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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의 캠프장에는 유럽인들이 많아서인지, 몽골 전통음식보다는 서양 음식이 많았다. 아침부터 빵에 버터를 발라 먹자니 목이 메어 입안이 깔깔했다. 나이 지긋한 서양 노인들은 편의시설이 갖춰진 큰 버스로 여행을 다녔다. 온천 등지만 찾아다니는 우리 노인들의 관광과는 류가 달랐다. 저녁이면 캠프장 탁자에 앉아 지도를 펴고 그날의 행적과 앞으로의 여정을 메모하는 진지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독수리계곡 욜린암을 향하다

▲ 로텔 버스
ⓒ 이형덕
8월 5일 오전 8시경, 캠프장을 출발했다.

1시간을 달리자, '달랑자드가드(Dalanzadgad)'라는 꽤 큰 도시가 나온다. 비행장까지 있었다. 줄친 고비는 '구르반 싸이한(Govi Gurvan Sayhan)' 국립공원에 속하여 주변에 아름다운 관광지가 많아 예부터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다 한다.

'줄친 고비(Juulchin Govi)'의 뜻이 '여행자들의 고비'라는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대체로 고비를 자동차로 횡단하는 여정이 부담스러운 여행자들은 울란바토르에서 달랑자드가드까지 오는 비행기를 타고 와서 주변을 여유있게 둘러본다고 한다. 항공료는 대략 20만원 정도 든다 한다.

임시로 바꾸었던 타이어를 교체하고, 차마다 기름을 넣었다. 길을 잃을 경우에 대비해 차들은 비상용 기름통을 차에 추가로 싣고 다녔다. 주유기를 눈여겨보니 기름값은 우리의 절반 정도 수준이었다.

주변 마을을 둘러보던 일행들은 십자가가 걸린 집 한 채를 발견했다. 마침 아프가니스탄 피랍 문제로 심상히 여겨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칭기즈칸 때부터 다른 나라 종교의 유입에 너그러운 편이라는 몽골은, 전통적인 라마교와 함께 최근 들어 기독교의 전파도 증가하는 추세라 한다.

▲ 고비의 들꽃들
ⓒ 이형덕
▲ 율린암 가는 길가의 들꽃들
ⓒ 이형덕
멀리서만 바라보던 산을 옆으로 끼고 초원 지대를 달렸다. 알타이산맥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연봉이라는데, 지도에는 'Zuun Sayhany Nuruu'라고 적혀 있었다. 가는 길에는 들판에 보랏빛 꽃들이 군락을 이루어 피어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바쁜 일정에 잠시 차를 멈추었다. 지형에 따라 꽃들도 종류가 다양했는데, 테를지나 훕스굴처럼 키가 큰 꽃들은 아니지만 바람에 낮게 깔린 꽃들은 매혹적인 향기로 여행자의 걸음을 붙들었다. 사진작가나 식물학자들이 보면 참으로 넋을 빼앗길 만했다.

▲ 독수리계곡 가는 길
ⓒ 이형덕
오전 9시 40분경에 독수리 계곡으로 불리는 '욜린암(Yolyn Am)'에 도착했다. 신화와 관련된 지명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돌마님(국립 울란바타르대 교수) 말로는 이 계곡 높은 곳에서만 사는 새(우리말로는 독수리 정도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한다. 서식동물 지도를 찾아보니 Gypaetus barbatus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책자를 뒤져 보니, 몽골어로 Yol은 멸종위기 맹금류인 Lammergeyer를 뜻한다고 되어 있다)와 관련된 지명이라 하였다. 그 새는 날개를 펴면 2m가 넘는다고 했다.

▲ 구름과 길
ⓒ 이형덕
달랑자드가드에서 60㎞쯤 떨어진 욜린암은 줄친 고비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알려져있다. 떼를 지어 핀 들꽃 지역을 지나 협곡 사이로 난 길을 오르자니, 기기묘묘한 바위들 위로 목화솜처럼 피어오르는 흰 구름들이 쪽빛 하늘과 어우러지며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뭉게구름이며, 양떼구름들이 여기에 다 와 있었다. 흔들리는 차에서 몇 장 사진을 담았지만 결코 그 경이로운 풍경을 옮겨 오지는 못했다.

▲ 말을 타고 들어가는 협곡
ⓒ 이형덕
숨을 죽이며 사진기 셔터만 눌러대는데, 차는 고개를 넘어와 협곡의 입구에 선다. 거기서 말을 타고 협곡 안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사진 때문에 걷기로 했다. 말을 탄 일행들의 뒤에서 보자니, 오래전 이곳을 오가던 어느 대상을 보는 착각에 빠진다.

