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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양 여운형 선생(1886~1947).
지난 8월 17일은 강원용 목사님 1주기 기일이었다. 89세로 소천하시기까지 우리 사회의 원로로서 종교계뿐 아니라 시민사회, 문화예술계, 학계, 정계, 외교안보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공동체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큰 발자취를 남기신 어른이셨다.

강 목사님의 생애 말년 5~6년 동안 자주 뵙고 깊은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얻었던 필자는 특히 2006년 연초 특별한 당부를 듣게 되었다. 평소에도 가장 아쉬운 점을 떠올리실 경우가 있을 때마다 우리가 몽양 여운형 선생 같은 제대로 된 지도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희생시킨 경우를 지적하곤 하셨다.

바로 2007년 올해가 몽양 선생 60주기인데 생전에 목사님께서는 건강이 전과 같지 않아 행사를 추스르기 쉽지 않으니, 필자가 준비하고 주관할 책임을 지라고 강권하셨다. 목사님께서 남긴 회고록을 통해 얼마나 몽양에 대한 애틋한 마음, 통절한 감정을 지니고 계신지를 이미 알고 있었던 필자는 능력을 넘는 일인 줄 알면서도 어른의 권유를 감히 물리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몽양 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자격으로 '60주기 추모학술심포지엄'을 준비했다. 목사님이 바라시던 만큼의 규모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동안 우리 국민 특히 새로운 세대들이 제대로 알지 못했던 몽양의 진면목이 널리 알려지도록 하는 데 노력했다.

8월 17일은 또 한 분의 우리 지도자이셨던 장준하 선생의 32주기 기일이기도 했다. 선생의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탓에 강 목사님의 묘소를 찾지 못하고 저녁 경동교회의 추모예배에 참석했다. 하늘나라에서 강 목사님께서 몽양 선생과 장준하 선생을 만나보시고 아직도 갈려있는 조국에 대해 많은 우국지정(憂國之情)을 나누셨을 것이다.

다음의 글은 강 목사님 1주기에 올린 추모의 글 겸 보고문이다.

강 목사님, 몽양 60주기행사 잘 마쳤습니다.

▲ 생전의 강원용 목사(2002년 10월 24일 오전 서울 올림피아 호텔에서 열린 평화포럼 주최 '대선후보 초청강연 및 토론회' 참석 당시).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여해 강원용 목사님, 쟁쟁한 목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려오는 듯하는데 벌써 1주기가 왔다고 하니 세월이 무심합니다. 항상 세상 사람들보다 한 발 앞서 어제에 비춰 오늘을 해석하시고 내일을 헤아리시던 목사님의 열정과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리워집니다.

목사님의 간절한 기원이 하늘에 닿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하는 요즘입니다. 그렇게 걱정하시던 북핵 문제가 우여곡절 끝에 돌파구가 마련된 듯합니다. 이달 말 만 7년 만에 제2차남북정상회담이 열려(편집자 주 : 남북정상회담이 연기되기 전에 작성된 글입니다) 평화체제로 가기 위한 전제로서 한반도 평화선언 선포가 예상되고 비핵화의 필수적 전단계로서 재래무기 감축협상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그 다음에는 남북미중의 정상회담과 종전선언으로, 그리고 북미수교, 북일수교로 이어져 한반도 평화체제가 자리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다가선 정치의 계절은 우리를 아직 불안하게 만들곤 합니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50여년의 증오와 적대의 세월을 처음으로 마감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의심과 이기적 정략으로 이 기회가 무산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짐들도 나타나는 듯합니다.

바로 60년 전 분단과 전쟁을 막기 위해 좌우합작, 남북합작을 실현하려던 몽양 여운형 선생을 해코지함으로써 민족 최대의 비극을 불러왔던 그 어리석은 자해행위들이 아직도 잠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을 비롯한 평화의 사도들이 쌓아놓으신 튼튼한 성채가 그 어리석음이 넘쳐흐르지 못하도록 지켜주실 것입니다.

목사님, 우리에게 90평생 인내로써 지켜 오신 용기와 지혜를 물려주십시오. 세상 뜨시기 전인 지난해 연초, 목사님께서는 "내년에 몽양 여운형 선생의 60주기인데 어떻게 행사를 치를지 걱정"이라고 저에게 말씀하시면서 그 행사를 치러낼 준비를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목사님의 몽양에 대한 그리움, 애착은 '해방직후 좌우합작위원'이라는 직함이 증언하고 있으며 목사님의 회고록 <역사의 언덕에서>의 몽양에 대한 회고에도 짙게 배어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몽양에 대한 그리움 애착 그리고 회상 때문에 몽양의 60주기 추모행사를 강조하신 것일까, 왜 지금 새삼스럽게 '몽양 여운형'일까, 역사의 현 단계에서 우리에게 과연 어떤 리더십이 필요하기에 목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이어가면서 목사님의 회고록 제1권 '엑소더스'의 '여운형과 이승만'에 수록된 몽양에 대한 목사님의 회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해방 이후 내가 만난 정치가 중에서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사람도 몽양 여운형이었고, 인간적 애정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한 데서 오는 갈등 때문에 착잡한 심정을 느끼게 했던 인물도 역시 여운형이었다. 이 같은 여운형과의 관계 때문에 나는 그의 추도식 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추모사를 바치기도 했다.

