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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마다 휴가를 알리는 문구가 나붙은 걸 보니 바야흐로 휴가철인가보다. 누구나 휴가에 얽힌 즐겁거나 황당한 사연이 있을 터이다. 문득 2년 전 여름 제주도에 휴가 갔다가 딸아이가 열이 나는 바람에 무척 마음고생 한 일이 떠오른다.

2005년 7월 초, 우리 가족은 장마철에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한 번 태워달라는 아이들의 성화를 핑계로 남편을 졸라 떠난 휴가였다. 사실 결혼 7년간 크고 작은 집안일에 가족여행 한번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큰 맘먹고 비행기 타고 가는 여행을 계획했건만, 역시 짠돌이 남편은 비용을 아낀다며 비수기인 장마철을 골랐다.

김포공항 비행기 안에서 "얘들아, 비행기 타니 좋아?" 하고 묻자, 아이들이 "응, 너무 좋아"하며 싱글벙글했다. 그런데 비행기가 이륙하자 두 녀석이 "으앙!" 하고 동시에 울어버리는 게 아닌가.

비가 내리는데다 바람까지 불어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 심하게 흔들린 탓이었다. 어른인 나도 섬뜩했는데 당시 겨우 세 살과 여섯 살인 아이들이야 오죽했겠는가. 나와 남편은 제주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아이들을 꼭 안고 있어야 했다.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다

▲ 제주도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다행히 비행기는 제주도에 무사히 도착했다. 신기하게도 서울은 분명히 비가 오고 있었는데, 제주도는 바람만 좀 세게 불 뿐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고 있었다. 제주에서 사는 친구가 남편과 함께 마중을 나와 주었는데, 친구 말로는 제주도는 장마는커녕 가뭄이 계속되는 중이었다.

우리는 해안 일주도로를 드라이브하며 오랜만에 집 떠난 즐거움을 만끽했다. 정말 대한민국이 아닌 이국에 와 있는 듯했다. 한라산 중턱까지 올라가 그 유명한 도깨비 도로도 달려보았다.

저녁을 먹으면서 딸과 아들은 음식점에 딸린 정글짐에서 신나게 놀았고, 그런 아이들을 보는 내 마음도 덩달아 신이 났다. 친구가 "자주 놀러 와" 하고 말하자, 나도 모르게 "당근이지"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여행의 즐거움은 거기까지! 잘 놀던 딸아이가 갑자기 이마에 열이 난 것이다. 처음 타본 비행기라 이착륙 때 놀라서 그런지, 저녁 먹은 게 체해서 그런지 얼굴까지 노래졌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 쉬는데 아이의 몸은 점점 불덩어리로 변했다. 해열제를 사러 약국을 찾았지만 마침 일요일이고 저녁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문을 연 곳이 도통 보이지 않았다.

대여섯 군데를 돌아다닌 끝에 겨우 약을 살 수 있었다. 해열제를 먹었지만 딸아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온몸에 열이 더욱 펄펄 끓었고, 견디기 힘든지 앓는 소리에 흐느끼기까지 했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웃옷을 다 벗겨주고 찬물로 찜질을 해주는 등 별별 방법을 다 써 봐도 소용이 없었다.

"이러다 애가 잘못되는 거 아냐?"
"응급실이라도 갈까?"
"조금만 더 지켜보자."


나와 남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발만 동동 굴렀고, 그렇게 여행 첫날밤을 꼬박 지새웠다. 누구 노래처럼 제주도의 푸른 밤을 그리며 날아왔건만, 낯선 제주도의 밤은 왜 그리도 긴 걸까? 딸아이가 끙끙 앓는 그 와중에도 잠 많은 남편은 언제부터인가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부랴부랴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따님이 바이러스성 감기에 걸렸군요. 당분간 외출을 삼가는 게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맙소사! 여행 중인데 외출을 하지 말라니…. 유람선을 타러 바다에도 가고 조랑말도 타기로 했는데. 그뿐인가? 갯벌에 나가 조개랑 게도 잡기로 했는데….

