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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친 환자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간호사에게 패닉 버튼을 지급한다는 < BBC > 기사.
ⓒ < BBC >

영국하면 전통적으로 '신사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대개 말쑥한 정장에 레인코트를 입고 우아하게 서 있을 신사의 이미지를 연상한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이미지가 한국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자리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고정된 이미지는 환상을 품게 만든다.

"땡큐, 쏘리" 연발하는 영국 사람들, 그러나...

하지만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와 기대는 깨졌다. 먼저 이곳에서 본 영국 사람들은 그렇게 정장을 즐겨 입지 않는다. 평범한 티셔츠와 청바지를 즐겨 입는 사람이 많다. 물론 사람의 지위와 직업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대개 최대한 편하고 수수한 옷을 입는다. 평범한 학교에서 강의하는 연로한 교수님도 반팔 티셔츠에 펑퍼짐한 청바지를 입고 수업을 하신다.

영국 사람들은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빨강, 노랑 등 원색 계열의 옷도 잘 안 입고, 갈색이나 검정 등 무거운 톤의 옷을 즐겨 입는 것 같다.

물론 영국 사람들은 "땡큐", "쏘리"라는 말을 대가라고 불릴 만큼 자주 한다. 그렇지만 영국 사람들이 매우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인 것 같다. 그 단어의 뜻 자체에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길을 걷다가 몸을 조금만 부딪쳐도 "쏘리"가 나오고 가게에서 계산할 때에도 점원과 고객이 서로 "땡큐, 치어스"를 연발하지만, 이건 이들이 아주 친절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오랜 생활 습관에서 나오는 일상적인 행위인 것 같다. 정말로 고맙거나 미안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해진 상황에서 입버릇처럼 말하는 지극히 기계적인 행위 같다는 말이다.

노동자는 공공의 스트레스 푸는 봉?

얼마 전에 신문을 읽다가 이런 영국 사람들의 특성과 관련해 눈길이 가는 기사를 발견했다. 이 기사가 영국 사람들이 신사인지 아닌지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우리가 고정적으로 품고 있는 영국 이미지의 실체를 어느 정도 보여줄 수 있는 기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예상보다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일간 <가디언>은 가게의 점원이나 병원, 기차, 관공소 등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국 시민들의 폭행이나 폭언 등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가게에서 근무하는 점원들의 노동조합(shopworker's Union)에 따르면 지난해에 소매점에서만 점원들이 1만건에 달하는 고객의 폭행에 시달렸다.

"점원들이 쇠막대기로 두드려 맞고 피하주사기 바늘로 찔리는가 하면, 심지어는 주차장에서 짐을 나르는 점원을 차로 몰아붙이는 고객도 있었다"고 노동조합 대변인은 밝혔다. 특히 최근에는 나이 어린 청소년들의 몰상식한 행위가 늘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용이 불가능한 신용카드를 가지고 와서 결제하려는 것을 거절당한 청소년이 점원을 폭행해서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행위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신체적인 폭행 외에도 점원들에 대한 언어폭력도 '역사적인' 수준으로 치달았다. 유형도 가지각색인데 속삭이듯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온갖 상스러운 욕을 하는 고객이 있는가 하면, 아예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고 협박하는 등 발작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 침을 뱉은 사람들을 붙잡아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침으로 DNA 분석을 할 수 있는 키트가 소방관에게 지급됐다는 <이브닝타임스> 기사.
ⓒ <이브닝타임스>

침의 DNA 분석 기구에 패닉 버튼까지 도입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 대한 협박도 우려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영국의 국립의료원(NHS)에서 근무하는 의사, 간호사 등 직원들은 지난해에만 무려 5만8000건의 신체적인 폭행으로 고생해야 했다.

이들은 특히 술과 마약에 중독된 사람 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폭행을 당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술에 취해서 응급실에 실려 온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직원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 폭행을 일삼는다고 한다. 또 개인적인 사고 등으로 앰뷸런스를 호출해서 응급실 직원들이 갔을 경우에도 화를 참지 못하고 구조하러 간 이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내가 처음 일했던 22년 전에는 이런 일을 들어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사회가 점차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한 응급실 직원은 혀를 내둘렸다. 기차, 버스, 소방관 등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며 '침'을 튀기는 고객을 만나 수모를 겪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한다.

