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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많은 '고객(?)'을 기다리게 하면서까지 인터뷰에 응해준 남산 도깨비. 옆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사람이 필자.
ⓒ kasoonchan photo
서울 남산에 가면 도깨비를 만날 수 있다. 이름하여 '남산 도깨비'다. 어린 시절 등잔불 아래서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운 채 옛날 이야기와 귀신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서 도깨비는 큰 칼을 차고 등장하는 '일본 순사'나 '마귀'보다도 더 오감을 오싹하게 만들어놓곤 했다. 도깨비는 우리 조상의 생활과 사고방식 속에서 창조되어 전승되었기 때문에 사람의 성격을 그대로 지닌다. 도깨비는 악한 것과 선한 것을 구별할 줄 알게 하고, 정직과 근면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기자는 우연한 기회에 무속신앙에 대한 호기심으로 남산 도깨비를 찾아간 적이 있다. 무시무시하거나 우락부락한 얼굴로 한껏 무게를 잡고 앉아있을 남자의 모습을 떠올렸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도깨비는 여자였다. 적당한 체구를 지닌 그녀는, 그러나 한눈에 보기에도 눈매가 섬뜩했다.

그녀를 만나려면 아래층 대기실에 쭈그려 앉아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생판 처음 보는 얼굴들이 둘러앉아 서로 흘끔거리는 모양이 어색하다. 계단을 오르며 인형 하나를 집어들어야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그녀는 오늘도 할아버지 산신(山神)을 모셔둔 신당에 위풍당당하게 앉아서 사람들을 기다린다.

남몰래 그녀를 만나고 가는 사람들

▲ 첫눈에도 눈매가 매섭고 썸뜩하다. 그녀는 이미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예언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용하다'는 평판을 얻었다.
ⓒ kasoonchan photo
인형을 뒤집어보라는 그녀의 '명령'에 순순히 따랐다. '무엇이라고 적혀있느냐'는 물음에, 유성펜으로 적은 인형 밑바닥의 검정 글씨를 나즈막한 소리로 읽었다. '큰돈'이라고 적혀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큰돈이라는 글씨가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기에 그녀의 이야기에 고분고분 귀를 기울였다.

기자에게 "곧 엄청난 계약건을 따낼 것"이라고 했다. 곳간에 곡식이 철철 넘쳐나고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하인들을 둘 것이라고 했다. 그러려면 불같은 성질을 죽여야 할 것이라는 충고도 해줬다.

'내가 따낼 큰 계약건이 과연 무엇일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시간이 제법 흘러갔다. '인생 상담'을 마치고 눈치껏 복채를 슬쩍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가 다짜고짜 하는 말

"필요 없으니 그냥 가. 나중에 큰돈을 가지고 올텐데 그까짓거 지금 받아서 뭐하게."

세상이 불안하니 우리 인생도 모호하다

기자는 이후로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재미삼아서 그녀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큰돈 벌 때까지 나한테 잘 보이는 게 좋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기 위한 이야깃감이었다. 놀라운 것은, 기자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녀를 직접 찾아가서 만나고 왔다는 것이다. 그들도 기자처럼 큰돈(?)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정부기관 연구소 책임자로 일하는 ㅅ박사, 대기업 부사장 ㅊ씨, 화가 ㅇ씨, 자영업자 ㅂ씨도 그녀를 찾아갔다. 어떤 지인은 기자에게 아예 그녀를 찾아가는 자세한 요령부터 복채는 도대체 얼마를 내놓고 와야 하느냐는 질문까지 꼼꼼하게 던져온다.

이름만 대면 척 알법한 재벌가의 며느리, 연예계 스타, 정치인부터 종교인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그녀를 찾는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올해 들어 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남산으로 향하고 있다. 소리소문 없이 그녀를 만나고 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미래의 운명에 대해 궁금해하는 심리와 불안에 대한 해소방안을 쉽사리 찾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엿본다.

