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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에서 일어난 정전사고로 인해 삼성전자가 막대한 피해를 볼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외국의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는 연구원이 정전과 반도체공장과의 상관관계와 피해규모, 앞으로의 전망 등을 분석하는 글을 보내왔다. <오마이뉴스>는 이 연구원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익명으로 게재한다. <편집자주>
▲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이 지난 2006년 11일 서울신라호텔에서 세계최초로 40나노 32기가 플래시메모리 상용화를 발표하고 있다.
ⓒ 삼성전자

3일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변전설비 이상으로 인한 정전이 발생하여 반도체 생산라인 6개의 가동이 멈췄다. 이 소식은 오전까지 상승하던 삼성전자 주가를 끌어내리고 경쟁사인 하이닉스의 주가를 끌어올렸으며, 블룸버그와 로이터같은 해외 통신사들을 통해 해외에도 소식이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세계 2위의 반도체 회사다. 그 중에서 메모리 반도체 부분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부동의 1위 회사다. 이번 정전으로 인해 피해가 큰 플래시 메모리 부분에서는 전체의 34%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이번 정전으로 인해 반도체 생산이 중단되면 그만큼 세계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의 주요 경영진 모두가 화재현장으로 출동했음은 물론이다. 이번 정전사태로 인해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그룹도 큰 영향을 입을 거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정전이 반도체 공장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공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도대체 정전과 반도체 공장은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을까.

[특징 ①] 먼지를 방지하기 위한 공조 유지

반도체 공장에서는 '웨이퍼'라고 불리는 얇은 원판에 그림 그리듯 회로를 새겨넣는 방식으로 반도체를 생산한다. 웨이퍼 위에 그려지는 회로는 머리카락보다 얇은 선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먼지 하나라도 떨어지면 선과 선이 붙어버려 불량으로 이어진다.

반도체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방진복이라 부르는 특수 복장을 하고 눈만 내 놓은 채 일하는 것은 바로 이 먼지를 없애기 위해서이다.

먼지를 없애기 위해서는 방진복만 필요한 게 아니라 공장 내부의 공조도 중요하다. 공기의 흐름은 늘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공장 내부는 바깥보다 높은 기압을 유지해야 한다. 여기에 적당한 습도와 공기 내 불순물이 없는 청정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 반도체 공장에서는 먼지를 없애는 '방진복'이 필수다. 사진은 지난 2002년 어느 대학교 기술혁신센터의 반도체 연구 크린룸 시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특징②] 진공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생산 장비

대부분의 웨이퍼 생산장비들은 진공상태에서 공정을 진행한다. '진공'이란 일정한 공간 안에 아무런 물질이 없는 상태로 공기가 없는 마치 우주와 같은 상태를 뜻한다. 이를 위해서 갖가지 진공장치들이 잠시도 쉬지 않고 가동이 된다.

일부 장비는 원하는 진공상태를 만들기 위해 몇 시간 이상의 준비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한번 진공 상태가 훼손되면 기존에 사용하던 부품을 제거하고 새로운 부품을 사용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특징 ③] 각종 유독성 물질의 사용

반도체 산업이 '첨단' '청정' 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실상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이만한 3D 업종도 없다. 이는 높은 기압 하에서 방진복을 입은 채 교대 근무를 하며 일해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유독성 물질을 사용하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반도체 공장에서는 주로 여러가지 가스와 화학물질을 이용한 화학 반응을 통해 제품을 만든다. 황산·불산·질산 등 유독성 물질부터 공기와 닿으면 바로 불이 붙 버리는 실란가스(SiH4) 같은 위험천만한 가스들이 많이 쓰인다. 상품화된 거의 모든 가스와 화학물질들이 반도체 공정에서 쓰인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

이러한 유독성 물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가 함께 마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유독성 물질의 공급이 사고에 의해 중단되면 다시 공급하기 위해 안전장치에 대한 점검 및 공급과정에서 별도의 절차가 필요하다.

