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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위에서 가지와 잎이 자라는 살아있는 장승
ⓒ 이승철
"야, 이놈아! 넌 왜 그렇게 못생겼니? 이거 원, 마주 보고 서 있으려니 기분 나빠 죽겠구먼."

호젓한 산길에 자리 잡은 장승공원이었다. 건너편에 서 있는 장승이 맞은편에 서 있는 장승에게 눈을 부라리며 일갈했다.

"허허허 이놈 보게, 사돈 남의 말 하고 있네 그려, 네 놈 생긴 것은 또 그게 뭐여? 찢어진 입에 왕방울 눈을 해가지고선..."

느닷없이 욕을 먹은 맞은편의 장승이 몹시 화가 나는 표정으로 대드는 말이었다.

"내 얼굴이 어때서, 이만하면 잘 생긴 얼굴이지, 저쪽 편에 있는 장승 녀석 좀 보라고, 정자 옆에 머리카락 기른 녀석 말이여."

"그건 그려, 그 녀석 지가 무슨 생나무라고 머리까지 기른 꼬락서니 하곤, 어디 그뿐이겠어, 외국에서 왔다는 미국장승, 뉴질랜드 장승 뭐 그 녀석들 생긴 것 좀 보라고? 우리들이야 정말 이만하면 쓸 만한 인물이지. 안 그려?"

서로 못생겼다고 싸우던 장승들이 다른 장승들을 비교하며 화해를 하는 기미가 보였다, 그때였다.

▲ 으뜸청양대장군 장승
ⓒ 이승철

▲ 아주 특이한 모양의 오방장승
ⓒ 이승철
"이놈들아 조용히 좀 혀, 못생긴 놈들이 서로 싸우긴 왜 싸워? 허허허 그러고 보니 두 놈 다 생긴 것 하곤. 코는 왜 그렇게 늘어지고 입은 또 왜 그렇게 쭉 찢어졌니? 두 놈 다 도깨비 쌍통을 해 가지고 선... 그런데 네 놈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거여?"

장승 둘이 마주보며 다투는 소리를 들으며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서 있던 다른 장승이 나선 것이다.

"나는 전라도 해남 땅에서 왔는디, 자넨 어디서 왔남?"
"나는 경기도 안성에서 왔구먼,"
"허허 그려! 그려! 먼데서들 왔구먼, 나는 이곳 청양 땅의 으뜸장승이라고 혀, 우리 이렇게 통성명도 했으니 지금부터 싸우지 말고 잘 지내보세 그려. 허허허."

충남 청양의 칠갑산 자락에 있는 장곡사 입구에는 수많은 장승들이 저마다 독특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데 이곳이 바로 국내 최대의 장승공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느 지방이나 장승들이 서 있다. 모양도 지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공통점은 하나같이 못 생기고 흉측하다는 것이다. 장승은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있는데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 높이 10미터, 무게 15톤의 거대한 장승 두 개
ⓒ 이승철

▲ 장승공원 풍경
ⓒ 이승철
이 장승의 기원에 대해서는 고대의 성기(性器) 숭배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장생고(長生庫)에 속하는 사찰의 밭 표지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나무를 깎아 만든 목장승은 솟대에서, 돌을 다듬어 세운 석장승은 선돌에서 유래했다는 등의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확실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장승의 명칭도 여러 가지로 불렸는데 조선시대에는 한자로 후(堠), 장생(長栍), 장승(長丞, 張丞, 長承), 등으로 썼다. 또 지방에 따라 장승, 장성, 벅수, 법수, 당산할아버지, 수살목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장승의 기능에 대해서도 지역 간의 경계표지 역할설이 있는가 하면 이정표로 쓰였다는 설도 있다. 어느 지방에서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들어 모신 곳도 있고, 큰길가나 마을의 경계지점에 있는 장승은 그 장승을 기점으로 사방의 주요 고을 및 거리를 표시하기도 했다.

장승들 중에서 마을의 수호신으로 세운 것은 이정표 표시 같은 것을 해놓지 않았다. 천하대장군이니 지하여장군이니 하는 글자도 써놓거나 새겨놓지 않았고, 마을의 신앙 대상으로서 주로 액운이나 돌림병을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명절 때면 주민들이 그 앞에 밥이나 음식을 차려놓기도 하였다.

▲ 멕시코, 폴리네시아, 뉴기니, 뉴질랜드 장승
ⓒ 이승철

▲ 미국의 플로리다와 알래스카, 그리고 캐나다의 장승
ⓒ 이승철
모양은 대체로 흉측하게 만들어져 있지만 어떤 것은 오히려 해학적인 모습인 것도 더러 있다. 이런 장승은 대개 남녀장승으로 쌍을 이루어 세워놓는데 남자장승은 머리에 관모를 쓰고 몸통에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또는 상원대장군(上元大將軍)이라 새기거나 쓰여 있으며, 여자장승은 관이 없고 앞면에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또는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하원대장군(下元大將軍)이라는 글자를 써놓거나 새겨놓았다.

방향에 따라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렸는데 동쪽에 있는 장승에는 동방청제축귀장군(東方靑帝逐鬼將軍), 서쪽에는 서방백제축귀장군(西方白帝逐鬼將軍), 남쪽에는 남방적제축귀장군(南方赤帝逐鬼將軍), 북쪽에는 북방흑제축귀장군(北方黑帝逐鬼將軍)이라고 써서 세워놓고 축귀하는 민간 신앙의 성격을 나타냈다.

칠갑산 장승공원은 본래 이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특히 장승이 많은 지역이어서 지역적 특성을 살려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 장승공원에는 현재 200여개의 국내외 전통장승과 창작장승이 세워져 있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특별한 것은 아주 거대한 장승으로 높이 10미터에 무게가 15톤이나 나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뉴질랜드와 뉴기니,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 등 외국의 장승들이 특이한 모양으로 서 있는 모습이었다.

▲ 청양깨비
ⓒ 이승철

▲ 장승공원 풍경2
ⓒ 이승철
또 한 곳에는 8개의 크고 작은 돌장승들이 가족처럼 한곳에 모여 있는 모습이었는데 이 장승의 이름은 5방 장승이라고 했다. 오방장승은 음향오행설에 근거하여 동, 서, 남, 북, 중앙 등 다섯 방위의 액운을 모두 막아주는 장승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방장승이 5개가 아니고 8개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중앙의 제일 큰 대장 장승을 좌우에서 보좌하는 장승이 둘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누워 있는 와장승이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장승공원보다 조금 위쪽 정자 옆에 있는 화단의 홀로 서 있는 장승이었다. 이 장승이 놀라운 것은 장승의 몸통 윗부분에서 가지와 잎이 자라는 살아 있는 장승이었기 때문이다.

이 장승은 장승조각가 방유석(47)씨가 직접 만들어 민속마을 입구의 정자 옆에 세운 것으로 살아 있는 버드나무를 거꾸로 깎아 제작했다고 한다. 살아 있는 이 장승은 다리가 셋이며 얼굴은 콩밭을 매는 아낙네 상을 하고 있었는데 머리 윗부분에서 작은 가지와 잎이 자라고 있어서 마치 아낙네의 덥수룩한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 장승 체험관
ⓒ 이승철
한 지역의 특성을 살려 조성해 놓은 칠갑산의 장승공원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잠간 동안이나마 기분 좋은 웃음을 자아내고 볼거리를 제공하는 독특한 민속공원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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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장승, #장승공원, #칠갑산, #방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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