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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지마할은 뒷 모습 마저 매혹적이다.
ⓒ 양학용
인도 아그라에서의 일이다. 아내와 나는 5일 내내 호텔 옥상에서 타지마할을 보며 지냈다. 저녁놀을 받아 붉어진 타지마할은 매혹적이었다. 야무나 강가에 비친 뒷모습도 아름다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라고 극찬했던 이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그라를 기억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타지마할이 아니다. 늙은 릭샤왈라에 대한 추억이다.

타지마할보다 더 기억에 남는 그 사람

도착하던 날이었다. "쁘랜드!", "왓 뚜아 네임?", "위띠 깐뜨리 아 유 쁘럼?" 릭샤왈라들이 우루루 달려들었다. 혼을 빼놓겠다는 듯이 인도식 영어로 와글거렸다.

나는 그들을 물리치고 몇 발자국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친구를 선택했다. 그가 젊어보였기 때문이다. '릭샤'란 자전거에 이어붙인 인력거고 '릭샤왈라'란 릭샤를 몰아가는 인력거꾼이니, 어찌해서 노인의 릭샤에 올라타는 날이면 도착할 때까지 미안한 마음에 엉덩이를 들썩거려야 했다.

"후욱 후욱" 그는 거친 숨소리를 뱉어내며 아침 안개 속을 내달렸다. 그 때였다. "앗! 흰 머리!" 아내가 절망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어찌 된 일인지 머리에 두른 광목천 사이로 짧은 흰 머리가 보였다. 목덜미에는 주름이 문신처럼 선명하게 돋아 있었다. 패달을 저어가는 깡마른 다리도 눈에 띄었다.

"아, 또 실수다."
"분명 타기 전에는 젊었었는데… 언제 노인이 된 거야?"

아내와 나는 마음이 불편했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다만 내릴 때에 얼마의 팁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타지마할 정문 앞까지만 데려달라고 했다. 그건 그가 노인이라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여행자들 사이에 아그라의 릭샤왈라는 유명했다. 아주 악명 높았다. 어느 호텔에 가자고 하면, 한 달 전에 불타 없어졌다거나 지난 수해로 공사 중이라거나 별 기발한 이유를 내세워 자기가 커미션을 받는 곳으로 데려가 바가지를 씌운다고 들었다. 때문에 우리는 아예 타지마할 정문에 내려서 호텔을 찾아다닐 요량이었다.

뭐 이런 사기꾼이 다 있어?

▲ 인도의 악동, 릭샤왈라
ⓒ 양학용
잠시 후, 그는 낡은 성문을 가리키며 타지마할의 정문이라고 내려주었다. 나는 팁으로 10루피(250원)를 더 얹어주었고, 그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이제 배낭을 짊어 메고 숙소를 찾아나서야 할 때다. 그런데 길이 이상했다. 지도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한참을 헤매고 나서야 좀 전부터 지켜보고 있던 남자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그는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타지마할? 1㎞는 더 가야지. 저 쪽으로."
"뭐라구요! 1㎞! 또 속았다!"

미안한 마음에 팁까지 줬는데도 그는 엉뚱한 곳에 내려놓고 가버린 것이다. 기가 막혀서. 우리는 화가 나서 식식거리며 걸었다. 그 때였다. 뒤에서 릭샤 하나가 졸졸 따라오며 치근댔다.

"어이! 친구. 타지마할까지는 멀어. 걸어가기 힘들다구."

우리는 또 한 번 릭샤를 탈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쳤다.

"필요 없어! 이제 릭샤 같은 건 절대 안 타! 당신네 릭샤꾼들은 몽땅 다 사기꾼이야!"
"어이 친구. 내가 좋은 가격에 해줄게. 너흰 내게 두 번째 손님이니까, 5루피만 내. 이번엔 정말로 타지마할까지 데려다주지. 약속해!"

"잘못은 내가 했는데 왜 화는 당신이 내지?"

▲ 인도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가 살아있다.
ⓒ 양학용
뭐라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좀 전의 그 늙은 릭샤왈라가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있었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당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이, 진정하라구."
"기가 막혀. 당신 때문에 30분이나 헤맸는데 진정하라니. 엉뚱한 장소에 내려주고선 이젠 가격을 깎아주겠다고? 이 나쁜 놈! 사기꾼!"

