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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남자의 여자>에서 '피해자' 여성과 '가해자' 여성은 언뜻 대립하는 듯 보이나 실은 한 여성에게 공존하는 두 얼굴처럼 한 세트로 등장한다
ⓒ sbs
<내 남자의 여자>의 '아우라'와 '불편한 마력'

대중매체에서 뻔하게 취급받는 이야기도 그를 거치면 각별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새삼스럽게 큰 반향을 불러온다.

"닳아빠져 너덜거리는 한국 드라마의 구태의연한 소재 불륜. 하지만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 작가가 작심하고 덤벼들자 어디 남아 있었을까 싶었던 '아우라'가 다시 사방으로 뻗친다."(최승현, 조선일보)

"시청자들은 초반에 '저건 아닌 것 같은데' 하다가도 점차 더 드라마 속의 인물과 상황에 빠져든다. 그래서 결국 '불편한 마력'을 뿜어내는 김수현의 감옥에 갇힌다."(김주현, 경향신문)

최근 종영한 SBS TV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는 어떤 '아우라'와 '불편한 마력'을 준 것일까?

"지금까지 불륜드라마는 늘 초점이 배신감에 몸을 떠는 피해자인 '나'에게 가 있었다. 우리 드라마가, 시청자들이 '가해자'로 치부해버리는 '여자'에 대해 한번이라도 깊은 시선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내 남자의 여자>는 그 '여자'를 통해 지독한 사랑, 간절한 욕망을 보았다."(이대현, 한국일보)

"여자 시청자들이 보면 (남편을 뺏긴) 배종옥보다 (뺏은) 김희애를 더 매력적으로 생각합니다. 가부장적 체제에서는 헌신하는 여자가 올바르다고 말하지만, 악인으로 보이는 김희애가 더 매력 있습니다. … 김희애 캐릭터도 악녀가 아니에요. 결국 많은 여자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지나, 경향신문)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 구도는 불륜의 기본 공식이다. 당사자들도 주변인들도 이 구도를 벗어나면 위치 설정이 안 된다. 불륜을 둘러싸고 저마다 속내가 복잡하겠으나 이 구도를 초월한 선택과 행동은 비현실적이다. 이 점에서 <내 남자의 여자>는 묘하다.

이 드라마에서 '피해자' 여성과 '가해자' 여성은 언뜻 대립하는 듯 보이나 실은 한 여성에게 공존하는 두 얼굴처럼 한 세트로 등장한다. 김희애 캐릭터와 배종옥 캐릭터는 개별자인 몸으로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양극에 놓여 대립할 수밖에 없으나, 심리적으로는 서로를 넘나들며 보완하는 가운데 점차 강하고 성숙한 인물로 발전하는 이심동체다.

중년 여성의 성장 드라마?

때문에 <내 남자의 여자>는 한 남자를 둘러싼 소유 쟁탈의 상투적인 불륜 사건을 빌려와서 지지고 볶는 관계를 세세하게 보여주며 흥미를 더해가나, 실상인즉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 선정에 묶였다면 동시에 '패자'가 되었을 두 여성을 한꺼번에 승화시키는 '중년 여성의 성장 드라마'가 아니었나 하고 다시 보게 된다.

비유컨대 한 여자를 놓고 대결을 벌이는 두 카우보이가 동시에 그 여자를 쏘아 죽이고 악수를 나누는 돌발 사태처럼, <내 남자의 여자>에서 김희애와 배종옥 캐릭터의 두 여성은 한 남자를 같이 포기함으로써 가해-피해의 구도를 벗어나 동반 성장하는 길로 따로 또 같이 나아간다.

"불륜 드라마는 쉽지 않다. 평가하려는 의식, 무의식 중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래서 택한 게 거리두기다. 매도도 미화도 않고 당사자 셋의 시선으로 똑같은 거리를 둔 채 그려놓은 것이다. 이 드라마의 새로움은 여기에 있다."(이윤미, 헤럴드경제)

▲ <내 남자의 여자>에 나오는 한 남자 김상중 캐릭터는 끝내 '미숙아'였다.
ⓒ sbs
작가의 '거리두기'는 두 여성 캐릭터를 가해-피해의 뻔한 구도에서 해방시켜 같이 성장하게 만드는 방편이 되었지 싶고 때문에 김희애 캐릭터와 배종옥 캐릭터의 내면 깊이를 더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반면 김상중 캐릭터인 한 남자에게는 작가의 똑같은 그 '거리두기'가 그 남자의 성찰이나 성숙으로 이어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남편으로, 아버지로, 아들로 세상으로부터 '사망선고'를 감수하며 '너' 하나에 올인했다. 준표 자신은 그렇게 말했지만 우유부단한 지식인인 그는 끌려다니기만 했고 종국엔 버림받았다. 남자들은 어디로 갔나. 은수의 남편 달삼은 돈만 잘 번다 뿐이지 중년에 어울리는 중후함은 오간 데 없는, 주책 맞은 인물로 그려졌다. 홍회장 역시 철벽같은 권위마저 잊어버린 치매노인일 뿐이다. 의젓해서 믿음직한 남자라곤 지수의 어린 아들 경민이 고작이었다."(조상인, 스프츠칸)