웅장한 바위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자니, 물이 소리 내어 흐른다. 돌마님 말로는 예전에는 한여름에도 협곡 사이에는 얼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는데, 최근 들어 온난화 현상으로 얼음이 다 녹아 개울물로 흐르는 것이라 했다. 한여름에 얼어붙은 골짜기의 풍경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도 컸지만, 날로 심해져 가는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 더욱 걱정스러웠다.

시간상 협곡 끝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바위산에는 독수리뿐이 아니라 표범류의 맹수도 살고 있는 걸로 안내표지판에 그려져 있었다. 그런 포식동물들이 무얼 먹고 사는가 궁금했는데, 산자락 밑에 무수히 뚫린 구멍 속에서 쉴 새 없이 쥐들이 드나드는 게 보였다. 고산쥐라고 하는데, 꼬리가 짧고 유난히 큰 눈이 흡사 햄스터를 닮았다.

독수리계곡 욜린암을 향하다

▲ 길에서 만난 양떼
ⓒ 이형덕
욜린암에서 라면에 햇반을 말아 점심을 거창하게 마치느라 예정보다 늦게 숙영지인 줄친고비 2캠프로 출발했다. 초원과 구릉 지대로 이어지는 길은 '세 여인의 산'을 좌우로 두고 달렸다. 세 남자를 사랑하던 여인이 뜻을 이루지 못해 죽어 산으로 변했다는 '세 여인의 산'은 우리가 지나왔던 고원지대의 'Baruun Sayhany Nuruu'가 가장 위쪽에 위치하고, 그 밑으로 'Dund Sayhany Nuruu', 'Zuun Sayhany Nuruu'가 가지런히 어깨를 잇대고 있었다.

사나흘 전에 내린 비로 길들은 상당히 넓은 폭의 개울로 바뀌어 있었다. 개울은 벌써 말라 있었지만, 물이 흐르며 깎아낸 일, 2m 깊이의 골짜기가 깊게 패여 있었다. 원래는 'Dund Sayhany Nuruu'와 'Zuun Sayhany Nuruu' 산 사이의 골짜기로 질러가는 길로 가려 했지만 비로 인한 변수로 'Baruun Sayhany Nuruu' 쪽으로 상당한 거리를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 개울을 따라 오르는 길
ⓒ 이형덕
얼마쯤 가다가 만난 목동에게 길을 물은 선도차 운전사 '모기'는 과감히 차를 개울 바닥으로 내리민다. 차는 이제 물이 패어낸 바닥을 따라 서서히 산마루를 향해 기어올랐다. 그리고 만나게 된 산정의 풍경들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열어나갔다. 사진기를 들이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나는 터질 듯한 가슴을 억누르며 창밖만 내다보았다.

허브류의 키 작은 풀들에 덮인 산봉우리들은 거대한 청회색의 고분을 연상시켰다. 동행한 분이, 칭기즈칸의 무덤이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는데 저 가운데 어느 하나가 아닐까 물었다. 돌마님의 말로는 행여 발견되어 훼손될 것을 염려하여 평지에 아무런 표식도 없이 평장했다는 설이 있다고 했다. 일세를 구가한 제국의 영웅치고는 참으로 조용한 안식이 아닐 수 없다.

▲ 허브에 덮인 산정
ⓒ 이형덕
해발 2600m의 산마루에 이르러, 거의 하늘에 맞닿을 만치 가까워진 산정에서, 하룻밤을 묵어가는 상상에 잠겨 본다. 손을 저으면 우수수 떨어질 듯한 별들 아래 누워 지내노라면, 산 아래 홍진을 까맣게 잊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

멀리 게르 한 채가 보인다. 산마루까지 올라와 별을 지키는 이는 누구일까. 한창 상상에 잠겨 산마루를 넘어서자니 골짜기 아래로 한 떼의 차들이 보인다. 누군가 용감하게 이 높은 산정에서 별잠이라도 자려고 숙영을 하려나 보다고 부러워 여기는데, 산 능선 아래 한 떼의 사람들이 모여 분주히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온다.

