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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8월 31일 오전 10시 40분]

 

6월 27일, <시사저널> 기자 22명은 <시사저널>과 결별했다. 지난해 6월 경영진이 삼성 기사를 무단 삭제한 지 1년여 만이다. 경영진의 무단 기사 삭제에 항의해온 기자들은 지난했던 1년여의 싸움을 이날 정리했다. 22명 전원이 사표를 냈다. 그들의 땀과 열정이 배인, 희망을 담았던 <시사저널>과의 결별 선언은 그들로서는 피하고 싶었던 '최후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시사저널> 오너인 심상기 서울문화사 회장은 끝내 기자들의 '호소'를 외면했다. 부리기 힘든 '기자들' 대신에 우직한 '금창태 사장'을 선택했다. 어찌됐든 그도 <시사저널>과 결별했다. 1999년 그가 인수했던 <시사저널>도, <시사저널>을 인수했던 '심상기'도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새삼 되돌아보면 <시사저널>에 대한 그의 결별 결정은 오래전에 예정됐던 것 같다. 그가 발행인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그가 기존의 <시사저널> 문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금창태 사장을 선임했을 때,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외부에서 발탁했을 때 그는 하나하나씩 <시사저널>과의 결별을 준비해왔던 것 같다.

 

금창태 사장과 함께 인쇄단계에 들어가 있던 '삼성 이학수 기사'를 빼기로 작심했을 때, 그는 <시사저널>과 결별을 선언한 것인지 모른다. 이에 항의해 제출한 편집국장의 사표를 즉각 수리하고, 신속하게 퇴직금 지불까지 완료했을 때, 기자들의 파업에 직장 폐쇄로 맞섰을 때 그는 기존의 <시사저널>을 사실상 버렸다. 그 이후로 만든 것은 <심상기저널>인 셈이다.

 

심상기 회장은 왜 결별을 선택했을까?

 

심상기 회장은 왜 이런 결별을 선택했을까? 지난 1년여 동안 <시사저널> 사태를 지켜보면서 내내 떠나지 않던 의문이었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심상기 회장은 언론인 출신으로 잡지계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여성 월간지 <우먼센스>와 만화잡지 <점프>, 만화 단행본 출판으로 사업의 토대를 쌓고 <일요신문>을 인수해 주간지 시장으로 그 영역을 넓혔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모기업의 부도로 어려움을 겪던 <시사저널>을 인수한 데 이어 케이블TV쪽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그런 와중에 그는 한화가 인수했던 <경향신문>의 사장직을 맡는 등 언론인으로서 경력도 이어갔다. 비즈니스에서도 성공하고, 언론인으로서도 남부럽지 않은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의 성공 배경으로는 몇 가지가 꼽힌다. 무엇보다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이다. 경쟁이 치열한 여성잡지와 만화 사업으로 기반을 닦은 것이 대표적이다. <우먼센스>라는 여성잡지의 성공 배경에는 지분 배분 방식의 과감한 광고 영업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또 세밀한 경영 관리로도 정평을 얻고 있다. 부진한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하되, 그 뒤처리는 '얼굴마담'을 내세워 맡기곤 했다는 평판도 있다. 그의 비즈니스 성공 배경에서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점은 철저하게 비즈니스 원칙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조금씩 깨져간 '독립언론 만들겠다'던 약속

 

그런 그가 <시사저널>을 인수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시사저널>을 인수한 후 발행인 글을 통해 '다시 우뚝 일어나 진정한 독립언론의 면모를 보여 나가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심 회장은 "평생을 언론에 종사해온 사람으로서 우리 언론사에 한 획을 그은 <시사저널>이 쇠락해가는 모습을 보기가 너무 안타까"워 <시사저널>을 인수했으며 "자본에도, 권력에도 예속되지 않는 진정한 독립 언론의 면모를 보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회사 이름도 '독립신문사'로 정했다. 편집권의 독립도 약속했다. 여성월간지와 만화 출판으로 돈을 번 심상기 회장이 '언론의 본령'을 운위하면서 <시사저널> 인수에 나선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을 듯하다. 그가 밝혔던 대로 '독립 언론' '대안언론'의 추구라는, 언론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이 발동한 점을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일종의 '보상심리'도 작용했을 수 있다.

 

그는 <일요신문>을 발행하면서 <일요신문>의 전체적인 지면 구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당시로서는 야인으로 지내던 내로라하는 원로 언론인들을 초빙해 칼럼을 실었다. <시사저널> 인수는 그런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측면은 비즈니스 차원이다. <일요신문>과 연계 상승효과를 노리고 <시사저널>을 인수한 측면이 있다. 정론 시사지로서 위상을 확보하고 있던 <시사저널> 인수를 통해 향후 CATV 등 방송 쪽으로 진출을 모색하고, <일요신문> 등 주·월간지 광고 영업의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계산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풀이다.