그 일은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몽양은 중도 좌파로 분류되지만 사상적으로 워낙 폭이 넓고 스케일이 큰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공산주의자니 사회주의자니 하고 간단히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중략) 그가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만났던 것도 좌익이니 우익이니, 김일성이니 이승만이니 하는 경계를 넘어 우선 민족을 생각했고 누구라도 만나 얼마든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젊었고 또 정계의 깊숙한 속사정은 잘 몰랐지만 최소한 내가 아는 여운형은 편협한 인물이 아니었다.

(중략) 여운형은 열린 인간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두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외눈박이가 되어 사람과 세상을 보았다. 빨갱이의 눈 아니면 극우파의 눈으로밖에는 보지 못했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화합을 모색하려면 다른 점은 다르게 보면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열린 눈과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 여운형이 그런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외눈박이 소인배들이 어지럽게 설쳐대는 그 시대에서는 지도자가 될 수 없었다.

좌익 외눈박이들도 그를 껄끄러워했고, 우익 외눈박이들도 불편해했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우리나라가 남북통일을 하고 세계 속의 한국이 될 경우 과거 인물 속에서 지도자 모델을 굳이 찾으려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여운형이 그 모델감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일제 식민지시대에서 해방과 냉전, 분단시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몽양 같은 귀하고 귀한 지도자를 우리는 무참히 희생시켰습니다. 그러나 무지와 냉전분단의 시대를 뒤로하고 목숨을 걸지 않고도 화해협력, 공존번영, 평화통일을 말하고 실천할 수 있는 시대에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시대에 꼭 들어맞는 지도자 유형이 몽양 같은 인물이라고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념도 지역도 계층도 세대도 훌쩍 넘어설 수 있었던 몽양, 테러를 열두 차례나 당한 끝에 결국 목숨을 잃었지만 '독립, 통일'이라는 민족의 궁극적 목표에 부합하는 일이라면 남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간에 구름에 달 가듯이 실천했던 몽양, 그런 리더십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는 목사님의 말씀이셨습니다.

올해 60주기 추모학술심포지엄에 평생 몽양 연구에 몰두해 오신 미국 펜실베니아대의 이정식 교수께서 목사님의 말씀에 인도되어 뜻 깊은 논문을 발표해 주셨습니다. 이 교수는 '여운형의 이상과 선택-냉전의 희생양'이라는 논문의 서두에 "돌아가실 때까지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의 일을 맡고 계셨던 강원용 목사님께서 몽양의 60주기를 자주 언급하셨고, 그날이 오기 전에 제가 쓰고 있던 '여운형 전기'가 출판되어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시곤 했는데 벌써 그날이 다가왔습니다, 저의 '여운형 전기'는 출판은커녕 원고도 끝내지 못했는데 말씀입니다,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강 목사님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쓰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생각하셨던 것만큼 추모행사를 치러내지 못해서 죄송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남북이 금강산쯤에서 합동 추모학술대회를 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발표된 견해에 대해서도 일부 반론이 없지 않았지만, 이번 60주기 추모학술심포지엄을 통해 몽양의 진면목이 널리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영상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셨으며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백낙청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가 축사를 해주셨습니다. 이정식 교수 이외에도 최상용 고려대 교수 그리고 조영건 경남대 명예교수가 발제를 해주셨고 남재희 전 국회의원, 박세일 서울대 교수 그리고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해 주셨습니다.

또한 이번 60주기 추모행사를 치르고 난 뒤, 기념사업회는 2급 독립운동 유공자로 서훈되어있는 몽양 선생을 1급유공자로 승격하자는 요구를 정부에 제기했습니다. 이른바 '6.15시대'를 말하는 정부 아래서 몽양 선생에 대한 이념적 편견이 그대로 방치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함세웅 신부, 오충일 목사, <내일신문>의 장명국 사장, 강준식 기념사업회 사무국장, 그리고 여익구 동지 등 많은 분들이 애써주셨습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몽양의 '역동적 중도노선'이 새롭게 해석되고 부각되고 실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목사님, 한반도 평화통일의 그날이 오기까지 저희들을 끊임없이 깨우쳐 주십시오.

여해 강원용 목사님 1주기를 맞아
몽양 여운형선생 60주기 추모학술심포지엄 집행위원장 이부영 올림

태그:#몽양 여운형, #여해 강원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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