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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소내용을 알리는 육군훈련소 팝업창
ⓒ 육군훈련소

얼마 전 입대한 큰아들에게 인터넷 편지라도 쓸까 하면서 지난 4일 육군훈련소 홈페이지를 여는 순간이었다. 전에는 없었던 두개의 팝업 창이 열리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육군훈련소는 7월 3일판(592호) <주간동아> 커버스토리 '대한민국 약군(弱軍)시대'와 관련 <주간동아> 송아무개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10개월의 사이를 두고 두 아들을 모두 군에 보낸 나는 군 관련 뉴스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가혹행위로 인한 총기사고, 탈영 혹은 안전사고라도 났다하면 가슴이 벌렁거리고 남북관계 긴장에 관련된 뉴스는 물론 혹한이나 혹서가 예상된다는 일기예보만 들어도 마음의 안정을 찾기가 어렵다. 말로만 듣던 '아들을 군에 보낸 어미 마음'이 무엇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는 중이다.

군대 뉴스에 철렁철렁한 엄마 가슴

그러는 내 눈에 군 관련 뉴스 하나가 들어왔다.'대한민국 약군(弱軍)시대'기사였다.

<주간동아> '대한민국 약군(弱軍)시대'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일병과 상병이 반말로 대화하는가 하면, 장교와 병사가 형 동생처럼 지낸다. 같은 내무반 병사들이 서로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한 부대는 선진 병영문화의 모범이라면서 국방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각개전투 교장에 민간인이 찾아와 도끼와 칼로 위협하는가 하면, 신병에게서조차 군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병영문화 개선사업이 벌어진 뒤 '배려와 존중의 문화'가 군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런데 포커스가 한쪽으로만 맞춰지면서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에스콰이어> < GQ > 같은 남성잡지를 읽으면서 컴퓨터게임을 즐기는 신세대 병사들, 그들은 바야흐로 '약군(弱軍)시대'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어 이 기사를 쓴 송 기자는 군의 개혁을 천지개벽에 비유하고 "임무에 매몰돼 인권개념이 전무하다시피 하던 관행이 확 줄어들었다, 그러나 군 원로와 일부 전문가들은 이처럼 빠른 변화를 두고 군 기강 해이를 걱정한다, 군이 약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 기자는 또한 "지금 군은 병사들을 편하게 해주기 위한 경쟁으로 물불 못 가리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병사들은 하나같이 입대 전 생각했던 군대와 직접 경험한 군대는 달랐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한 영관급 장교의 말을 인용해 "병사들을 지휘하는 게 아니라 부모처럼 보호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면서 수차례에 걸쳐 군기해이와 약군에 대한 우려섞인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외부인의 시각에서 단 하루의 일과를 지켜보면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군 정책까지 꼬집었다. 우리 군의 약화는 국력의 약화를 불려오고 국력의 약화가 결국은 국가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신세대 훈련병' 아들의 편지엔 군기가

▲ 논산 육군훈련소 연병장에서 훈련병들이 제식훈련을 받고 있다(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조용학
어미로서야 송 기자의 표현대로 편하게 쉬고, 놀고, 장난치며, 놀이문화까지 만끽할 수 있는 곳이 군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국가에서 입혀준 푸른 옷을 입고 국가에서 주는 맛있는 식사를 받아 먹으며 재미있는 군대에 갔다가 제대하게 해 준다는데 얼마나 고마운가? 정말 그렇다면 나는 두 아들을 책임져 주는 국가에 커다란 감사패라도 헌납해야 할 사람이다.

훈련소에서 나온 자료에 따르면 송 기자의 취재일은 6월 18일 월요일이었다고 한다. 아들이 입소한 지 딱 2주째가 되는 날이었다.

6월 13일 아들이 보낸 짐을 받았다. 입고 간 옷가지들과 함께 편지 두 통이 들어있었다. 아들은 고되고 힘들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가족과 떨어져 병영생활을 해 보니 가족의 소중함과 조국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했다. 집에 있을 때부터 아팠던 허리가 더 아파오지만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이겨내고 있다고도 했다.

구구절절 어미의 가슴을 후비는 철든 소리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들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송 기자는 우리 아들과 같은 신입 훈련병들을 가리켜 "갓 입대한 신세대 훈련병들에게서는 군기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꼭 소풍 나온 학생들 같았다"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아들의 편지 어디에도 장난기라고 찾아 볼 수 없었다.

그가 말하는 군기가 어떤 것인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본 아들의 편지 속엔 충분할 만큼의 군기가 들어있었다.

21세기 아이들에게 50년대식 기강잡기는 무리

▲ 육군훈련소에서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는 아들의 사진과 편지
ⓒ 김혜원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공군에 관해서 언급한 부분이다. 그가 예로 든 제 17전투비행단이 실제로 학교 기숙사같은 내무반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지, 계급과 관계없이 '아저씨'라는 호칭을 사용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을 과연 군 기강해이와 연결해 언급할 일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해 8월 입대해 얼마전 첫 휴가를 다녀간 작은아들은 제18전투비행단에서 헌병으로 복무 중이다. 지난해 부모초청행사에 다녀오면서 불안한 마음이 조금 가라앉긴 했지만 군부대 안팎을 돌아보면서 느낀 생각은 군대는 역시 군대라는 것이었다. 부대 어디에서도 송 기자가 말한 것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 군복무를 하신 친정아버지나 1980년대 군복무를 한 남편이나 2007년 군복무를 하고 있는 아들이나. 군 생활이 고단하고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2000년대 아이들에게 80년대식 혹은 50년대식 기강잡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까.

시대가 바뀌고 세상도 달라졌다. 국가간의 긴장도 대북관계도 달라진 지금 그는 왜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강군의 비결이 강한 군기에만 있다고 고집하는지 알 수 없다. 혹시 송 기자는 강한 군기는 상명하복과 강압적 분위기에서만 길러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속담에 '독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독한 시어머니가 된다'는 말이 있다. <주간동아> 송 기자의 '대한민국 약군(弱軍)시대'를 읽으며 속좁은 여자들이나 알 법한 이 속담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참고로 고소 내용의 사실 여부와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송 기자에게 직접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공식적인 인터뷰는 할 수 없다"는 짧은 대답만을 들을 수 있었다.

▲ 논산 훈련소의 훈련병들이 각개전투 훈련을 받고 있다(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태그:#주간동아, #약군시대, #군대, #신세대, #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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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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