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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홈에버 노동자가 바깥에 모인 가족, 친구, 동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먼 길 왔는데. 조금만 기다리면 만날 수도 있으니…."

강혜정(44)씨가 아들 박상우(17)군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하지만 엄마는 결국 아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높은 담벼락도, 끝없이 이어진 철책도 아니었다. 바로 경찰이었다.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 점거 15일째를 맞은 14일. 딱 그만큼 홈에버 노동자들도 갇혀 있었다. 3일 전까지만 해도 출입구를 드나들 수는 있었지만 경찰이 출입구를 봉쇄해 이젠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매장 2층 유리창엔 '갇혔어요'라는 글자가 나붙었다.

이날 저녁 7시 30분 월드컵몰점 2층. 홈에버 노동자 10여명이 유리창에 바짝 붙어 멀리 떨어진 얼굴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가족, 친구, 동료 400여명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마이크를 잡는 것밖엔.

마이크는 홈에버 노동자의 입과 가족, 동료들의 귀를 이어주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매우 떨렸고, 누군가는 흐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면 눈가의 물기 때문에 카메라의 초점을 정확히 맞출 수 없었다.

[사연 1] 너무나도 슬픈 말, "사랑해"

▲ 강혜정씨.
ⓒ 오마이뉴스 김호중
"상우야 사랑해. 너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살게 할게."

이날 저녁 8시, 마이크를 잡은 강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강씨는 저 멀리 보이는 아들에게 "매일 아침을 김밥으로 때우게 해서 미안해"라고 외쳤다. 그러고는 빨간 스카프를 들어 올려 입을 힘주어 막았다. 강씨의 흐느낌은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모자의 마음만은 통했던 것일까? 아들 상우군은 기자를 만나 "'상우야 사랑해'라는 말이 가장 슬펐다"며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강씨와 아들 상우군을 따로 인터뷰해 재구성한 것이다.

엄마 "고1인 아들이 한창 많이 먹고 커야할 나이인데, 잘 먹이지 못해 미안해요. 아침에 김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다고 하는데 가슴이 미어지죠."
아들 "엄마가 있으면 좋겠지만, 엄마가 저런(자랑스러운) 일을 하시는데 김밥 한 줄 먹어도 별 탈 없어요."

▲ 박상우군.
ⓒ 오마이뉴스 선대식
엄마 "노조활동 하느라 가족끼리 저녁식사도 제대로 못했어요. 아들이 무슨 일은 하는지 물어보지는 않는데, 가끔 이유를 설명해주면서 '네가 많이 도와줘야 한다'고 말해요."
아들 "비정규직이 뭔지는 알아요. 정규직처럼 어떤 직장에 고정된 게 아니라 회사에서 해고할 수 있는 거잖아요. (회사가) 부당하게 행동해도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는 거라고 알고 있어요. (노조활동을 하는) 엄마가 자랑스럽고 뿌듯해요. 옳은 일을 하는 거잖아요."

엄마 "오늘 가족문화제를 한다고 해서 볼 수 있을까 해서 불렀죠. 혼자 멀리서 2시간 동안 전철 타고 왔더라고요. 혹시나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요. 기다리라고 했어요."
아들 "늦더라도 들어가고 싶은데 못 봐서 마음에 걸려요. 사실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큰 것 같아요. '바보' 같은 경찰 때문에 진짜로 못 만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정말 못 보니까 갑갑해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상우군은 "무용학원에 다니고 싶지만 아직 엄마한테 말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엄마를 위해 "2학기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도 했다. 상우군은 고등학생답지 않게 엄마가 왜 홈에버에 갇혀있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상우군은 "지금으로서는 (엄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지지하는 것뿐"이라고 밝혔다.

[사연 2] 78살의 아버지와 44살의 아들

"제 발로 걸어 나가지 않겠다"고 강하게 외치던 김상현(44) 이랜드 일반노조 홈에버 지부장. 그 역시 점거 현장을 찾아온 가족 앞에선 감정선을 온전히 유지할 수 없었다. "가족들, 사랑합니다"라고 외치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어깨를 들썩거렸다.

30분 뒤인 밤 8시 40분,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는 매장 출입구에서 그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김 지부장은 "부모님과 누님이 와있다"고 밝혔다.

▲ 김상현 이랜드 일반노조 홈에버 지부장.
ⓒ 오마이뉴스 김호중

- 발언 도중 눈물을 흘렸는데?
"78살인 아버지와 75살인 어머니를 보자 깜짝 놀랐다. 부모님이 편찮으시기 때문에 오지 말라고 했는데…. 특히 아버지는 온몸에 수포가 생기는 병에 걸렸다. 얼굴에도 생기는데, 병원에서는 치명적이라고 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부모님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목이 메었다."

- 며칠째 들어가지 못하고 있나?
"6월 30일 점거 후 집에 못 들어갔다. 사실 몸이 안 좋다. 미친 듯이 일해 신장이 손상됐다. 사구체신염에 걸렸다. 병원에 입원하려고 했는데, 점거 때문에 미뤘다. 사실 다음 주부터 단식농성에 들어가는데 약을 먹어야 하는 이유로 단식에서 빠졌다."

-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있다. 아내와는 이혼했다. 딸은 누님 집에 가있다. 얼마 전 집에 들어갔을 때 딸이 침대로 파고들더라. '저녁에 들어와?'라며 묻는데, 엉덩이를 두드려줄 뿐이었다. 또한 '비정규직이 뭐냐'고 물어 '돌아가게 되면 자세히 알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직 딸에게 현장에 보여줄 수 없을 것 같다."

김 지부장과 인터뷰 도중 전화벨이 울렸다. 김 지부장의 누나인 듯했다. 김 지부장은 "나 걱정 하지 마, 빨리 (부모님) 모시고 가, 누나, 어머니, 아버님 수시로 챙겨드려"라고 말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비참한 것을 느낀다"며 "노사 모두 잘 살 수 있는 방향으로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의 누나인 김성희(47)씨는 "몸 아픈데 제 동생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모든 사람이 움직여서 이길 수 있게 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용역업체 직원들이 갑자기 농성장에 진입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김상현 이랜드 일반노조 홈에버 지부장의 노모(앞줄 가운데)가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주위에 있는 이들은 농성하는 노동자들을 만나러 간 가족, 친지, 친구들.
ⓒ 오마이뉴스 김호중

"너희들은 가족도 없느냐"... 끝내 열리지 않은 길

이날 문화제는 밤 9시 30분까지 계속됐다. 2시간여 동안 마이크를 잡은 홈에버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가족에게, 시민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읽어나갔다. 목소리에는 물기가 잔뜩 배어있었다.

이들은 계속해서 경찰에게 "너희들은 가족도 없느냐"며 가족과 만나게 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불법시위니 당장 해산하십시오"라는 말이었다.

매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끝끝내 열리지 않았다.

태그:#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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