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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퇴근길. 사람들은 저마다 바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얼굴은 보통 무표정하고 몸짓은 하늘거린다. 무에 저리도 황급할까. 조금의 여유라도 보이면 참 좋으련만.

나 역시 무표정하게 지하철로 들어선다. 몸짓도 바쁘고, 발걸음은 더욱 바쁘다. 아무 생각 없이 지하철역으로 들어 설려는 찰나, 어디선가 경쾌하면서도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 음악에 홀려 무심코 발걸음을 돌리니 아, 그곳에선 발레리나들의 흥겨운 몸짓이 연출되고 있었다. 모 발레단이 지하철역에서 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인형들의 안무
ⓒ 김대갑
흔히 발레는 고급 무용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서양의 귀족들이 즐겨 보던 춤의 향연이자 난해하면서도 어려운 무용극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까닭에 발레는 아직도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테마이다. 고도의 테크닉과 이해하기 힘든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 발레. 그런 발레 공연을 가장 대중적인 지하철역에서 공연하다니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지하철역사의 화강석 위에서 춤을 추는 발레리나들의 모습은 우아하면서도 흥미로웠다. 그 발레리나들을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들 집에 갈 생각을 잊은 채 열심히 그들의 춤추는 모습들을 쳐다본다. 땀에 흠뻑 젖은 발레리나들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그리고 그 사이에 간간히 흘러나오는 친절한 설명들. 해설자는 발레리나들이 등장할 때마다 작품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그 설명을 자세히 듣고서야 비로소 작품의 제목이 <듀 코펠리아>이며, 지하철 공연은 일종의 Show-Case 공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중국 인형의 안무
ⓒ 김대갑
듀 코펠리아(원제 Deux Cooppelias)는 프랑스의 작곡가 들리브와 생 레옹의 안무로 19세기에 초연된 작품이다. 희극발레의 걸작이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코펠리우스 박사가 만든 코펠리아라는 인형이 일으키는 해프닝을 주요 테마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의 특징은 이국적 풍물에 대한 동경을 발레라는 장르 속에 부드럽게 융합시킨 것이다. 그 부드러운 융합 안에는 기지와 해학이 녹아 있으며, 시대에 따라 현대적으로 재해석되는 창조성이 스며 있다. 한마디로 유쾌한 가족극인 것이다.

발레는 총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프롤로그에서는 코펠리우스 박사가 인간 같은 인형을 제작하기 위해 깊게 고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엄청난 노력을 통해 너무나 아름다운 인형, 코펠리아가 탄생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코펠리아 옆에는 실패한 또 하나의 코펠리아가 있었다.

▲ 붉은 옷의 인형
ⓒ 김대갑
본격적인 무대가 올라가게 되면 제1막인 마을 앞 광장이 나타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아름다운 코펠리아를 사람으로 착각하여 정겨운 인사를 건넨다. 아름다운 코펠리아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만 추악한 코펠리아는 사람들의 조롱을 받는다. 그리고 거기에 결혼을 앞둔 프란츠와 그의 약혼녀 스와닐다의 질투가 벌어지고 코펠리아를 둘러 싼 사건은 점점 흥미를 더해가게 된다.

제2막 1장은 코펠리우스 박사의 작업실이다. 작업실에는 차이니즈, 스패니쉬, 스코티쉬, 코리안의 인형들이 한꺼번에 컬러풀한 의상을 입은 채 화려하게 늘어서 있다. 스와닐다와 그의 친구들이 손을 대는 순간, 인형들은 경쾌한 율동을 추게 되고 스와닐다도 같이 춤을 춘다. 곧 이어 그녀와 친구들은 옷장 속에서 코펠리아를 발견하곤 그녀가 인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 광기에 사로잡힌 코펠리우스 박사가 코펠리아에게 영혼을 불어 넣어 줄 도구로 프란츠를 업고 온다. 박사는 그를 이용하여 코펠리아를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스와닐다의 기지로 그의 시도는 무산되고 만다. 절규하는 코펠리우스 박사!

▲ 경쾌한 몸놀림
ⓒ 김대갑
제2막 2장은 프란츠와 스와닐다의 결혼식으로 축제 분위기가 된 마을이 주 무대이다. 흥겨운 축제에 초대받은 두 코펠리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춤추며 축제를 즐긴다. 그러나 코펠리우스 박사는 미친 듯이 거리를 헤매며 제3의 코펠리아를 만들 꿈에 부풀어 있다. 코펠리아에게 영혼을 불어 넣어 줄 사람을 유심히 찾으면서.

‘듀 코펠리아’는 동화 같은 발레인 것 같다.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읽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동화 말이다. 갖가지 화려한 의상으로 치장한 발레리나들의 경쾌한 몸놀림은 숲 속의 맑은 개울을 연상시켰다.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흥겨운 무대 몸짓은 청록의 계절이 풍기는 싱그러움을 안겨주었다.

▲ 안녕하세요
ⓒ 김대갑
부산의 경성대·부경대 지하철역에서 펼쳐진 공연은 이 네 부분 중 제2막 1장의 일부분이었다. 세계 각국의 인형들이 펼치는 화려한 퍼포먼스를 짧으면서도 강렬하게 연출한 것이다.

짧은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은 다시 저마다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시 그들의 표정은 무표정했지만 초라한 지하철역사에서 만난 발레 공연에 대한 기억은 마음속에서 화려한 표정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찌는 듯한 여름 밤, 지하철 역사에서 펼쳐진 발레 공연은 신선한 문화의 향을 오래도록 지하철역사에 오래도록 풍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지하철, #발레, #듀코펠리아, #들리브, #생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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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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