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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상의 사진이 석궁고장 부위다, 메뚜기라고 칭하는 줄을 거는 부품이 석궁 뭉치틀에 있다. 이 부품을 경찰은 수리한 후 증거라며 제출한것. 오른쪽 상부의 사진은 증2호인 현장에서 김명호 교수가 발사했다며 경찰이 제출한 증거품 사진이다. 화살 한발과 옆에 차고 있던 두발의 화살 사진이다
ⓒ 추광규
지난 1월 15일 전직 교수에 의한 현직 부장판사에 대한 충격적인 '테러사건'이 일어난바 있다. 당시 이 전직교수는 살인미수죄로 긴급 체포되어 경찰 수사 등을 거쳐 재판에 회부되었다.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 김명호다.

검찰은 그를 처음에는 살인미수죄로 구속수사 했으나, 무리한 점이 보이자 죄명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 흉기 등 상해)'혐의로 공소장을 바꿔 기소했다. 석궁을 사용해 상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사건만 봤을 때는 단순한 것 같지만, 현재 이상한 논란이 계속되는 곳이 있다. 바로 <다음카페> '김명호교수구명운동본부'가 그곳이다. 이곳 회원들은 각종 증거를 거론하면서, 석궁에 맞았다는 박 부장 판사의 자작극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

김 교수는 구속기소된 이후 그간 4차례의 공판이 진행되었으나, 가장 중요한 증인이자 피해자인 박 부장 판사는 단 한번도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보기드문 재판이 계속되자, 급기야는 피고인측에서 재판부를 못 믿겠다며 재판부기피신청으로 인해 지난 4월 16일 4차 공판을 끝으로 더 이상의 재판 일정이 잡히지 않고 있다.

논란 1- 부러진 화살은 어디로 갔는가

2차 공판이 열린 3월 21일, 석궁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아파트 경비원 김아무개씨는 박 부장 판사가 건네준 화살에 대해 "화살촉이 뭉툭했다", 또 화살의 상태에 대해 "손으로 당기는( 화살 뒤쪽의 날개 깃) 윗부분이 없는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계속해서 "판사님이(박 부장 판사)주신 부러진 화살도 거기다 갖다 놨습니다"고 증언 했다.

피해자인 박 부장 판사도, 2월 2일 있었던 검찰 진술에서 "뽑은 화살을 주위에 버렸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후 누군가가 현장에서 저에게 화살을 보여 주었을 때 화살이 거의 중간 지점에서 부러져 있었는데"라며 진술 한 바 있다.

증언에 따르면 사건현장에서 박 부장판사가 자신의 몸에 맞았다고 주장하는 화살은 '끝이 뭉툭하고, 날개깃이 부러진 화살'또는 '거의 중간지점에서 부러져 있는 화살'이었던 것.

하지만 살인미수죄의 결정적 물증인 이 화살은 현재 사라지고 없다. 검찰이 법정에 증거물로 제출한 화살 9개중 그 어느 것도 끝이 뭉툭하지도 않고, 날개깃이 부러지거나 부러진 화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9개 모두 멀쩡한 상태의 화살일 뿐이다.

경찰은 석궁에서 발사되었다며 압수한 화살 및 현장에서 압수한 물품 등에 대해 지난 1월 16일 국과수에 유전자 분석을 의뢰한 바 있다. 결과는 '석궁 화살 3점'에서는 '혈흔 반응 음성이며, 유전자형이 검출되지 않음'이라고 나왔다. 경찰이 감정을 의뢰한 화살은 박 부장 판사의 몸에 꽂혔던 화살이 아니었던 셈이다.

논란 2- 고장난 석궁을 경찰이 수리했다?

경찰이 법원에 제출한 석궁은 정상적으로 작동 되도록 수리를 한 것이다. 지난 4월 3일 진행된 3차 공판에서 20년 경력의 석궁전문가 고아무개씨는 이를 증언했다. 경찰은 왜 경찰관리집무규칙 제51조(증거물 등의 보전) 위반 행위를 하면서까지 이 같이 무리한 행동을 했던 것일까?

