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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역할에 대해 부시와 아프간 대통령, 견해 차이를 보이다."

<뉴욕타임스> 인터넷판 기사에 실린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관련 기사 제목이다.

"부시와 카르자이, 파키스탄에 거점을 둔 알카에다에 주목하다. 두 정상 이란의 역할에 대해 이견을 보이다."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 기사 제목이다. 뉴욕타임스나 마찬가지로 관심의 초점은 온통 '알카에다'와 '이란'에 맞춰져 있다.

미-아프간 정상 '한국인 인질' 언급 없었다

▲ 부시 미 대통령과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8월 6일(미 현지시각) 캠프데이비드 미국대통령별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백악관 홈페이지
정작 우리(한국민)의 관심사인 인질 문제에 대해서 두 나라 정상은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그것에 관해 물은 기자도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연히 두 정상의 기자회견을 다룬 메인 기사에서 한국인 인질사태를 단 한 줄이라도 보도한 미국 언론도 없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그렇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중동과 유럽 언론은 그나마 조금은 달랐다. 아랍계 위성방송인 <알자지라>는 인터넷 영어판 기사에서 "두 정상은 탈레반에 납치된 21명의 한국인 인질들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영국 'BBC'는 인터넷판 기사에서 카르자이 아프간 정상이 "탈레반은 이미 패배한 세력으로 아프간 정부에게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발언한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이와 함께 "미국과 아프간 두 정상이 인질과의 맞교환 협상은 결코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는 고든 존드로 백악관 대변인의 말을 인용 보도함으로써 한국인 인질 사태가 이번 두 정상회담을 계기로 '파국'을 맞을 수 있음을 은연중 암시했다.

<로이터>도 '백악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부시와 카르자이 두 정상이 탈레반과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 맞교환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아프간 정상회담은 한국인 인질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돼 왔다. 그 결과는 한국 정부와 한국인 피랍자들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나타났다.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됐던 바이다. 하지만, 인질 석방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한국 정부나 피랍자들로서는 '좋은 단서'라고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알자지라>가 "아마도 카르자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아프가니스탄에서가 아니라 미국에서 훨씬 높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미국 정부의 확고한 지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서였는지 "탈레반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이런 허장성세에 탈레반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예측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의 허장성세 때문에 한국 정부의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지게 될 것이다. 피랍자들의 안전 또한 더욱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크다.

기자회견장에 한국 기자는 없었나?

그런 점에서 오늘(7일) 이 소식을 전하는 외신 보도나 국내 언론 보도에서 주목되는 점은 한국인 인질 사태에 대해 두 정상이 단 한마디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정상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 이전에 한 회견 내용에서도 그렇지만 기자들의 질의응답에서도 그랬다. 기자들의 질문 자체가 없었으니, 두 정상은 번거롭게 이에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바로 그 점에서 안타깝다. 왜 한국 언론의 기자들은 이 두 정상에 한국인들의 최대의 관심사인 한국인 인질 사태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일까?

그 답은 아마도 그 자리에 한국인 기자들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두 정상의 기자회견은 미 메릴랜드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있었다. 오늘 아침 한국 신문들의 기사는 모두 '워싱턴'에서 보낸 것으로 돼 있다. 캠프 데이비드까지 취재를 간 기자는 없었다는 풀이가 가능한 대목이다.

▲ 시민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들이 31일 저녁 주한 미 대사관 앞에서 아프간 피랍 사태 해결을 위한 미국의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도대체 뭐하자는 것일까. 아프간에서 피랍된 한국인 인질사태의 키를 쥐고 있는 두 당사국의 대통령이 만나 인질들의 운명을 결정한 자리일 수도 있는 그곳만큼, 또 두 당사국 대통령의 입장을 직접 들어볼 기회만큼 지금 중요한 취재가 또 어디 있을까?

<조선일보>는 어제 사설과 지난 주말 기사를 통해 여야 원내대표들의 '미국행'을 가차 없이 비판했다. 처음부터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는 면담 일정도 잡기 어려워 그 실효가 의심되는 지극히 정치적인 행보라는 비판이었다. 심하게는 '쇼'라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를 비롯한 한국 언론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과 아프간 두 대통령이 한국인 인질 사태를 위해 무슨 대화를 나눴으며, 인질들의 무사 석방을 위해 도대체 무슨 조치를 어떻게 취할 것인지를 우리 국민들을 대신해 물어봐 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언론이요, 기자들 아닐까?

아프간 현지 취재도 필요하지만...

오늘 <한겨레>는 아프가니스탄 현지 취재를 막고 있는 정부의 현지 취재 금지 조치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인질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데도 정부의 이 같은 취재 봉쇄로 한국 언론이 외신 보도와 현지 통신원들의 부정확한 정보 제공 등에 휘둘리고 있는 점들을 지적했다.

<조선일보>도 며칠 전 카이로 특파원의 '칼럼'을 통해 "안전 문제는 기자나 들어간 사람들이 알아서 책임지면 될 일인만큼 여행금지국 지정을 풀라"며 <조선일보>의 기존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치기도 했었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에 앞서 정작 있어야 할 곳에서라도 제대로 취재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캠프 데이비드는 적어도 '여행금지'된 곳은 아니지 않은가. 백악관을 출입할 수 있는 기자라면 캠프 데이비드 취재도 어렵지 않은 곳 아니던가. 한국 기자들이 떼로라도 몰려가 열심히 손을 들고, 또 열심히 물어보면 그 자체만으로도 '뉴스'가 되고, 인질 사태에 대한 지구촌의 관심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한국인 기자들을 찾아볼 수 없는 캠프 데이비드의 기자회견장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보였는지 모른다.

태그:#백병규, #미디어워치, #부시, #카르자이, #캠프 데이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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