이처럼 고객의 얼굴을 보면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이에 대항하기 위한 기제도 발달하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인 테스코는 "직원들을 협박하지 말라"는 게시문을 게재하고, 지역 보안업체들과 연대를 강화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각종 첨단 기술 제품도 한몫하고 있다. 기차역, 버스, 소방 업무에 종사하는 직원들에게 침을 뱉은 사람들을 붙잡아 법적으로 제재하기 위해 침으로 DNA 분석을 할 수 있는 키트가 활용되고 있다.

올해 초, 스코틀랜드 스타드클라이드(Stathclyde) 지역의 소방관들에게 이 키트가 일괄 지급되었다. 또 집을 방문해서 치료하는 간호사들에 대한 폭행이 빈번해지자, 신분증 모양으로 생겼고 휴대할 수 있는 '패닉 버튼'(panic button)을 지급하고 있다. 환자가 협박하면 이 버튼을 눌러 상대를 놀라게 하고 위험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원인은 고착화한 계급, 심해지는 경쟁... 한국은?

왜 이토록 영국 사람들은 갈수록 과격해지는가. 최근 10년 동안 경제가 회복하면서 독일과 프랑스를 견제하는 등 자존심을 회복하고 있는 이들에게 무엇이 그렇게 문제인가?

겉으로 나타나는 지표와 실제 사람들의 생활은 다른가 보다. 이 같은 사람들의 변화에는 무엇보다 개개인의 불만과 스트레스가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심리학자인 게리는 "사람들은 가게에 갈 때 이미 폭발하기 직전 상태다"며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쉬운 대상을 찾아서 풀어버린다"고 분석했다.

그러면 이 스트레스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수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갈수록 확대되는 자본주의와 그 때문에 심화되는 경쟁이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중요한 변수가 아닐까.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은 그나마 행복하다. 그러나 이는 그렇지 못한 수많은 패배자들에게는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영국은 계급이 점차 고착화한 국가가 아닌가. 한 번 노동자 계급으로 태어난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그랬듯이 노동자 계급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계층 간 이동성(mobility)이 떨어지고 있다. 새로운 변화를 꿈꾸고 스스로 행동하기 어려워지는 사회적 구조는 개인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지 않는가.

혹자는 영국 사람들에게 원래 공격적인 경향이 많다고 말한다. 유명한 문화인류학자인 케이트 폭스는 저서에서 "영국 사람들은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다른 국가 사람들에 비해 실제로는 매우 호전적인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술은 특히 영국 사람들의 "땡큐와 쏘리"라는 가면(?)을 벗겨내고 그 속내를 가장 잘 표출해주는 대상인 것 같다.

영국인들은 특히 그렇게 조용하던 사람도 술을 마시면 갑자기 이상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축구장에서 술을 마시면서 응원하다가 싸움꾼으로 돌변하는 영국의 훌리건은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을 붙잡아서 조사하면, 그들은 대부분 평범하거나 성실한 회사원이나 한 집안의 어엿한 가장 아니었던가?

영국 사람들의 거친 폭력성을 비판했지만, 이 기사를 쓰면서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한국은 이 같은 비판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는 질문이 마음에 계속 걸렸기 때문이다. 박정희 통치의 잔재인 '빨리빨리'를 외치며 참을성 없는 한국 사람들. 이런 일들은 어쩌면 한국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특히 천박한 한국자본주의에서 직원들에 대한 반말, 욕설, 협박 등은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이 아닌가. 그와 달리 노동자에 대한 보호 장치는 얼마나 취약한가. 타산지석으로 삼아 뒤돌아볼 일이다.

▲ 영국의 대형 유통업체들은 직원들이 고객에게서 위협받지 않게 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사진은 요크에 있는 ASDA 매장.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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