내가 씩씩거리며 쏘아붙이자 그가 내 눈을 가만히 쳐다보며 말했다.

"어이 친구, 잘못은 내가 했는데 왜 당신이 화를 내지? 이미 지난 일이잖아. 지난 일로 화내는 건 네 마음의 평화를 해칠 뿐이야. 그리고 넌 어차피 걸어가야 하잖아. 길은 멀고 배낭은 무거워. 안 그래?"

그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휭 가버렸다. 말문이 막혔다. 어찌 그리 당당할 수 있는지. 사기를 친 사람이 도리어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서 가버린 것이다.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다. 그런데 '풋' 웃음이 났다. 여전히 괘씸했지만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 화내면 나만 손해지. 길은 가야하고. 맞는 말이었다.

떠나고 나면 그리워지는 땅, 인도

▲ 결혼식, 거리의 코끼리
ⓒ 양학용
그 때 이미 아내와 나는 40여 일째 인도를 여행중이었고,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다. 예고 없이 기차가 10시간씩 연착할 때나 물건 값에 바가지를 씌웠을 때도 인도인들은 이렇게 얘기했다.

"왜 화를 내지? 그런다고 안 오는 기차가 빨리 오나?"
"그 돈이 언제부터 당신 돈이었지?"


나는 그들의 말솜씨에 번번이 당했다. 그러고도 이렇다 할 대꾸 한 마디 못한 것은 꼭 비용이 적어서만은 아니었다. 과거와 시간과 돈…. 인도인들은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들을 나그네에게 던지곤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인도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로 넘쳐나는 나라다. 첨단 IT산업 강국이면서도 소똥을 연료로 사용하고, 릭샤와 손수레·우마차·오토바이·고물버스, 고급 승용차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바퀴 달린 것들이 어슬렁거리며 도로를 가로지르는 소나 개와 뒤엉켜서 굴러다닌다. 지켜보고 있자면 100년의 시간이 한 자리에 공존하고 있는 듯 어지럽다.

그래서일까. 인도를 다녀온 여행자들의 반응은 극히 대조적이다. 어떤 이들은 영적이고 신비로운 인도를 또 다시 그리워하고, 어떤 이들은 더럽고 지겨운 곳이라 몸서리치고는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가 한 곳에 있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고,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면서도 사기꾼과 도둑놈이 넘쳐나는 인도는 다양하면서도 늘 모순적이어서 여행자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릭샤왈라는 인도의 얼굴

여행자들은 릭샤왈라를 두고 사기꾼이라고도 하고 거리의 철학자라고도 한다. 아내와 내가 만난 릭샤왈라는 인도의 얼굴로 다가왔다. 욕심 없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장난꾸러기 악동. 그들은 익살스럽게 우리에게 말하곤 했다. 많이 가졌으니 조금만 내려놓고 가라고, 빨리 살아왔으니 조금만 쉬었다 가라고 말이다.

아그라를 떠나는 날이었다.

"위띠 깐뜨리 아 유 쁘럼?(which country are you from?)"

릭샤왈라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젊은 릭샤왈라였다. 인도는 여행할 때는 지긋지긋하다지만 정작 떠나고 나면 그리워지는 땅이라고들 한다. 아내와 나도 벌써 인도가 그립다. 아마도 그건 그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양학용

덧붙이는 글 | 양학용 기자는 아내인 김향미씨와 결혼 10년째이던 해에 길을 떠나 2년 8개월 동안(2003년 10월 16일~2006년 6월 4일) 아시아·유럽·북미·중남미·아프리카·중동 등 세계 47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종종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그 때마다 매번 다르게 답합니다. 나라마다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문화와 자연을 순위로 매기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기준이 있다면, 저희의 경우,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만남은 여행을 설레게 만들며 오랫동안 그리움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낡고 헤진 배낭 속에서 꼼틀꼼틀 피어나는 추억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태그:#릭샤왈라, #인도, #아그라, #타지마할,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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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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