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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란 책이 있다. 아마 일본에 대한 타자(他者)의 평가 중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책일 것이다. 국화는 지조와 성숙함, 그리고 겸손함의 상징이니 일본인의 표면적 모습에 닮아있다. 게다가 일본 왕실의 문장(紋章)이니 일본의 정신적인 기호로 자리한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친일 논란에 놓여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을 텐데 어찌되었건 국화는 일본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체계이다.

그렇지만 국화 뒤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들고 있는 냉혹함이 존재한다. 왕의 뒤에서 칼을 휘두르며 일본을 주무르던 사무라이들은 힘의 논리에 의해 일본 역사를 뒤흔들었고, 이런 행동양식은 피 속에 흐르며 할복이나 가미가제 특공대처럼 극단적인 모습으로도 표출되곤 하였다.

어찌 보면 '국화와 칼'이란 정의가 일본에 대해 선입견을 주는 위험한 말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대칭되는 핵심 단어를 추출하여 이렇게 날카롭게 잘 묘파한 코드도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또한, 한 번도 일본에 가보지 않고,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쓴 책이니 더욱 놀라울 뿐이다. 그러면서도 문화인류학자의 시각을 통한 자료의 해석 결과는 이런 것이구나 생각해보게 된다.

일본 사람들을 흔히 양면적, 조금 나쁘게 말해 이중적이라 말한다. 이런 모습은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일본인은 너무나 극단과 극단의 모습을 드러내기에 더욱 두드러지게 비추어진다. 모든 것이 예절에서 시작하여 예절로 끝나는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도 일본인이지만 태평양전쟁 때 그 잔혹한 행동을 일삼은 것도 그들이기 때문이다.

'일본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친절함이다. 간사하게도 일본에 있으면 친절한 모습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져 조금만 친절하지 않으면 예의 없는 사람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이렇게 친절한데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인지 꿍꿍이속이 무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도 이들이다. 흔히 '혼네(本音, 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 겉으로 내세우는 말)'라는 말도 그런 이유에서 대비되어 존재하는 말일 것이다.

ⓒ 김호연
이들은 자신의 속내를 피하기 위해 두루뭉술하게, 나름대로 빠져나갈 구석을 마련하곤 한다. 그래서 계산적이고 치밀한 일본인들이지만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는 뜨뜻미지근한 화법으로 푸는 것이 이들의 특기이다.

일본어 기초 회화에서 보면 '∼と思(おも)います(∼라고 생각합니다)'라는 표현을 배우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함에도 단정을 피하며 둘러치는 이 표현방법은 일본인들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화법일 것이다. 하지만 이도 그냥 의례적인 일본식 말투일 뿐 그냥 이렇게 말하면 '이게 이 사람의 생각이구나' 알아서 해석해야 하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태도는 규칙과 배려라는 일본의 가장 중요한 덕목과도 맥을 같이한다. 그렇다면 이런 두 가지가 함께 나타나는 선택의 순간에는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정답일까?

언젠가 학교 일본어 강좌 시간에 샤프 만지다 잘못하여 뚜껑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 수업이 끝나면 주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만 집에 와서야 그 일이 생각 났다. 그런데 강좌는 일주일에 세 번이니 이틀 후에야 그곳을 가기에 그냥 잃어버렸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본인들이라면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예전에 히로시마의 호텔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아침에 길을 나서며 그냥 국제적 에티켓을 생각하고 감사 표시로 돈을 머리맡에 놓고 나왔다. 그런데 저녁 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돈은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아마 국제적 관습보다는 '손님의 돈이니 그냥 제자리에 내버려두는 것이 옳은 일이다'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이었나 보다.

그때 '아 이게 일본사람들의 생각이구나!' 놀란 적이 있었는데, 그런 기억 때문인지 이번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어떻게 될까 다시 한 번 일본인들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일이라 여겨졌다.

이틀 후 그 자리에 앉으면서 뚜껑이 있나 없나 호기심에 찾아보았다. 그렇지만 그 뚜껑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래 설마 청소하면서 이거 다 치웠겠지 하고 눈을 돌리는데 그 옆자리 바닥에 놓여있는 뚜껑.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쓴웃음만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냥 이틀 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아니면 청소를 하다가 쓸려 옆으로 간 것으로. 하여튼 뚜껑은 그 자리에는 없었다. 그 옆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태그:#국화와 칼, #일본인, #이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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