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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박정희 정권은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는' 새마을 운동 노래를 만들어 우리가 잘 사는 길은 공장을 많이 짓고 도로를 확장하고 초가집을 없애는 것이 잘사는 길이요, 근대화라고 선전해 왔다. 획일주의 군사문화의 상징인 박정희식 개발논리는 다양성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와 생태계도 무차별적으로 파괴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조건 없이 받아들인 근대화론 속에는 생태계 파괴라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개발이라는 이름의 근대화론은 강대국의 논리이기도 하지만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아닌 자연의 정복을 통한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정복주의 자연관이었다. 사상 초유의 기상이변이니 적조현상과 같은 자연의 보복이 시작되면서 정복주의 자연관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인간의 욕망에 기초한 자본주의가 인간이 만든 이상적인 체제처럼 선전되는 상황에서 자본주의를 환경의 관점에서 조망해 보고 욕망에 눈이 어두워 삶의 터전을 파괴한 인간의 오만에 대해 반성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체제를 비판하는 일은 아직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처럼 색깔 칠을 당하기도 하지만 비판이 있기에 발전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존 벨라미 포스터가 쓴 <생태계의 파괴자 자본주의>(추선영 옮김 : 책갈피)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한계와 생태계 파괴에 대한 올곧은 환경관을 갖도록 안내해 주는 좋은 길잡이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연에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부여하거나 환경을 시장체제에 좀 더 완전하게 통합시키는 작업에 몰두하는 환경 경제학"에 대해 경제가 환경을 지배하는 또 다른 제국을 만드는 논리라며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자연이란 수요공급의 시장법칙에 따라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생산된 상품이 아니며 경제적 잉여라는 자본주의 체제가 자기 확장의 가치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어 경쟁을 통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잘못된 관계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지구에 가격 매기기'식의 상업주의가 환경을 파괴하고 있어 이에 대한 반성이 없는 한 인간에 대한 자연의 재앙은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오재호 부경대학교 환경대기과학부 교수는 "지구온난화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진행되면 100년 후 우리나라에도 지난 2005년 미국의 허리케인 카트리나보다 더욱 센 태풍이 내습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오 교수는 지난달 30~31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전문가 워크숍'에서 "우리나라 기온이 약 5도(℃)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는 약 100년 후가 되면 태풍의 강도가 더 세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밝혔다.

 

생태계 파괴로 나타날 지구촌의 위기에 대한 경고는 오 교수가 처음이 아니다. '공기오염을 비롯한 토양과 해양, 수질오염…'은 이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환경 파괴에 대한 원인 제공자를 저자는 '자본주의'라고 못 박고 '인간의 탐욕 때문에 환경적 필요성을 가볍게 봄으로써 생기는 이득이 소수의 부를 충족시키지만 환경파괴는 다수의 지구촌 사람들에게 환경 정의를 위한 투쟁을 낳는다'고 정의하고 있다.

 

저자의 진단이 아니더라도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라는 자본의 논리는 '이익 앞에 모든 것은 상품'이 되고 승자가 선(善)이 되는 논리가 정당화된다.

 

현대인들은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될지도 모르는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생존의 공포에 대한 근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저자는 오늘날 생태계 파괴로부터 오는 공포는 인간의 자유와 물질획득을 추구하는 '개인의 자유'에서 찾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경제성장이 환경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실제로는 경제활동은 대부분 에너지와 자원을 고갈시키는 활동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결국 경제활동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킨 쓰레기를 흡수하지 못함으로써 공공재의 사유화는 끊이지 않고 환경에 금전적 가치를 매기는 지구에 가격 매기기가 계속됨으로써 환경파괴는 제동이 걸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태계의 보존이나 재생은 가능한 일일까? 이러한 문제를 저자는 "레이건 정부시절 '노동자의 작업상 위험증가에 따라 지급되는 수당'을 근거로 인간생명의 가치를 환산한 적이 있다"는 예를 들고 있다.

 

저자는 "미국 노동자 생명의 가치는 미국 대다수 기업 경영자 1년 연봉을 훨씬 밑도는 50만 달러에서 2백만 달러로 매겨졌던 일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여성의 생명은 남성의 생명보다, 흑인의 생명은 백인보다, 훨씬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세계관은 미국의 경제학자의 인간관이 그대로 자연관에도 적용돼 '사람에게 유독성 폐기물이 빈곤한 흑인 거주지나 히스페닉 공동체에 버려지는 것'이 당연한 일로 치부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선진국의 산업 쓰레기가 개발도상국으로 이전돼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를 보지 못하는 경제학자들에 의해 환경파괴는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거품으로 뒤덮인 새만금 방조제

생태계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자체모순에 대한 수정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데 위험성이 증폭되고 있다. 생산과 분배 그리고 기술성장 등의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체제의 한계로 생태계의 파괴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욕망이 멈추지 않는 한 생태계의 파괴 또한 멈출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생태계보전을 위한 지구적인 차원의 노력을 중단하거나 포기한 일은 없다. 국제연합(UN)의 유엔환경계획(UNEP)을 비롯해 세계자연보호기금(WWF), 핵실험 반대와 자연보호운동을 벌이고 있는 그린피스 등 수많은 환경보호단체가 있지만 지구 생태계는 결코 파괴를 멈추거나 복원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저자도 지적했듯이 체제 내화된 환경단체의 운동으로는 생태계는 파괴를 멈추지 않는다. 생산의 증가가 빈곤을 감소시켜주거나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순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도 생태적인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논리가 이를 용납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는 생태계만 파괴하는 게 아니다. 돈이 되는 게 이익이라는 논리가 정당화되는 자본의 속성이 정당성을 가지는 자본주의는 정치도 도덕도 종교도 양심도 파괴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할 대안이 나타나지 않는 한 마주보고 달리는 자동차처럼 파멸을 향해 속도를 늦출 줄 모르는 지구에 사는 사람들. '지구에 가격 매기기'에서 궤도 수정을 하지 않는 생태계도 인류의 행복도 보장받을 수 없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홈페이지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 이야기(http://chamstory.net/)에서도 볼 수 있습ㅂ니다.


생태계의 파괴자 자본주의

존 벨라미 포스터 지음, 추선영 옮김, 책갈피(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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