박 부장 판사는 지난 1월 15일 오후 6시30분경 자신의 아파트 입구에서 1.5m격한 거리의 김명호 교수가 쏜 석궁의 화살에 맞아 왼쪽 복부에 상처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그는 2월 2일 검찰 진술조서 작성시 복벽좌상 외에 오른쪽 팔꿈치 열상, 오른쪽 옆구리 둔상 등으로 약 3주간의 진료를 요한다는 상해진단서를 추가로 제출했다.

하지만 박 부장 판사의 화살에 맞아 상처가 생겼다는 주장에 대해 가해자인 김 교수는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 4월 3일 3차 공판에서 박 부장 판사의 상처에 대해 "칼에 베인 상처라고 진술했다고 저는 기억을 하는데 그 점을 분명히 해 달라"며 요청했다. 박 부장판사의 상처가 석궁에 맞아 생긴 상처가 아니라 칼로 인한 상처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 국과수에 경찰이 의뢰했던, 유전자반응 검사결과에 대한 국과수의 회신내용. 화살에서는 혈흔이 나오지 않았다.
ⓒ 추광규
김 교수는 박 부장판사가 아파트 앞에 도착한 뒤 한 손에 장전된 석궁을 들고 다가가 "그게 판결이냐"고 항의하며 실랑이 하던 과정에 화살이 발사됐다고 주장했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발사된 것을 자신도 느꼈으나 박 판사가 맞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김 교수는 "서로 붙들고 있던 손에 힘이 빠지지 않았다"며 "박 부장판사가 화살에 맞았다면 '억'하는 소리나 다른 반응이 있었을 것인데 그런 반응도 없었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김 교수 사건 이후 개설된 '다음카페 김명호 교수 구명본부' 박경식 원장은 "석궁사건은 박 부장의 자작극"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출된 화살은)경비원이 봤다는 화살과 다르다"며 "제출된 화살 9개 모두에서 혈흔반응이 음성으로 나왔다는 것은 화살에 의해 상처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의 주장을 요약하면 석궁에서 발사된 화살이 박 부장 판사의 몸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고, 화살은 발사된 후 바닥에 부딪힌 후 끝이 뭉턱하게 주저앉았다는 것. 화살이 사라진 이유는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고의로 화살을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과장이었던 이희성 현 전남구례서장은 박 원장 주장에 대해 "이 사건에 대해 할말이 없다"고 인터뷰를 거부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강력2계 임재석 경위는 화살의 행방에 대해 "우리들은 지구대에서 압수해온 그대로 송치했다"며 경찰서에서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경찰이 석궁을 수리한 사실에 대해 피의자인 김 교수는 "경찰이 수십 번 연습해 박 부장판사의 주장에 꿰맞추기 위해 수리했다"고 주장했다.

박 부장판사의 주장처럼 위에서 아래쪽으로 석궁이 향해 진다면 고정장치가 고장난 석궁의 화살은 흘러내리기 때문에 격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경찰이 석궁을 수리한 이유는 '제대로 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는 얘기다.

석궁전문가 고씨는 3차 공판에서 "두 계단 위에서 쐈다고 한다면 화살이 흘러 내려오는데 어떻게 쏘느냐,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김 교수 변호인의 질문에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임재석 경위는 "강력2팀에서 취급한 사건은 맞지만 (석궁을 수리했는지)답변할 수 없다"며 확인을 거부했다.

논란 3- 상처 피해가 과장됐다?

▲ 증거자료로 법원에 제출된 박 부장 판사의 상처부위
ⓒ 추광규
박 부장 판사를 처음 인접 병원으로 호송했던 119구급대의 소방관은 당시 호송일지를 확인하며 "1월 15일 18시36분 출동, 현장 18시40분 도착, 병원후송 18시52분, 19시15분 귀소"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박 부장 판사의 상처부위에 대해 "배꼽 옆 좌측에 약 0.5cm 창상으로 인한 상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 SBS 뉴스추적 >과의 인터뷰에서도 "찔린 것 보다는 칼로 베인 것 같다"고 말한바 있다.