공급장치 뿐만 아니라 공정 진행 후 배출되는 가스와 화학물질의 처리장치 역시 가동이 중단되면 다시 가동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특징 ④] 환경 변화에 민감한 제품

제품 생산을 위해 공장에 투입된 웨이퍼가 모든 공정을 마치고 완제품이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제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빨라야 열흘이고, 길면 한 달 이상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웨이퍼는 환경 변화에 민감하여 온도나 습도가 변하면 불량이 발생한다. 때론 대기에 일정 시간 이상 노출이 되는 것만으로도 불량이 발생하여 별도로 보관을 하기도 한다. 한 달 동안 여러 장비와 공정을 거친 웨이퍼가 한 순간의 환경 변화으로 인해 막판에 버려지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반도체 공장에서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고 365일 쉬지 않고 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생산량 극대화가 주목적이기도 하지만 공장 내 환경 변화를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삼성전자가 입게 될 피해는

▲ 지난 2월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반도체산업'이 '청정산업'으로 왜곡되고 있다며 이를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반도체 공장은 각종 유독가스와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정전 후 안전장치에 대한 점검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전은 반도체 공장의 위에 열거한 네 가지 특징을 한번에 교란시키는 치명적인 사고다. 이번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정전으로 돌아가 보자.

정전으로 인해 K2라인의 여섯 개 공장의 가동이 멈췄다. 응급 전원공급장치가 가동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순간 정전 발생시의 사고를 막을 수준일 뿐, 장시간 정전시 장비 가동이나 유지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핵심 장비 외에는 가동이 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삼성전자가 입게 될 피해는 어떤 게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건 정전 당시 생산하고 있던 제품의 피해다. 생산이 진행되고 있던 웨이퍼는 전량 폐기된다고 보는 게 옳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급격한 환경변화에 웨이퍼가 견뎌내지 못할 뿐더러, 사고 당시 진행되었던 웨이퍼를 시장에 내놓았을 때 시장의 반응을 생각한다면 재생할 수 있는 웨이퍼도 폐기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두번째는 공장 내 공조와 습도 같은 조건을 맞추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상가동이 늦어지게 된다. 단순히 에어컨을 틀고 공조기만 가동하면 되는 게 아니라 공기 내 습도 및 불순물 정도를 확인하고, 필터를 점검하고, 정전으로 인해 발생한 각종 오염원을 제거해야 한다. 정전으로 인해 공장 내부의 습도에 변화가 생겼다면 공장 내부 조건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데 수일이 걸릴 수도 있다.

세번째는 웨이퍼 생산장비의 안정화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다. 정전으로 인해 진공상태가 깨진 장비를 원래대로 돌리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정전이 발생했을 때 갑작스런 전압의 변화에 의해 장비의 부품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

고장난 부분을 찾고 수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부품 수급과정에 어려움이 어려움이 발생하면 그만큼 안정화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장비 내에 가스나 화학물질이 흐르고 있던 상태에서 정전이 되었다면, 내부의 부품을 모두 교체해야 한다.

장비 상태를 점검하고 웨이퍼 생산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는 계측장비를 활용한 실험도 필요한데, 이번처럼 많은 장비에 한꺼번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계측장비의 부족으로 인해 시간이 더 지연될 수도 있다.

수습도 세계 최고이길... 세계가 바라보고 있다

이번 정전사고의 추정 피해액에 대해 언론사별로 500억원에서 7000억원까지 다양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의 실제 피해액은 공장의 정상가동이 언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삼성전자는 이틀 안에 정상가동이 이뤄질 것이라고 발표를 했지만 이는 투자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한 대외용일 가능성이 크다.

끝으로 한가지 더, 피해액을 줄이기 위한 빠른 정상가동도 중요하지만 정상가동에만 급급하다보면 안전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각종 유독가스와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는 공장이기 때문에 정전 후 안전장치에 대한 점검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록 정전사고는 났지만 그 수습 과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회사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삼성전자의 수습 과정을 지켜보는 눈이 많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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