 

본격적인 미디어사업 진출의 발판을 <시사저널>을 통해 기획했다는 분석이기도 하다. 심상기 회장은 실제 <시사저널>을 인수하면서 '종합미디어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경인TV 재허가 공모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 꿈이 구체화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시사저널>을 명실상부하게 독립언론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약속'과 종합미디어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그의 '구상'은 하나하나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본격 주도권 장악의 신호탄, 금 사장 영입

 

<시사저널> 인수 이후 이런저런 사고와 마찰에도 불구하고 편집권을 비교적 존중해주었던 심 회장이었지만, 2003년 4월 금창태 사장을 영입하고 발행인 자리까지 그에게 물려주면서 '편집권 존중'이라는 그의 약속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금창태 사장의 임명은 겉으로는 심회장의 '2선 후퇴'를 의미했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대리인을 내세운 본격적인 주도권 장악의 신호탄이었다.

 

당시 <시사저널> 기자협의회는 금 사장 취임 직후 "<시사저널>의 정체성이 위기를 맞는 것이 아닐지 심각하게 우려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실제 서명숙 전 편집국장 등 시니어그룹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사저널>을 떠나게 됐다. 금 사장 취임 후 편집국장을 외부에서 선임한 것은 경영권에 이어 편집권까지도 적극 장악하겠다는 심 회장의 구상이 구체화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내연되던 불씨는 결국 지난해 6월 '이학수 삼성 부회장 기사' 사건으로 터져 나왔다. 이는 결국 '결별'과 '파국'으로 치달았다.

 

종합미디어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심 회장의 포부 역시 지난해 경인TV 컨소시엄 참여가 좌절되면서 크게 꺾였다. <시사저널> 관계자들은 그의 '포부'가 꺾이면서 <시사저널>에 대한 그의 관점 역시 더욱 보수화된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가 무단 기사 삭제라는 무리수를 둔 것은 금창태 사장이라는 강경한 대리인의 영향 탓도 있겠지만, 크게 보면 <시사저널>의 전반적인 편집방향이나 경영 측면에서 비즈니스적 통제를 더욱 강화하고자 했던 심상기 회장의 내심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삼성 기사 삭제 파문 이후 <시사저널> 기자들이 파업까지 예고했음에도 심 회장이 강경 대응으로 일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 회장은 자신이 선택한 '금 사장 체제'를 밀고나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심 회장에게 <시사저널>은 어떤 사업이었나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기자들의 전면 파업이 <시사저널>의 파행 제작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강경 대응은 결국 <시사저널>의 브랜드 가치나 경영에도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그런 비즈니스적 손해까지 감수하기로 한 것은 왜일까? 그에게 <시사저널>은 어떤 사업이었던 것일까?

 

일본 만화를 주로 번역 출판하고 있는 서울문화사는 지난해 568억원의 매출을 올려 5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매출액 규모로만 보자면 작은 일간신문에 육박하는 규모다. 게다가 수익률이 10%를 넘어 '황금알 낳는 거위'인 셈이다. 한마디로 알짜배기 장사를 하고 있다. 심 회장은 서울문화사 지분 69.8%를 보유하고 있다. 심 회장 일가의 지분은 85%에 이른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은 광고수입 증감 여부가 수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문화사의 주요 수입원은 월간잡지와 만화책 '판매수입'과 '광고수입'으로 대별된다. 판매수입은 2004년 303억원에서 2005년 330억원, 2006년 325억원으로 비교적 안정적이다. 잡지나 만화 판매로는 수익을 크게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반면 광고수입은 2004년 209억원이던 것이 2005년 191억원으로 18억원 감소했다가 지난해에는 235억원으로 무려 44억원(23%)이나 늘었다. 잡지와 신문의 최대 광고주인 '삼성'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처지다.

 

마음속에선 오래전 예정됐던 <시사저널>과의 결별

 

 

이에 반해 <시사저널>을 발행하고 있는 독립신문사는 70억1천여원의 매출에 2억6500여만원의 흑자를 냈다. 2005년도에도 거의 엇비슷했다. 70억7000여만원의 매출에 2억6200여만원의 흑자를 냈다. <일요신문>사는 2005년에 4900여만원의 흑자(매출 88억원)를, 지난해에는 2억8000여만원의 흑자(매출 92억원)를 각각 기록했다.

 

<시사저널>은 서울문화사에 비교해볼 때 지난해 기준으로 매출은 12%, 수익에서는 4.4% 수준이다. 심상기 회장에게 <시사저널>은 비즈니스 차원에서만 보자면 그다지 매력 있는 사업이 아니다. 당기 순익 이상으로 이익 배당금을 챙기기도 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서울문화사의 수익 증대에 결정적인 변수인 '광고수입'을 생각할 때 <시사저널>의 독립성은 그에겐 잠재적인 '위협요인'일 수도 있었다. 그에게 서울문화사는 '황금알 낳는 거위'지만, <시사저널>은 '미운 오리새끼'였던 셈이다. 그가 2006년 6월 이전의 <시사저널>과 결별하기로 한 것은 그의 마음속에선 오래전에 예정됐던 것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새 매체 창간 후원금 계좌 : 국민은행 832102-04-095740 (예금주 유옥경)


태그:#백병규, #미디어워치, #시사저널, #심상기, #금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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