진술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에서 발급한 진단서상의 가로 2cm, 깊이 1.5cm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셈이다. 또 사건 발생 직후 현장에서 후송되었던 병원인 서울의료원 가로 0.8cm, 깊이 1.5cm 발표와도 거리가 있다.

구명운동본부 회원들은 법원에 제출한 박 부장 판사의 상처사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상처가 깊어서 상처부위를 덮고 있는 거즈를 제거하지 못할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소독약을 바른 후 지혈이 된 가벼운 상처임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거즈가 덮힌채 상처가 난 부위라며 제출한 사진이 어딘가 어색하다는 얘기다.

구명본부 가족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정용석씨는 "죄가 있다면 석궁을 들고 간 죄 밖에 없다"며 "쏜 것은 진실을 밝히고 지은 죄 만큼 벌을 받겠다"고 말했다. 그는 "4월 16일 4차 공판을 마지막으로 재판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데, 재판이 빨리 진행 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한편 각종 의혹에 대해 박 부장판사 "사건에 대해서는 말씀드릴게 없다"며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재판에도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변호인을 맡고 있는 박찬종 전 의원은 "박 부장판사를 재판정에 나오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 김 교수는 '법무시하는 판사 축출 서명운동'을 부탁했다, 연판장서명과 관련, 9일 오후 서초동 법원 앞에서 서명활동을 하고 있다
ⓒ 추광규


김명호 교수 특별면회 인터뷰
"나는 나의 무죄를 확신한다"

- 이메일 질의 내용에 대해 설명해 달라.
"증거조작은 사실이다. 재판과정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아파트 경비원 김아무개씨가 박 부장판사에게 받은 화살이 사라지고 검찰에는 멀쩡한 화살이 제출되어 있다. 석궁도 안전핀이 빠져 있던것을 수리해서 제출했다. 검찰이 주요한 증거품을 조작한 것이다.

박 부장판사가 재판에 나오지 않는 것은 뻔한 것 아니냐. 사건의 배후및 조작한 것이 드러날까 두려워 해서다. 8월 8일 까지가 재판만기일이다. 그 날을 넘기면서 까지 나를 구속하고 있다면 불법감금죄로 고소할 것이다".

- 김 교수는 왜 석궁사건을 일으켰는가. 짤막하게 말해달라.
"내가 강조하는 것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가 우리나라 국민들이 앞으로 꾸준히 해야 할것은 사법개혁이다. 법관자질검증을 실시해야만 한다. 로스쿨 설치보다 우선되어야 할것이 바로 법관에 대한 자질검증이 우선 되어야만 한다는 거다.

특별히 법관의 법조문해석 능력여부를 검증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형사소송법 제184조(증거보전의 청구와 그 절차)에 의거해, 내가 제기한 증거보전신청에 대하여, 재판부는 이를 의도적으로 왜곡 해석했다.

'제1회 공판기일전이라도 증거보전 청구 할 수 있다'에 근거해, 증거보전을 청구 했더니, 판사가 '제1회 공판기일 전에만 증거보전청구 할 수 있다'며 기각했다. 이에 내가 불복하고 이의를 제기하니깐, 대법원에서 조차 '공판기일전이라도'를 '공판기일전에만'이라고 우기며 기각했다.

'기일전 이라도 청구 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다면, '기일 후'에도 증거가 제출 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어떻게 이 조문이 '제1회 공판기일전에만'이라고 주장 할 수 있는 건가.

