단추

 

1992년 수교 당시, 한국은 88올림픽을 치른 후 아시아의 4마리 용 가운데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였다. 중국으로서는 자신들보다 한 단계 앞서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은 벤치마킹하기에 가장 좋은 대상이었다. 기자는 중국이 1972년 9월 일본, 1979년 1월 미국과 정식으로 수교해 경제발전의 물꼬를 트려고 했지만, 이들 국가는 중국을 이용만 했을 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나라가 한국이었을 것이다. 중국은 한국과 수교하는 게 절실했고, 수교 의지도 강했다. 물론 이런 판단에는 1983년 중국 민항기 납치사건을 처리하면서 원만해진 한중관계가 작용했지만 적극적인 곳은 중국이었다.

 

당시 수교 실무를 담당했던 김하중 현 중국대사는 얼마 전 인터뷰에서 "1992년 첸치천 당시 중국 외교부장이 베이징에서 열린 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 총회 개막 전날인 4월 13일 한중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상옥 외무장관에게 수교 교섭을 비밀리에 개시할 것을 제의했다"며 당시 중국의 의지가 강했음을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한국에 불리했다. 한국은 타이완과 국교를 완전히 단절하면서 타이완을 잃은 반면, 중국은 북한과 외교를 유지한 채 수교한다는 동의를 얻어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후 한국은 구애를 받는 처지에서 구애를 하는 처지로 변모했다. 

 

이런 외교적 불균형은 파견대사의 무게를 보면 알 수 있다. 1992년 우리는 초대 대사로 노재원(작고) 전 차관을 내세웠다. 노 차관은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외교통상부 차관을 지낸 인물로 당시 나이는 당시 60세였고, 장관급 인사였다.

 

중국 측에서는 장팅옌(1936년생)을 대사로 내세웠다. 장 전 대사는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후 조선에서 잔뼈가 굵은 한반도통이었다. 1986년부터 1989까지 북한 주재 대사관 정무참사관을 지냈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외교부 아시아사 부사장을 지냈다.

 

조리-처장-부사장-사장-국장-부부장-부장으로 올라가는 중국 외교부 체계에서 부사장은 중간 간부다. 한국으로 치면 과장급 정도다.

 

대사들의 이러한 직급 차이는 계속됐다. 황병태·정종욱·권병현·홍순영·김하중 대사 등은 장관급이었음에도 한국으로 파견되는 중국 대사는 대부분 사장이나 부사장급에 머물렀다. 북한 파견 대사들이 부부장급까지 갔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에 대한 외교적 배려는 상당히 미흡했던 셈이다.

 

폭발적인 양적 성장, 더딘 질적 성장

 

지난 15년 동안 한중 교류는 양적으로 엄청나게 늘었다. 하지만 정치나 외교 측면으로 보면 질적 성장은 매우 더딘 상태다. 이는 궁극적으로 한국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푸단대학에서 중국 정부조직 연구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양갑용 연구원은 "타이완의 경우 민진당과 국민당이 분열하는 상황에서 대중(對中) 교류의 질적 수준은 엄청나게 높아졌다, 사실 타이완 경제의 70~80%가 중국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등 주변국 상황에 따라 타이완이 중국의 한 부속지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 그런데 한중교류도 이런 모습을 닮아가고 있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기자가 보기에도 한중관계의 질적 수준은 그다지 높아지지 않았다. 질적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은 관광 등 차원의 교류에 그치는 게 아니라 중앙정부·지자체·학계·공무원·언론 등이 광범위하게 교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상호 이해를 높이고 의제를 형성해 갈 때 각기 맞는 역할과 책임을 찾게 되는데 이런 교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핵으로 대표되는 북한 문제와 동북공정으로 대표되는 역사문제라는 암초가 버티고 있다. 기자가 보기에 한국 정부는 북핵의 경우 6자회담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역사문제를 수면 위에서 강도 높게 거론하길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양국의 골이 더 깊어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학술회의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부딪혀서 완충 지대를 만드는 방식을 찾는 것이며 허세욱·김준엽 등 한중관계 원로 등의 적극적인 역할도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동북아 역사회의 등을 만들어서 외연을 확장해야 하는데, 여전히 실질적인 움직임은 사라진 채 언론 등을 통해 감정만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매머드급 연구기관 및 인원 절실

 

대중 관계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한중관계 전체를 조율할 수 있는 기구나 연구기관을 만드는 것이다. 과거엔 장덕진 회장이 이끌던 대륙연구소가 있었지만, 지금은 중국 전문 연구소가 필요성에 비해 적은 실정이다. 물론 대학마다 중국 관련 연구소 등이 있지만 연구 수준도 각기 다르고 전체를 조율하는 기구가 없는 게 현 상황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치중된 대외기관을 중국 쪽으로도 세워야할 것이다. 중국을 총괄할 수 있는 매머드급 연구기관이 절실하다. 이런 연구기관을 통해 총체적인 중국 정책이 나올 수 있고 그래야 정부·학계·기업에서 일관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주중 한국대사관은 미국에서 공부한 박사급 연구원을 채용해서 중국 측과 교류 라인을 확장하고 있다. 늦었지만 이런 결정은 중요하다. 미국이나 일본 등은 수교를 전후해 다양한 지역에 연구 인력을 파견, 이미 10여 년 이상 된 연구 인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한국은 그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기자의 판단이다. 또한 정부 뿐만 아니라 지자체·대학·학교 등도 국제화 마인드를 길러 중국과 더 다양한 교류를 할 수 있게 장려해야 할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 무역수지에서 한국은 상당한 우위를 점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무역 수지 역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중국 측이 별다르게 반발하지 않은 것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미국 정도의 반응만 중국이 보여도 한국이 받아야 하는 충격은 상상 이상임에도,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한 역할을 감안해서인지 중국은 아직까지 별다른 행동을 취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계속되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북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이런 노력이 절실하다. 북한과 중국이 맺은 북중상호방위조약은 유사시에 중국이 무력으로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되며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따라서 한국 쪽에서 중국과 사전에 충분히 조율해두지 않으면 돌발 상황에서 복잡한 갈등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또한 지나치게 높은 중국 의존도 때문에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타이완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중국 중심 경제 구조를 분산시켜야 한다. 북한·베트남 등으로 교류라인을 확대해 중국의존도가 더 이상 높아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또 중국발 위험요소가 왔을 때 완충작용을 하는 장치를 만들거나 관련 매뉴얼을 확충하는 것도 시급하다.

 


태그:#중국, #한중관계, #종속, #한중수교, #후진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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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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