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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랑 누나가 사진 찍는 것을 보며 샘이 난 아들아이가 뿅 망치로 촬영을 방해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딸아이는 이제 자신에게 휴대폰이 필요한 시대라며 주문을 해온 게다.
ⓒ 송상호
"아빠, 저 휴대폰 사주셔요."

"뭐하려고?"
"필요해서요."

"휴대폰 사주는 건 문제가 안 되는데 계속해서 나오는 사용요금은 어떡해?"
"글쎄요. 그건……."


딸아이가 중학생이 되니까 휴대폰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지 휴대폰을 사달라고 주문을 해온다. 말하지 않아도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막상 말을 해오니 한 번 더 생각이 된다.

그렇겠지. 주위의 친구들 중 휴대폰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들이 별로 없을 테니.

그동안 딸아이는 휴대폰 사달라고 한 번도 보채지 않았다. 그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냥 고마운 일로만 남겨두고 딸아이의 필요성에 대해 모른 체할 것인가는 사실 고민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딸아이에게 협약안을 하나 내놓았다.

"하나야. 그러면 너에게 휴대폰을 사줄 테니 사용요금은 니가 벌어라."
"어떻게요?"

"그건 말야. 집 창고에다가 재활용품을 모아서 파는 걸로 하자."
"제가 어떻게…."

"그러니까 너는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 중 돈 되는 것을 정리하고 모아 두었다가 팔러 갈 때는 아빠랑 함께 가는 거야. 물론 나도 고물을 조금씩 모을 수 있으면 모아 줄게."
"그럼 아빠 제가 생각해 볼게요."


딸아이는 휴대폰 사준다는 말에 구미는 당긴 듯 보이지만 해보지 않은 일이라 선뜻 한다고 하지 않는다. 하다가 그만두면 안 되니까 신중하게 생각해 본다는 딸아이를 보며 참 대견한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랑스러운 딸아이에게 휴대폰을 조건 없이 거저 사줄 만도 한데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있는 내가 우습기도 하다.

수십 분이 흐른 뒤 딸아이가 생각을 마쳤는지 입을 연다.

"아빠,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그거 어렵지 않거든. 날 따라와 봐."


이렇게 해서 왕년에 여기저기 다니며 트럭으로 '고물 수집'을 해서 팔아 생계를 유지했던 나의 실력을 딸아이에게 선을 보인 게다.

먼저 종이 상자를 일일이 펼친 후 손으로 들 수 있는 무게만큼 묶어서 만드는 것을 전수했다. 딸아이는 입으로 노랑 테이프를 잘라서 일을 하는 나를 보며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저도 해보겠다고 나선다.

입으로 테이프를 자르는 것도 한 번에 되지 않는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야 겨우 입으로 테이프를 자르게 된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가위를 찾는 것보다 입으로 테이프를 자르는 게 훨씬 빠르고 수월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캔 분리수거 차례다. 캔도 자석에 붙는 것과 붙지 않는 것을 구분하게 했다. 자석에 붙는 것은 철이니 가격이 싸고, 자석에 붙지 않는 것은 알루미늄 등으로서 가격이 일반 철에 비해 몇 배나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상자엔 자석에 붙는 것을, 다른 상자엔 자석에 붙지 않는 것을 분리하는 일을 시켰더니 아들아이까지 합세를 한다. 둘이서 자석에 '붙는다'와 '붙지 않는다'를 놓고 한참을 티격태격하며 일을 마친다.

"아빠, 또 뭐해요?"
"이젠 창고에다가 차곡차곡 잘 쌓아놓아야지. 아 참 헌 옷과 빈 병도 팔 수 있으니 박스를 만들어서 모아두고. 알았지?"


창고에다가 하나둘 정리하는 딸아이를 보니 각오가 대단한 듯 보인다. 일을 마무리하고 거실로 들어오는 딸아이와 이제 협약을 맺는 시간이다.

"고물 수집해서 번 돈은 모아서 네 이름으로 통장에다가 저금하는 걸로 하자. 그래서 일차적으로 네 휴대폰 사용요금 내는 걸로 하고, 또한 모아서 네가 필요한 데 쓰는 걸로 하자."
"예, 알겠어요."

"아참, 그리고 이 일 하는데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네 동생과 함께 하는 것이니 동생에게도 몇 퍼센트 떼어 줘야지. 몇 퍼센트로 할까?"
"그건요. 동생이 하는 거 봐서. 많이 수고한 달엔 많이 떼어주고, 적게 수고한 달에는 적게 떼어주죠 뭐."

"그럼 우리 가족 모두 보는 앞에서 너와 내가 '고물수집협약' 맺은 거다."


이렇게 협약을 맺고 보니 내가 한 일인데도 참 잘했다 싶다. 이 협약에 동의를 해준 딸아이가 고마울 따름이다.

돈을 버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일깨워주고,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 독립하는 훈련도 쌓게 하고, 폐품을 함부로 버리지 않으면 소중한 자원이 되는 거라는 것도 교육시키고, 자신이 번 돈으로 요금을 낼 테니 휴대폰 사용도 막무가내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또…… 이렇게 좋은 점들을 열거하고 있으니 '일석 몇 조'인지도 모를 일인 듯하다. 앞으로 딸아이와 아들아이가 어떻게 해주느냐만 남은 셈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이런 협약을 맺고 있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당장 휴대폰 사줄 게 아니라 이번 한 달 정도 하는 거 봐서 사줘야지요."

허허허, 아내가 한 술 더 뜨는구먼.

태그:#송상호목사, #더아모의집, #고물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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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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