이 같은 내용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이런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법관의 법조문 해석 능력여부를 먼저 검증한 후 임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사법개혁을 위해서는 법에 의한 재판이 진행되는지 여부를 감시해야만 한다. 헌법 제103조(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의 규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현재의 문제는 성균관대학교가 아니다. 주요(사건의)동기는 판사들에게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박 부장판사는 하수인일 뿐이다. (석궁사건은)재임용관련 사학법이 지난 20년간 부당하게 적용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87년에 입법된 사학법 재임용관련 제52조 2항의 법률해석 변경을 위법하게 했다는 것이다. 전원합의규정이 있어, 위법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슬그머니 바꿨다. 이렇듯 잘못된 법 해석에 대해 항의 했던 것이다. 내가 사법부와 싸웠던 것은 성균과대학교를 상대로 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아달라".

-1월15일 당일 사건에 대해 김 교수가 다시 한번 말해달라, 박 부장판사는 김 교수가 쏜 화살에 상처를 입은 것인가
"붙잡고 실랑이 하고 있는 가운데 '탁 '소리가 나길래 발사된것을 알았다. 하지만 박 부장판사가 붙잡고 있던 내 손목등에서 힘이 전혀 안빠졌다. 화살에 맞았다면 '억'하는 소리라든지 몸이 움찔 하든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붙잡고 실랑이 하는 과정에서 박 부장판사는 전혀 이상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나하고 붙잡고 실랑이만 했을 뿐이다. 화살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운전수에게 잡혀서 끌려 가고 있는데, 박 부장판사는 '이것도 가져가게'라며 말했던 것 같다. 화살은 부러져 있었다. 박 부장판사에게 화살이 직접 맞지 않았고, 발사된 화살은 바닥에 꽂힌 후 끝이 뭉툭하게 뭉그러졌고, 깃대도 부러졌을 것이다. 그것을 박 부장판사가 나중에, 주워서 전달했다는 것이다.

박 부장판사의 몸에 화살이 스쳤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몸에 맞지는 않았다. 그리고 화살에 대한 증거 조작은 내가 볼때는 박 부장판사가 내세우는 주장에 경찰이 억지로 꿰맞춰주기 위해 그렇게 된것 같다. 1.5미터 밖에서 정조준해 겨냥한 후 쐈다는데,그렇게 된다면, 9~10센티 가량을 뚫고 들어 갈 수 있다.

화살이 석궁에 제대로 장착되지 않은 상태 즉 불안전장전을 강조하기 위해, 메뚜기라고 하는 용수철 부품을 무리해 가면서 수리 했다는 것이다.

또한, 고장난 상태의 석궁으로는 하향자세의 사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박 부장판사가 주장하는 0.5센티의 상처 부위에 맞춰 경찰에서 수십번을 고쳐가면서 상황을 만들었고, 그 상황에 맞추기 위해 석궁도 고장난 부위를 수리해 증거로 제출 했다는 것이다".

- 박 부장 판사의 나머지 상처는 어떻게 된것인가.
"석궁이 발사 된 후, 박 부장판사는 석궁을 뺏을려고 했고, 나는 안뺏길려고 실랑이 하면서 밖으로 나오다가, 엘리베이터 바로 앞쪽에 있는 3~4개 가량의 턱이 있는 계단에서 동시에 넘어졌다. 그때 나도 계단에 부딪힌듯 유치장에서 샤워 하면서 보니깐 옆구리 부분에 멍이 들어 있더라.

또 내 왼쪽손 중지가 찢어져 피가 났었다.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을때 파커를 보니깐 무슨 점이 묻어 있어서 침으로 닦고있으니깐, 형사들이 증거를 인멸 하려 한다고 큰소리로 외 치면서 이를 저지하더라, 그러면서 그걸 또 박 부장판사가 흘린 피라고 국과수에 의뢰 했다고 하는데, 파커에 묻은 피는 바로 내 왼쪽손 중지에서 흘린 피였다.

나는 내 무죄를 확신한다. 흉기를 들고 육체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살인이 아니다. 사법제도가 나를 죽이고 있지 않는가. 사법제도가 더 문제다".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더 이상의 억울한 피해자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한 것 같이 법관자질검증이 가장 우선되어야만 한다. 사법개혁 여기서 부터 출발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션코리아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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