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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가 열리는 12시가 가까워지자 경찰은 익숙한 듯 '폴리스라인'을 둘러 놓았다.
ⓒ 최재인

낮 11시 50분. 전경버스에서 내린 경찰 두 명이 일차선도로 한가운데 주황색 '폴리스라인'을 두르기 시작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곧바로 '나눔의 집' 봉고차 두 대가 폴리스라인 안으로 들어왔다.

매주 수요일 낮 12시, 일본대사관 맞은편의 10평 남짓한 이곳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 촉구'를 위한 수요집회가 열린다. 772회째를 맞는 8월 1일, 공간은 예전 그대로인데 집회참가자들이 늘어나 인도까지 가득 메웠다.

과제 때문에 참여한 고등학생, "친구들과 고민 나누고 싶어"

▲ 과제 때문에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영신여자실업고등학교 학생들. "개학 후 친구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싶다"라고 말했다.
ⓒ 최재인

30분 전부터 집회를 기다리고 있던 여고생 세 명을 만났다. 영신여자실업고등학교 2학년인 세 명의 여고생은 "오늘 처음으로 집회에 참석한다"고 말했다.

핸드폰으로 일본대사관을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던 이은주(18)씨는 "국사 과목 방학 숙제라서 오게 되었다"며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집회가 벌써 772회째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함께 온 이서혜(18)씨는 "미국에서 종군위안부결의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일본이 사과할지 모르겠다"며 "빨리 해결돼서 할머니들이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수영(18)씨는 "과제 제출하는 걸로 끝나지 말고,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친구들과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1년 만에 다시 만나는 장점돌 할머니(85)

▲ 8월 1일 수요집회에서 만난 장점돌 할머니. "사진 이쁘게 찍어줘"라며 환하게 웃으셨다.
ⓒ 최재인
2006년 6월,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증언대회'에서 뵀던 적이 있는 장점돌 할머니를 1년 만에 다시 만났다.

장 할머니는 "한 달 동안 몸이 아파서 못 나왔어. 아휴, 숨이 차서(가슴을 치며) 병원에 입원했다가 어제 다시 나온 거야"하며 기쁜 소식 듣고 아픈 것도 잊어버렸어"라고 말했다.

인도까지 가득 메운 집회 참가자들을 둘러보며 숨을 크게 들이 쉰 할머니는 "기쁘고 말고. 10년 넘게 맨날 똑같았는데 미국이 나서서 일본놈들 잘못한거 맞다고 하니까 당연히 좋지. 어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라며 "기쁘기도 기쁘지만 먼저 세상 떠난 사람들 생각이 나서…. 그놈들이 늙은 우리들 얘기는 무시해도 미국이 하는 말까지 무시하겠어? 죽기 전에 내 두 눈으로 사죄하고 배상하는 거 꼭 보고 싶어"라고 말했다.

김성곤(열린우리당) 의원이 할머니 한 분, 한 분과 악수를 청한 뒤 돌아가자 장 할머니는 "서운해. 한국에 서운해. 이런 문제 앞장서서 해결하는 게 대통령의 의무잖아. 늙은이들이 힘이 있어? 억지로 우리 얘기 좀 들어달라고 할 수도 없고…"라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저기(일본 대사관을 손가락을 가리키며) 안에 쳐들어 갈 수도 없으니까 여기서라도 소리 질러야지. 죽은 사람들이랑 우리 후손들 위해서라도 일본이 잘못했다는 거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좋겠어. 800회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될까?" 장 할머니는 한 명이라도 남아있을 때 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늘이 마지막 수요집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 8월 1일 수요집회에서 만난 '정대협' 사무처장 강주혜씨. "하나의 돌파구가 마련된 것일 뿐,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 최재인
강주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처장을 만났다. 결의안 통과 소식을 듣고 흘린 기쁨의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듯 했다. 강씨는 미국 하원에서 결의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들과 춤을 추며 기쁨을 나눴다고 했다.

강씨는 "이렇게 많은 기자분들과 시민분들이 함께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오늘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 저녁 기자들에게 '내일도 수요집회 하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며 "10년 넘게 이 자리를 지켜온 할머니들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생긴 것이지, 결코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들 말처럼 오늘 집회가 마지막이었으면 얼마나 좋겠냐"는 말을 덧붙였다.

미국하원의 결의안 통과 이후 일본정부가 즉각 '유감'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것에 대해 강씨는 "일본정부를 국제적 망신을 당할 게 아니라면 우리 요구에 귀를 열어야 한다"며 "세계 여론을 무시한다면 아무리 경제대국이라고 해도 고립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8월 6일~19일, '세계공동행동주간'으로 만들 것"

강씨는 "미국은 시작에 불과하다. 세계 각국에서 결의안이 채택될 수 있도록 로비활동을 펼칠 것"이라며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캐나다, 호주 및 4개국을 순회하면서 전시회 및 증언대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8월 8일에는 선포식을 열고 8월 6일부터 8월 19일까지를 '세계공동행동주관'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씨의 설명에 따르면 '세계공동행동주관' 기간 동안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시적으로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강씨는 "여기 참여한 고등학생과 시민들만의 힘으로는 일본의 사과를 받아낼 수 없다, 정부의 외교적 활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정부가 적극적인 해결의 의지를 보일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6기 인턴기자 최재인입니다. 

인턴기자 차예지와 함께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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