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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 반대 농민집회에서 만난 김정철 씨. 그는 3대 째 농사를 짓고 있다.
ⓒ 손기영

지난 4월 2일 한미 FTA체결에서 정부는 "농업이 가지는 다원적 가치는 중요하지만 다른 분야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는 농업분야의 피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며 "연간 6000억원의 생산 감소 피해만이 발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 측 주장에 대해 농민단체는 "한미FTA 협상과정은 농민들에 아무런 동의 없이 강행된 일련의 비민주적인 협상"이라면서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또한 "쇠고기 수입재계 등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을 내주고 시작한 첫 단추부터 잘못 낀 최악의 협상이고, 중장기적으로 관세철폐와 농산물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을 할 수 없게 되어 그야 말로 완전개방을 의미한다"며 "농업분야의 피해가 정부 측의 예상보다 막대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19일 정부는 미국 측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한미FTA 추가협상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가운데, 이에 반발한 농민들은 20일 오후 1시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한미FTA 원천무효와 추가협상을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부산지부 회원이자 3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정철씨(45)를 만나 자유무역협정에 최대 피해자인 농민이 생각하는 한미FTA의 부당성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정부는 한미FTA는 양국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한 성공한 협상이고 우리나라의 경제가 성장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설명하고 있죠. 그러면서 협상은 우리에게 모두 이로울 수는 없고 얻는 것이 있으면 손해 보는 것도 있다면서, 그 대상이 농업분야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죠. 정말이지 어느나라 정부고 제 정신을 갖고 있는지 분통이 터집니다. FTA를 통해 다른 분야의 발전과 성장이 정말로 제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자기나라 농업분야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데 별다른 대책도 없이 그런 말을 합니까."

김씨는 그동안 한미FTA 협상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정부의 태도에 분노하며, "1차 산업인 농업분야 역시 2·3차 산업을 떠받치는 중요한 국가산업이며,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양국 간에 서로 불균등한 농업규모로 인해 우리나라 농업은 '막다른 길'로 몰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 지난 2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한미FTA 저지 한농연 2차 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집회장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수많은 농민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 손기영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는 다윗이 승리하지만, 냉혹한 신자유주의 현실 앞에서는 크고 힘센 골리앗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자유무역협정 그거 말 한번 좋지요. 하지만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농업국이고 한국은 이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영세 농업국입니다. 자유롭게 무역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비슷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평할 수 있죠. 이런 상황에서 FTA가 되면 작고 힘 약한 쪽은 일방적으로 죽게 됩니다."

실제로 이번 한미FTA에서 농업분야의 관세협상을 살펴보면, 관세철폐대상은 576개(전체 품목에 37.6%)인 반면에, 관세철폐 예외대상은 고작 16개(전체품목에 1%)에 불과하다. 이는 이전에 미국과 호주 간에 체결된 자유무역 협정 (관세철폐 예외대상 342개, 전체에 19%), 한국과 칠레의 자유무역 협정(관세철폐 예외대상 412개, 전체에 29%)보다 훨씬 개방의 폭이 넓고 완전개방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폭넓은 개방 앞에서 '규모의 경제'를 무기로 한 미국의 값싼 농산물들이 별다른 규제 없이 들어온다면 우리나라 농업의 피해는 자명할 것이다.

"일방적인 시장개방 못지않게 농민들이 걱정하는 부분은 또 있습니다. 멕시코와 같이 미국의 거대자본으로 운영되는 '농업유통회사'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경우 더 큰 문제가 발생될 수 있습니다. 일례로 NAFTA 체결 전 멕시코 옥수수는 자국수요를 충족시키며 안정된 시장기반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의 자유무역이 체결되고 미국의 농업유통회사가 멕시코에 들어오게 되면서, 자국 내에서 멕시코 옥수수의 수요는 감소되었죠. 왜냐하면 멕시코 옥수수보다 값싼 미국산 옥수수를 미국농업회사가 대거 멕시코 시장에 유통시켰기 때문입니다. 냉혹한 시장논리에 밀린 멕시코 옥수수 산업은 결국 쇄락의 길을 걷게 되었죠."

김씨는 이어 "한미FTA 체결에서 정부가 약속한 농업피해 지원금과 발전대책은 생색내기에 불과하고 근본적인 '농촌 살리기 대책'이 될 수 없다"면서 "현재 우리 농업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는 '전문 농업경영인과 이를 위한 교육기관'에 대한 정부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그동안 농민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되어 왔다. 이날 농민들은 정부 대책없는 농업시장개방 정책에 맞서 '한미FTA 원천무효'를 주장했다.
ⓒ 손기영
"농업은 재배와 가공, 그리고 유통이란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하지만 정부차원의 관심은 재배 부분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제 품종에 대한 안정적인 재배가 가능해졌고 농사에 대한 기술도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부분이 농산물에 대한 가공과 유통 분야입니다. 물론 그동안 농협에서 이 분야에 대해 나름대로 노력해온 점은 인정하지만, 아직 이에 대한 전문적인 마인드가 우리나라 농업에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농산물을 재배해 단순히 파는 것이 아니라, 가공과정을 거치면 더욱 부가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고 여기에 효과적인 마케팅을 결합시키면, 외국 농산물에 대항해 안정적으로 시장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한미FTA 문제를 떠나 앞으로 우리농업의 살 길은 단순이 재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과 마케팅 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돈 몇 푼만 쥐어주고 정말이지…, 우리농업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은 해보고 FTA 협상장에 나왔는지 의심이 됩니다."

그는 "정부가 협상 전 구체적인 대안과 우리 농업의 살길을 농민들과 이야기 하고 대책마련에 성의를 보였다면 지금 이 자리에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앞으로 예상되는 피해에 대한 합리적인 방안 없이 추진된 한미FTA에는 절대 동의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이런 답답한 마음이 자신을 포함은 우리 전체 농민들의 심정"이라며 "국민들도 농민들의 어려움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주최로 벌어진 이날 집회장 주변에는 먹고 남은 소주병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바로 행사 시작 전 농민들이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먹었던 소주병들이었다.

그동안 한미FTA 협상과정에서 농민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 받아왔으며, 일부 수구언론들은 '협상의 방해꾼' 혹은 '거리의 폭도'로 그들을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농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던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농업이 시장논리로 작동되는 그날, 우리가 먹는 밥상에는 단지 싸다는 이유로 농약에 오염된 쌀과 광우병 위험 쇠고기, 그리고 유전자변형 콩들이 올라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우리 농산물은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식량주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태그:#한미FTA, #한미자유무역협정,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농민, #시장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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