차를 세우고 다가가니, 경계의 빛이 역력하다. 사진을 찍지 못하게 거부하는 손짓도 완강하다. 무언가 땅을 파고 있는데 나중에야 그것이 합법적이지 않은 사금 채취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차 한 대가 쏜살같이 올라온다. 창을 열고 눈매가 날카로운 몽골 남자가 내게 무어라 말을 건넨다. 사인 바에 노. 우선 인사부터 건넸지만 사내의 눈은 풀어지지 않는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자꾸 말을 걸며 내게 오라고 손짓하기에 나는 '주게르(괜찮아)'라는 말만 했다. 그리고는 차에서 물통을 뒤적거려 한 모금 마시는데, 사내의 눈길이 심상치 않다. 몽골에서 처음 보는 살기등등한 눈빛이었다. 그때야 운전사가 다가와 무어라 사내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비로소 사내의 얼굴에 웃음이 감돈다.

운전사 '부저'의 말에 따르자면, 사내는 나를 몽골 사람으로 보고 혹 술 가진 게 있으면 팔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주게르(괜찮다)'라고 하며 차를 뒤져 술 비슷한 것을 꺼내 혼자만 마시니 기분이 언짢았던 모양이다. 몇 마디 배운 몽골 말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 '주게르'였는데 자칫 낭패를 볼 뻔했다.

나를 비롯해 몇몇이 몽골 사람과 외모가 닮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귀화하면 정부에서 땅 0.07㏊와 양이나 말 같은 가축도 준다고 했다. 몽골 운전사 '미가'가 아까 우물가에 온 아가씨들도 소개해 준다는 말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술보다 도수 높은 고비 바람

▲ 산을 내려와서
ⓒ 이형덕
산 아래로 내려서며 아쉬움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지나온 산마루의 지명을 돌마님께 물으니, 해득하기 어려운 몽골 발음으로 '구루반 싸이한(Gurvan Saikhan Mountain)'이라 한다. '세 개의 아름다움(Three beauties of the Gobi)'이라는 곳 가운데 하나라는데, 나중에 지도에서 찾아보니 나와 있지 않아,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정확한 경로를 일러 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산 아래는 며칠 전에 내린 물에 쓸려 돌밭길이 되었고, 드문드문 낙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 풍경은 급속도로 황량해지며, 저물어 가는 저녁 해에 멀찌감치 모래 언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홍고린 엘스(Hogoryn Els)'라는 사구 지역이었는데, 알타이 산자락을 눈앞에 두고 초원과 초원 사이에 누군가 부어놓은 듯한 모래 언덕이 무려 180㎞나 이어져 있다고 한다. 돌마님도 그것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내일 그 가운데 가장 높은 쪽의 사구를 오를 계획이다. 눈앞에 뵈는 사구를 끼고 북쪽으로 차가 달렸다. 금세 나타날 듯한 줄친 고비 2캠프장은 사방이 어두워진 뒤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길이 험하여 어둠 속을 더듬으며 느린 속도로 달리는 차에서 바라보는 어둠 속의 초원은 더욱 막막했다. 서너 시간을 더 달린 뒤에 멀리서 까물거리는 불빛 하나가 보인다. 누구의 게르에서 흘러나온 불빛인지는 몰라도 참으로 반갑기 그지없었다.

몽골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의리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황막한 초원에서 홀로 떨어져 생활하는 그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는 힘이 바로 외로움에서 오는 것이며, 서로서로 소중히 여기며 배려하게 되는 미덕을 이해하게 되었다.

차는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캠프장에 도착했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 별은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내일 비가 오지 않을까 돌마님이 걱정했다.

뒤늦은 식사를 마친 후, 술을 나누노라니 전등이 꺼졌다. 태양열을 모아 발전기로 돌려 저녁 두어 시간만 불을 켜는 탓에 늦게 도착한 우리는 식사가 끝나자마자 어둠과 만나게 되었다. 간신히 게르로 돌아가 촛불을 켜고, 지나온 길들을 돌아보자니 천막 밖에서 울어대는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그 유명한 고비의 모래 바람이었다. 심한 경우에는 안경 유리에도 긁힌 흔적이 남을 정도라는 바람이었다.

별들도 다 날려간 벌판에 서서 사람들은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어떠한 큰 소리도 바람에 날려가 바로 곁에서도 잘 들리지가 않았다. 술보다 바람에 취한 사람들은 가슴에 켜켜이 쌓아 두었던 속내 깊은 이야기들을 울음처럼 모랫바람 속에 쏟아내었다. 사람이 술보다 더 도수 높은 바람에 취하는 걸 처음 보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추후 '남양주뉴스'에도 실리게 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 사용된 몽골어의 한글 표기는 정확치 않을 수 있습니다.


태그:#고비, #몽골, #줄친고비, #욜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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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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