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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8월 30일 낮, 은행에 볼일이 있어 옆지기와 나들이를 나옵니다. 동인천에 있는 은행에 갈까 하다가, 오늘은 다른 골목길을 걸어 보자는 마음으로 숭의동 쪽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금창동 골목길을 천천히 거닐다가 도원역에서 건널목을 건넙니다. 야구장 옆 내리막길을 걷자니, 학교옷 입은 아이들 무리가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야구장 쪽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큰소리. 뭘까?

지난 8월 30일 낮, 미추홀배 고교야구 대회 마지막날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 인천 도원역 숭의야구장 지난 8월 30일 낮, 미추홀배 고교야구 대회 마지막날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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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고등학교 야구대회를 하는군요. 마침 오늘이 마지막날입니다. 벌써 8회초 공격이니 거의 끝날 무렵. 어떻게 할까. 들어갈까, 그냥 지나갈까. 망설이다가 구경하기로 합니다. 조금만 보면 끝이니까요.

야구장을 찾아온 관중은 거의 인천고등학교 학생(전교생이 다 왔다고 합니다)과 인천고를 마쳤던 동문들. 그리고 학부모. 이 가운데 학부모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목청이 터져라 응원을 합니다.
▲ 학부모 응원 야구장을 찾아온 관중은 거의 인천고등학교 학생(전교생이 다 왔다고 합니다)과 인천고를 마쳤던 동문들. 그리고 학부모. 이 가운데 학부모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목청이 터져라 응원을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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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숭의야구장에서는 6회말 끝난 뒤부터는 돈을 안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공짜 구경.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바깥까지 크게 울려퍼지는 소리만큼 사람들이 꽉 들어찼습니다. 3루쪽은 학교옷 입은 아이들로 가득. 지정석은 머리 희끗희끗한 분들을 중심으로 가득. 대단하구나. 인천 야구장이 도원역에서 문학동 쪽으로 옮겨 가면서 많이 썰렁해졌는데.

하긴. 중구에 있던 인천시청을 남동구로 옮기면서, 또 인천여고가 동인천에서 연수동으로 옮기면서, 이곳 중동구 옛 시가지가 차츰 썰렁해지고 있는데. 아파트로 숲을 이룬 연수동이며 청학동이며로 몰려가도록, 게다가 영종도를 국제공항으로 만들며 또다른 아파트숲을 꾸미려 하고, 송도에도, 청라에도 자꾸자꾸 아파트숲만 만들고 있으니까…….

경기를 보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어, 타자가 선 자리에 금을 그어 놓지 않았네? 고등학교 경기라고 하지만, 타자가 서는 자리에 금을 안 긋고 해도 되나?
▲ 타자 금이 없는 경기 경기를 보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어, 타자가 선 자리에 금을 그어 놓지 않았네? 고등학교 경기라고 하지만, 타자가 서는 자리에 금을 안 긋고 해도 되나?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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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은 인천에 있는 고등학교입니다. 다른 쪽은 ‘화순고’. 어, 화순고? 화순고는 어디지? 인천에 화순고가 있나? 나중에 알고 보니 전라도 고등학교이군요. 야구대회 이름은 ‘미추홀배’. 인천에서 벌이는 야구잔치라고는 하지만, 온통 인천에 있는 고등학교 응원만 있고, 화순고 응원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전라도에서 인천이 멀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

고등학교 야구경기를 다 보고 나서, 인천공설운동장 앞에 자리한 체육사에 들렀습니다. 국민학교 적 동무가 아버지를 이어서 꾸려가는 곳입니다. 네 살이 된 딸아이는 쉬지 않고 체육사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놉니다.
▲ 체육사 집 딸아이 고등학교 야구경기를 다 보고 나서, 인천공설운동장 앞에 자리한 체육사에 들렀습니다. 국민학교 적 동무가 아버지를 이어서 꾸려가는 곳입니다. 네 살이 된 딸아이는 쉬지 않고 체육사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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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배 고등학교 야구대회는 인천고가 우승을 거머쥡니다. 학생들보다 들뜨고 기뻐하는 (선수) 학부모들 춤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야구장을 빠져나와 걷습니다. 공설운동장 앞에서 길을 건넙니다. ㅎ체육사가 보입니다. 이곳은 제 국민학교 적 동무가 아버지한테 물려받아 꾸려 가고 있는 가게. 틈틈이 사회인야구를 즐기는 동무는 자기 나름대로 야구장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삼십 분 남짓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 갈 길인 은행으로 갑니다. 통장정리를 하고 살림돈 얼마쯤 뽑습니다. 슬몃슬몃 걸어서 공설운동장 왼편 골목길을 걷습니다. 슬슬 문닫을 채비를 하는 공구상가를 가로지릅니다. 발을 내리고 문을 열어 둔 살림집 옆을 지나가고, 창문 너머로 집안살림이 모두 들여다보이는 지붕낮은 골목집 옆을 지납니다. 골목집은 너나 할 것 없이 조그마한 꽃그릇을 길가에 내어놓고 있습니다. 이 꽃그릇에는 함초롬한 작은 꽃나무가 자라기도 하고, 푸성귀가 자라기도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눈을 즐겁게 하려고 내다 놓은 꽃그릇은 아닐 테지만, 골목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 꽃그릇을 보면서 눈이 즐겁습니다.
▲ 꽃그릇 지나가는 사람들 눈을 즐겁게 하려고 내다 놓은 꽃그릇은 아닐 테지만, 골목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 꽃그릇을 보면서 눈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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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개코막걸리>인 이 막걸리집에서 마련해 주는 안주는 입맛 까다로운 분들도 손맛을 느끼며 맛나게 먹을 만큼 맛깔나다고 느낍니다. 그러면서 값도 싸고.
▲ 개코막걸리 자전거 이름이 <개코막걸리>인 이 막걸리집에서 마련해 주는 안주는 입맛 까다로운 분들도 손맛을 느끼며 맛나게 먹을 만큼 맛깔나다고 느낍니다. 그러면서 값도 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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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섰던 창영동 배다리 길로 돌아옵니다. 아까 지나쳐 온 ‘개코막걸리’ 집 앞을 지납니다. 막걸리집에서 쓰는 짐자전거는 가게 바닥을 닦는 밀걸레를 빨아서 널어 놓는 데에도 쓰이는군요.