이렇게까지 탄식할 정도로 <내 남자의 여자>에 나오는 모든 남자들이 형편없는 것은 아니나, 드라마의 한 남자 김상중 캐릭터는 끝내 '미숙아'였다.

김희애와 배종옥 캐릭터는 인생의 소중한 무언가를 버린다. 덕분에 아파하고 성장한다. 반면 김상중 캐릭터는 "남편으로 아버지로 아들로" 다 버릴 듯이 말하나 실은 그 모든 것을 고스란히 유지하려고 한다. 그 남자는 내내 고뇌하나 두 여성처럼 뼈 속 깊이 아파하는 떨림과 울림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 남자가 두 여성에게 하는 말은 같다. '날 좀 이해해줘. 나 힘들어.' 하는 투정. 두 여성 캐릭터는 '적'인데도 상대편 속을 헤아리며 넘나드는 상호 이해의 저 깊은 해저 터널로 연결되어 있지만, 김상중 캐릭터는 다 '친구'처럼 대하나 어느 누구의 마음속으로도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에 있다. 그는 '미숙아'로 남는다.

'국민 언니' 하유미의 현상 유지 전략

<내 남자의 여자>에 나오는 두 여성과 한 남성의 캐릭터가 우리네 사회 현실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는 차치하자.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주 시청자인 중년 주부층을 위해, 두 여성 개릭터의 속 깊고 강렬한 '아우라'를 창조하느라 그 남자의 캐릭터를 '미숙아'로 처리했다 해도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의 '불편한 마력' 속에 흠뻑 빠져 지냈다.

드라마가 종영된 이후, 문제의 '불륜 드라마'에 대해 한 마디 코멘트를 구하는 전화를 몇 통 받고 나서, 나는 문득 궁금했다. <내 남자의 여자>에 나왔던 주요 인물들이 그 캐릭터대로 현실로 옮겨온다면 누가 가장 그럴 듯한 사람일까?

▲ <내 남자의 여자>에서 하유미 캐릭터는 불륜조차 현실로 수용하되 남편을 더 철저하게 관리 감독하는 악다구니를 부리는 동시에 자신의 생활은 '스타일리쉬'하고 '쿨'하고 '럭셔리'하게 연출하면서 산다.
ⓒ sbs
아마 하유미 캐릭터일 것 같다. 물론 그녀가 극 초반부터 '국민언니'로 뜬 이유는 불륜에 대해 즉각 단죄의 감정을 표출하며 '가해자'와 화끈한 육박전을 감행하고 '피해자'를 끔찍이 보살폈기 때문이다. '불편한 마력'에 포박당한 시청자들로선 극 초반의 하유미 캐릭터를 보며 속 편했을 법하다.

하나 알고보니 그녀 역시 바람둥이 남편을 두었는데, 대처법에선 배종옥 캐릭터와 매우 다르다. 배종옥 캐릭터가 고통스러운 자기 성찰로 나아간다면, 하유미 캐릭터는 못마땅한 불륜조차 현실로 수용하되 남편을 더 철저하게 관리 감독하는 악다구니를 부리는 동시에 자신의 생활은 '스타일리쉬'하고 '쿨'하고 '럭셔리'하게 연출하면서 산다.

김희애와 배종옥 캐릭터는 줄곧 자기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 결과 내면의 서늘한 문 저편으로 나가버린다. 하유미 캐릭터도 고민이 있었겠으나, 그녀는 모순과 짜증이 가득한 이편의 현실로 다시 돌아와 있다.

내 남자를 전처럼 대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수많은 이유들 속에서 그녀는 전과 다른 의미가 되었을 남편과 가족을 기획 관리하며 나름대로 현명하게 살아간다. 그녀가 TV 밖에서 '국민 언니'로 불리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아닐런지.

<내 남자의 여자>는 그렇게 서로 대립된 위치의 두 여성이 겪는 '현상 타파'의 동반 성장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한 여성의 '현상 유지'라는 현실적인 전략과 처신술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태그:#내 남자의 여자, #김수현, #불륜, #드라마, #자매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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