매서운 얼굴 속에 감춰진 신통력과 인간애

서울 남산순환도로(남산길)를 타고 하얏트 호텔 쪽으로 달리다 보면 남산체육관께에 그녀가 터를 잡아놓은 '예언궁'이 있다. 도깨비를 상징하는 방망이가 건물 한 편에 세워져 있고, 육중한 대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도깨비 형상을 한 갖가지 유물과 무속용품이 빚어내는 독특한 분위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올들어 부쩍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예언궁의 원장인 그녀는 지난 16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정확하게 예언해서 더 유명세를 타게 된 무속인이다. 처음 그녀를 만나는 사람은 특유의 매섭고 날카로운 눈매 때문에 단박에 주눅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무서움과 신통력의 이면에는 자상하고 따뜻한 인간애가 스며있기 때문에 친누이나 친정엄마처럼 속내를 털어놓고 훈수를 해주는 경우가 더 많다.

▲ 제일기획 대학생광고대상 포스터 모델로 출연했던 김재연씨. 그녀의 공신력을 소재로 삼은 사례다.
ⓒ kasoonchan photo
몇해 전 국내 최고의 광고대행사로 알려진 제일기획이 대학생 광고대상을 공모하는 포스터에 그녀를 모델로 삼았다.

"넌 광고 해야 해! 타고난 팔잔데 어쩔거야…. 넌 아이디어로 먹고 살아야 해. 딴거 해봐야 몸만 다쳐! 광고 해 광고!"

광고 문안이다. 광고 포스터 제작자라면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모델이 공신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강력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모델인지 등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기자도 한때 광고회사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 정황쯤은 익히 짐작해볼 수 있다.

사재 쏟아 '목멱산(남산) 대천제' 지낸 거물급 예언가

그녀는 자신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신을 대신하여' 더 행복한 인생 여정을 제시해 주면서도 12년 동안 사재를 쏟아부으며 목멱산(남산)대천제를 지내는 것에 대해 남달리 뿌듯해 하고 있다. 목멱산대천제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면면히 이어온 우리 민족 고유의 행사였지만 1925년 일제에 의해 중단되었다가 그녀가 대표로 활동하는 '목멱사랑회'에 의해 70여년 만에 다시 명맥을 이은 행사다.

서울특별시와 국회의원들의 후원을 받으며 서울 남산 팔각정에서 치른 목멱산대천제는 나라의 안녕과 번영 그리고 발전을 기원하며 국민의 건강과 부귀 행복을 기원하는 행사로 자리잡기도 했다.

"목멱산대천제를 지내면서 나라 걱정을 많이 했죠. 올해는 돼지해이기 때문에 국민 모두 건강하게 사는 한해가 될 거예요. 대통령 선거가 있지만 그 어느 해보다 공정하고 덜 시끄러우면서도 바른 선거가 이뤄질겁니다. 정치인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을,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을 더 가졌으면 해요."

"세계 최대 도깨비 대범종 만들 것"

▲ 신당에 남산 산신을 모셔놓고 계시를 받는다. 산신을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
ⓒ kasoonchan photo
그녀는 지금 첨단 문명에 밀려 사라져가는 조상들의 문화유산을 후세에까지 물려주겠다는 뜻을 실천하기 위해 경기도 팔당에 도깨비 박물관을 건립하고 있다. 이곳에는 도깨비와 관련한 1만여 점의 수집품이 엄청난 규모로 공개 전시된다. 이 유물들은 모두 도깨비 신의 영력에 따라 도깨비 신이 하라는 대로 그저 사 모은 것들이다.

"인사동같은 곳에서 길을 가다가 우연히 눈에 띄는 물건이 있으면 가게 주인에게 저거 내가 가져가야 하니까, 내 것이 될테니까 그런 줄만 알라고 하죠. 나중에 가 보면 안 팔리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요. 내가 주고싶은 가격을 부르면 주인은 부족하다거나 많다거나 군말 한 마디 없이 그냥 내주게 돼요."

외국 여행길에서도 그녀는 도깨비와 관련된 유물을 그런 식으로 눈에 띄는 대로 모아왔다. 도깨비 신의 지시를 받고 한번 점찍은 것은 반드시 그녀의 수중으로 들어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당장이라도 누구든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사주와 운세를 척척 받아보는 시대에, 그녀는 곧 세계 최대 규모의 도깨비 대범종을 만들어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준비를 마쳤다. 도깨비 신의 위엄있는 목소리가 온 천하에 울려 퍼지는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남산도깨비와 관련한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가순찬 기자(016-205-2748)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태그:#가순찬, #남산도깨비, #도깨비, #목멱산대천제,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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