따로 차린 가게가 아닌, 여느 살림집 벽에 간판을 붙입니다. 벽을 트고 방도 터서 부동산 자리로 씁니다.
▲ 팔구사 부동산 따로 차린 가게가 아닌, 여느 살림집 벽에 간판을 붙입니다. 벽을 트고 방도 터서 부동산 자리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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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집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조금 더 걷기로 합니다. 지송소아과 앞 세거리 건널목을 건넌 다음, 송림초등학교 옆길을 걷습니다. 이 골목에는 ‘미나리길’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왜 미나리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알 노릇이 없습니다만, 미나리라는 풀과 올망졸망 모여 있는 골목집 모습이 잘 어울리는구나 싶어요.

사람 앞일은 어찌 될는지 모른다 하는데, 이 동네가 ‘도시정화’라는 이름으로 싹 쓸려나가고 높직높직 아파트로 뒤바뀐 다음에도 ‘미나리길’이라는 이름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도서관 일을 마치고 옆지기와 성당을 찾아옵니다. 시간이 조금 늦어서 미사를 드리지 못하고 바깥에서 바람을 쐽니다. 성당 안이 덥다던 아이 하나도 잠깐 바람 쐬러 계단에 앉습니다.
▲ 송림동성당 도서관 일을 마치고 옆지기와 성당을 찾아옵니다. 시간이 조금 늦어서 미사를 드리지 못하고 바깥에서 바람을 쐽니다. 성당 안이 덥다던 아이 하나도 잠깐 바람 쐬러 계단에 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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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송림동성당. 미사 시간이 늦어서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앞마당 낮은 돌담에 앉아서 다리를 쉽니다. 꼬마아이가 성당에서 나와 계단짬에 앉습니다. 벌렁 드러눕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서 두리번거리도 하고. 몇 분쯤 그러다가 안으로 들어가며, “안은 더워죽겠어” 하고 외칩니다. 부모 따라 성당에 오기는 했는데, 성당 안이 더워서 못 견디겠는가 보군요.

송림동성당 옆에는 송현교회가 있습니다. 성당이나 교회나 역사가 제법 된 곳이라, 십자가 탑이 조금 높을 뿐, 이웃한 골목집을 내려다보지 않습니다. 다만, 새로 올라선 아파트들만은 서로 키재기 겨룸을 하며 하늘을 찌릅니다.
▲ 성당을 굽어보는 아파트 송림동성당 옆에는 송현교회가 있습니다. 성당이나 교회나 역사가 제법 된 곳이라, 십자가 탑이 조금 높을 뿐, 이웃한 골목집을 내려다보지 않습니다. 다만, 새로 올라선 아파트들만은 서로 키재기 겨룸을 하며 하늘을 찌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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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가지가 ‘깨끗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옛 시가지는 ‘더럽거나 꾀죄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도시정화사업’을 벌일까요? 정화는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고친다”는 뜻을 담은 한자말입니다. 이 도시정화사업에 따라서 이곳 옛 시가지에서 떠나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도시정화사업을 마친 다음, 이곳 옛 시가지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어떤 집이 깨끗한 집이며, 어떤 집이 지저분하거나 퀘퀘한 집인지요.

사람이 사는 집, 살림집입니다.
▲ 살림집 사람이 사는 집, 살림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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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라는 분이 “우리한테는 땅이 얼마만큼 있어야 하는가?” 하고 묻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라고 느낍니다. 이 나라 아이들이 처음 학교에 드는 예닐곱 살 나이에 스스로 돌아보도록 해 주고 느끼도록 해 주어야 할 일이라고 느낍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저마다 몇 평짜리 집에서 살아야 하는가?”요. 우리들은 돈을 얼마나 벌며 살아야 하나요? 우리들은 무슨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하나요? 돈을 버는 일이 아닌, 돈을 버는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 삶을 밝히고 가꾸고 보듬는 일을 찾을 수는 없을까요? 돈을 벌지 않는 일은 쓸모가 없거나 값없는 헛짓인가요? 어떻게 꾸려가는 삶이 아름다운 삶일까요?

