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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28일 여의도63빌딩에서 열린 한나라당 마지막 정책토론회에서 이명박-박근혜 대선예비후보가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정신 나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캠프 같다."

한나라당의 이명박·박근혜 양대 캠프를 가리켜 한 말이다. 범여권의 누가 한나라당을 공격하려고 꺼낸 얘기가 아니다. 바로 한나라당의 강재섭 대표가 탄식하듯이 꺼낸 얘기이다.

"어떤 캠프 인사들은 상대후보의 의혹을 연일 언론에 공표해 골육상쟁을 유발하고 있고, 어느 캠프에선 검찰에 상대편 인사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제출했다"며, 강 대표는 양쪽 캠프를 비판했다.

수권능력 의심하게 만드는 한나라당 경선

사실 코미디 같은 장면이 되어버렸다. 갑자기 검찰수사가 이명박 후보의 운명을 좌우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검찰에 고소를 하고 수사의뢰를 해서 검찰이 개입할 동기를 부여한 것은 다름 아닌 이명박 후보측이었다. 검찰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자기 무덤 자기가 팠다"는 얘기가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하면, 검찰은 우선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이명박 후보 관련 의혹 수사부터 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명박 캠프는 모른 것일까.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는 바보 같은 짓이었다. 아직까지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후보 캠프의 판단력이 이 정도라면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판세역전을 위해 이판사판식의 공격을 벌이고 있는 박근혜 캠프 쪽도 정신이 온전해 보이지는 않는다. 박 캠프쪽에서 이명박 후보쪽을 공격하며 꺼내는 말들을 들으면, 같은 당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대결이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할 얘기 안할 얘기 다해버리니, 요즘 같아서는 범여권쪽의 대변인들은 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

문제는 후보 캠프만 정신 나간 것이 아니라, 최근의 한나라당 전체가 그래 보인다는 점이다.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당내경선을 이전투구식의 내전처럼 치르고 있는 광경을 보면 한나라당의 수권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나게 된다. 리더십의 실종이요, 통제능력의 부재이다. 이들이 만약 집권하게 되면 자신들끼리의 권력투쟁에 빠져버리지는 않을까. 집권세력 내부의 고질적인 분열상은 국정불안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그동안 국민이 보여주었던 높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국민들에게 아무런 희망도 제시해주지 못했다. 우리 정치의 '보수'는 국민을 어떻게 잘 먹고 잘 살게 해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은 내놓지 못한 채, 한나라당은 집안싸움의 모습만 계속 보여 왔다.

경선과정이라고 해야 네거티브식의 이전투구로 일관했고,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청사진과 꿈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그저 집권세력 인기하락의 반사이익만을 누리는데 머물러 있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실망스러운 '도로 한나라당'의 모습

▲ 정형근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4일 국회의원연석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경제협력 활성화, 남북자유왕래, 북한 방송.신문 전면수용, 북한 극빈층에 대한 쌀 무상지원 등을 골자로 한 새 대북정책 '한반도 평화비전'을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새로운 대북정책을 둘러싼 당내 갈등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담은 '한반도 평화비전'을 발표했지만, 박근혜 전대표측을 비롯한 당내 보수파 의원들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상호주의의 포기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완강한 입장이다.

북핵문제가 해결의 단계로 접어들어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나라당 보수파의 대북 강경정책은 여전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탈이념적인 정책을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을까. 역시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도로 한나라당'의 모습이다. 최근 당내 경선을 앞두고 홍사덕 전의원과 박성범 의원이 한나라당에 복귀하였다. 홍 전 의원은 재보선 공천탈락에 불만을 품고 탈당했던 사람이고, 박 의원은 지방선거 공천비리와 관련하여 당을 떠났던 사람이다.

그랬던 정치인들이 아무런 통과의례조차 없이 슬그머니 당에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걸핏하면 '천막당사' 시절 얘기하며 그때의 정신을 강조하는 한나라당이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결국은 '도로 한나라당'이라는 생각밖에는 안드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들은 그동안 지나칠 정도의 높은 지지를 한나라당에게 보내주었다. 이런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보여주는 모습이 고작 이 정도라면, 한나라당의 수권능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단지 이명박 후보의 위기가 아니라, 한나라당의 위기이다. 동시에 '좌파정권'의 종식을 그렇게 학수고대하며 한나라당을 밀었던 보수세력의 위기이다. 정권교체세력을 자임했던 대한민국의 '보수'가 보일 수 있는 모습이 이 수준에 불과한 것인지, 이 땅 '보수'의 이름을 걸고 부끄러워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나라당이 보여주고 있는 난맥상은 한국 보수정치세력이 갖고 있는 리더십의 위기라 할 만하다. 한나라당이 연말 대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려면 먼저 자기쇄신을 통해 달라진 모습부터 보여야 한다. 해마다 되풀이하게 되는 이 주문을 다시 입에 담게 되는 상황, 바로 그것이 한나라당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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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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