하지만 사랑하는 딸아이가 아프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날 우리 가족은 의사의 말대로 숙소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룸 청소하는 분이 "여행 오셨는데 어디 나가지 않으세요?"하며 이상하다는 듯 물었을 때는 열이 나는 아이를 업고라도 나가고 싶었다.

아들 녀석은 누나가 아프거나 말거나 자꾸 밖에 나가자고 졸라댔다. 보다 못해 남편한테 "당신이 아들 데리고 바람 좀 쐬고 와" 하고 말했다. 마치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남편은 "그럴까?" 하고는 아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호텔방에서 모녀만 덩그러니 남겨 있었다. 딸아이는 여전히 끙끙거리고 있었고, 나는 수건으로 땀을 닦아 주었다.

숙소에서 나간 남편은 아름다운 섬을 구경하느라 신이 났는지 끼니때가 되어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나도 바닷물이 넘실대는 해변으로 달려가 바닷물에 물도 담그고 모래성도 쌓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픈 딸아이를 간호해야 할 엄마한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녁 무렵이 되자 남편이 아들 손을 잡고 돌아왔다. 남편은 자기와 아들만 산책해서 미안했던지 회를 한 접시 떠 왔다. 나는 "딸이 아픈데 회가 넘어가겠어?" 하면서 남편을 노려보았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지 않던가. 남편은 "아들, 갑자기 왜 이렇게 춥지" 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아들은 "엄마, 나 아빠랑 바다 보고 왔어? 조개껍데기도 주웠어" 하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열이 내리지 않은 딸아이는 자기도 바다 구경을 가겠다며 떼를 썼다. 할 수 없이 딸아이를 업고 잠깐 바깥바람을 쐬어 주었다.

아들 녀석은 낮에 바닷가를 걸어다니느라 피곤했는지 밥숟가락 놓기 무섭게 곯아떨어졌다. 남편은 천방지축 아들을 따라다닌 탓인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한테 딸을 부탁하고 잠을 자고 싶었지만 입에서는 "내일 아들 데리고 놀아야 할 테니 먼저 자"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딸아이는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좋아하는 만화영화가 나와도 보지 않고 자다 깨다 했다. 그렇게 남편의 코 고는 소리와 딸아이의 앓는 소리와 더불어 제주도의 밤은 깊어만 갔다.

"여행 너무 시시했지?"

▲ 속까지 들여다 보이는 제주 바다. 제주 바다를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다음날, 그러니까 여행 마지막 날이 되었다. 밤새 간호한 정성이 하늘에 닿았던 걸까. 아침에 딸아이는 열이 한결 내렸다. 나는 '하루라도 제주 구경 한번 제대로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커튼을 힘차게 젖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장마철인데도 신기하리만큼 구름만 끼고 비가 내리지 않던 제주도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거참, 이번엔 날씨가 우리 가족을 도와주지 않았다.

비가 와도 바다 구경을 꼭 해야 한다고 우기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빗속을 뚫고 다니며 제주도에 우리 가족의 발자국을 남기고 돌아다녔다. 비 오는 날이라 잘 나오지도 않을 사진도 연방 찍어댔다.

마침내 2박 3일의 짧고도 긴 제주도 여행은 끝이 났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딸한테 "여행 너무 시시했지?" 하고 묻자 딸아이는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는 "아니요, 난 너무너무 재밌었는데…, 비행기도 타고 바다도 봤잖아요" 하고 대답했다. 순간 애들은 맘 편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철이 다시 돌아오니 제주도로 여행 갔다가 딸아이 시중만 들다가 돌아온 아쉬움이 느껴진다. 얼마 전에 남편이 달력을 바라보며 "올 휴가는 근사하게 다녀오자" 하고 말하기에 나는 눈을 흘기며 "나 혼자 딸내미 간호하는 동안 잠도 퍼질러 자고 산책도 하려고. 됐네요. 됐어" 하고 말했다.

남편한테 말은 모질게 했어도 여름이니 만큼 휴가를 다녀와야 할 듯싶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어디로 휴가를 가야 아무 탈 없이 아름다운 추억을 듬뿍 만들어올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나의 여름휴가 실패기'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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