어린 자매가 밤나들이 나온 골목길. 서로 어깨동무도 하고 뜀박질도 하고. 밤늦게까지 열고 있는 가게 안쪽 구경도 하고.
▲ 언니 동생 어린 자매가 밤나들이 나온 골목길. 서로 어깨동무도 하고 뜀박질도 하고. 밤늦게까지 열고 있는 가게 안쪽 구경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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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바깥밥을 먹기로 하고, 동인천역 뒤편, 순대곱창 골목으로 들어갑니다. 송림동을 지나 동인천역 뒤쪽으로 가는 길에도 골목집을 스치고 지나가고, 골목사람들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언니 손을 꼬옥 잡고 뜀박질하는 어린 동생을 보고, 느즈막한 때까지도 길거리에 좌판을 벌이고 고구마를 파는 할머니를 봅니다. 할머님, 오늘은 얼마쯤 파셨는가요.

뜨거운 국물이 먹고 싶다던 옆지기와 함께 순대국을 먹은 뒤, 살포시 골목길 마실을 즐기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앞서 구멍가게 들릅니다. 과자 몇 봉지와 맥주 한 병을 사니, 할아버지가 주판을 꺼내어 셈을 합니다.
▲ 구멍가게 할아버지 1 뜨거운 국물이 먹고 싶다던 옆지기와 함께 순대국을 먹은 뒤, 살포시 골목길 마실을 즐기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앞서 구멍가게 들릅니다. 과자 몇 봉지와 맥주 한 병을 사니, 할아버지가 주판을 꺼내어 셈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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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이 너무 매워서, 아니 맵다기보다 조미료를 너무 많이 써서, 입안이 까끌까끌 얼얼합니다. 이 입안을 무엇으로 다스릴 수 있을까요. 도시에서 살자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인지, 집밥이 아닌 바깥밥을 사먹으려 했으니 마땅한 노릇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할매와 할배가 지키는 구멍가게에 들르기로 합니다. 순대국과 마찬가지가 될는지 모르지만, 과자 몇 봉지와 맥주 한 병을 사기로 합니다. 할매에 이어 가게를 지키는 할배는 텔레비전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가게로 들어서니 안쪽 불을 켜십니다. 몇 가지 먹을거리를 골라 셈대 위에 올려놓으니, 할배는 주판을 꺼냅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계산기는 안 쓰고 주판을 놓습니다.
▲ 구멍가게 할아버지 2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계산기는 안 쓰고 주판을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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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계산기가 더 꼼꼼할까요, 주판이 더 꼼꼼할까요, 또는 머리셈이 더 꼼꼼할까요. 할배는 오랜 세월 익숙한 손놀림으로 주판알을 놓습니다. 톡 톡 톡 톡.

살림집 옥상에 올라 뉘엿뉘엿 기울어지는 해를 보기도 하고, 밤모습을 보기도 하며, 햇볕을 보기도 하고, 구름을 보기도 합니다. 눈길을 막는 높은 아파트가 없으면 눈이 확 트입니다.
▲ 살림집 옥상에서 바라본 살림집 옥상에 올라 뉘엿뉘엿 기울어지는 해를 보기도 하고, 밤모습을 보기도 하며, 햇볕을 보기도 하고, 구름을 보기도 합니다. 눈길을 막는 높은 아파트가 없으면 눈이 확 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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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옵니다. 살림집 마루에 먹을거리를 펼쳐 놓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 하루를 돌아봅니다. 오늘 만난 사람과 오늘 부대낀 골목과 오늘 겪은 여러 가지 일을 되새겨 봅니다. 내일 하루는 또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걷고 어떤 일을 겪을까요. 내일 아침에 맞이할 해는 얼마나 맑을까, 구름은 얼마나 하얄까, 하늘가 먼지띠는 얼마나 짙어질까를 헤아리다가 잠자리에 듭니다.

덧붙이는 글 | 인천 배다리 골목길을 거닐면서 느낀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끄적이려고 합니다. 골목길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말하고 싶고, 인터넷이고 컴퓨터고 쓸 줄 모르는 골목길 사람들 목소리를 조곤조곤 담아내어 함께 나누고 싶기도 합니다. 지난날 번화가였든 지금은 옛 시가지가 되었든, 한결같이 낮은 자리에서 낮은 일을 하면서 살았고, 앞으로도 살아갈 골목집 사람들 모습과 이야기를, 한 동네 사람으로서 느끼는 만큼만 적바림을 해 볼 생각입니다. 아직은 구경밖에 할 수 없는 처지이지만, 찬찬히 구경하고 느끼면서, 골목집 사람들 이야기를 받아적고 테이프에 옮겨실으면서 여러 가지 삶과 발자국을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태그:#골목길, #배다리,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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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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