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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늘게 비가 내리던 2003년 6월 어느 날 오세영 선생을 만났다. 그전부터 안면이 있던 터라 나를 좀 그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속으로 기대를 했다. 그의 작품 속에 나오는 아련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들처럼 그려주기를 내심 바랐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려주었다. 아름답게 보이지 않아서 서운했다. 집에 와서 찬찬히 그림을 살펴 보았다. 그림 속의 나는 곱게 미소짓고 있었다. 웃는 내가 좋아졌다.
ⓒ 이승숙
닭이 운다. 한 마리가 울자 그 뒤를 따라서 또 다른 닭이 운다. 머리맡에 불을 밝히고 책을 보던 나는 홀연 잠에서 깨어난 듯 시계를 보았다. 시계의 짧은 바늘은 새벽 3시를 넘어서 4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어차피 잠을 청하기는 글렀다. 눈을 부쳐봤자 이내(곧) 깨어나야 할 테고, 그러니 차라리 잠을 안 자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이불자락을 끌어당겨서 다리를 덮었다. 그리고 또다시 책읽기에 빠져 버렸다.

요즘 나는 책읽기에 빠졌다. 침식도 잊을 정도로 책읽기가 재미있다. 최소한의 살림만 살면서 나는 책읽기에만 매달리고 있다.

내가 보고 있는 책은 <토지>다. 몇 년 전에 사놓고서는 보지 않았던 책을 나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토지>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박경리' 선생이 쓴 <토지>는 내가 건너뛰어야 할 강이었다. 하지만 계속 뒤로 미루기만 했다. 우선은 그 방대한 양에 눌렸다. 무슨 수로 저걸 다 읽을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들은 말에 의하면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어려워지고 지루하다는데, 그렇다면 1부만 읽고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나는 토지를 대했다.

사실 <토지>의 줄거리는 대충 안다. 드라마로 만들어졌던 <토지>를 봤기 때문에 대강의 줄거리는 안다. 용이와 월선이의 애잔한 사랑도 알고 곰보 목수 윤보도 안다. 별당 아씨를 비롯해 구천이, 귀녀와 임이네, 그리고 김두수를 비롯한 길상이와 공노인 등 악인과 선인들로 구분되는 토지의 주인공들을 대강은 알고 있다.

특히 예전 흑백텔레비전 시절에 보았던 드라마는 강렬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때 배우 선우은숙씨가 맡았던 월선이는 토지를 떠올릴 때면 맨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토지>를 다 아는 듯이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사놓고도 읽지 않았던 것이다.

<토지>를 읽게 된 건 우연인 듯하지만 예빈된 필연일 지도 모른다

▲ 오세영 선생은 자신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어리숙한 사람'이라고 고쳐 말했다. 어리숙해 보이지만 속이 꽉 찬 사람, 자신을 잘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사람. 그는 그의 작품 속 인물들처럼 순수 토종 한국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이승숙
<토지>를 읽게 된 건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우연인 듯하지만 예비된 필연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토지>는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주었다.

<부자의 그림일기>라는 불세출의 만화책을 낸 만화가 '오세영'을 나는 조금 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아봤다 그가 보통의 만화가가 아님을 한눈에 알아봤다.

지금으로부터 7∼8년 전쯤, 읽을 책을 구하러 강화군립도서관의 서가를 뒤지고 있었다. 많고 많은 책 속에서 우연히 그의 책을 만났다. 그 책은 1930∼40년대의 단편소설들을 만화로 옮긴 책이었다.

책을 빌려오자 남편부터 그 책에 빠져 버렸다. 그 다음 순번은 애들이었다. 나는 맨 꼴찌로 책을 볼 수 있었다.

토속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그의 화풍을 보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오세영 선생을 우리는 다 알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를 만나게 된 우연에 고마워하며 우리는 그를 각인했다.

마음에 담고 있으면 인연의 끈이 이어지는 걸까? 가까이 알고 지내던 사람 중에 만화가 신영식 선생이 있었다. 신영식 선생은 <짱뚱이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분이신데 당시에 우리와 각별한 교분을 나누고 있었다.

시골에서 태어난 나는 문화의 혜택을 그리 받지 못하고 자랐다. 때문에 예술 분야에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강화로 이사를 하면서부터 이름으로만 알던 분들을 만나고 사귀기 시작했다.

2002년도의 어느 날, 신영식 선생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신 선생 뒤에는 수줍은 미소를 한 오세영씨가 서 있었다. 그는 우리가 봤던 만화 속의 그런 사람 같이 보였다. 거짓 없이 사랑하고 인내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던 <토지>의 '용이' 같이 보였다. 꾸미지도 포장하지도 않은 순수한 사람, 자신을 낮추며 또 나대지 않는 순박함이 오세영 선생에게서 보였다.

▲ 신영식 선생과 함께 우리 집에 오셨던 오세영 선생. <부자의 그림일기>를 비롯한 여러 권의 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한 권 한 권, 책마다 정성들여 사인을 해주셨다. 그런 모습 하나에서도 오세영 선생의 인간미를 볼 수 있었다.
ⓒ 이승숙
책을 통해서 그를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의 그림과 똑같은 사람이었다. 길을 걸어가다가 농작물이 길에 나와 있으면 일일이 밭으로 넣어주던(<노을> 속의 '밀짚모자 아저씨') 그림 속의 사내처럼 그도 그런 사람일 거 같았다.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한마디씩 하는 말 속에는 진정성이 배어 있었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오세영 선생을 볼 수 있었다. 오세영 선생은 <토지>를 작업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토지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오세영 선생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이 수월하게 진척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작업이 어려워서 출판 일자를 훌쩍 넘겼는데도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만 몇 해를 두고 들려왔다.

재작년 1월에 신영식 선생이 병환으로 우리 곁을 영영 떠났다. 신 선생이 한 줌의 재로 화하던 날 오세영 선생은 형을 보내는 슬픔에 젖어 있었다. 그날 선생은 <토지>의 작업 진척을 묻는 내게 쉽지 않단 이야기를 했던 거 같다. 그리고 <토지>가 나오면 보내주겠다며 내 주소를 적어갔다.

오세영 선생과 우리를 묶어주던 연결고리였던 신영식 선생이 이 세상을 떠나자 오세영 선생은 우리와 멀어졌다. 하지만 나는 가끔 오세영 선생과 토지를 생각하곤 했다. 그의 손을 통해서 태어날 <토지>가 늘 기다려졌다.

오세영 선생의 손을 통해 만화로 태어나는 <토지>

지난달 중순에 신문을 보다가 오세영 선생이 그린 만화 <토지>가 나왔다는 기사를 봤다. <토지>는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지만 '박경리' 선생은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 했다. 책에 미치지 못하는 드라마가 실망스러워서 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박경리 선생은 이번에 오세영 선생이 그린 만화 <토지>를 극찬하였다. 인물과 이야기가 깊고 넓어서 그려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 힘들고 어려운 작업을 훌륭하게 해낸 오세영 선생을 박경리 선생은 깊이 칭찬하였다.

박경리 선생이 오세영 선생의 손을 정겹게 잡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사진 속의 오세영 선생은 살이 쏙 빠져서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힘든 산고를 거친 산모처럼 오세영 선생은 살이 다 빠져 있었지만 얼굴은 환하고 밝았다.

▲ 오세영 선생은 "소설이 만화로 다시 태어날 때는 만화가가 그 작품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소설을 만화화했을 때는 만화가의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도 당연한 이런 원칙들을 잊은 채 만화를 그리거나 보는 것 같다. 원작을 너무 많이 훼손해 원작의 작품성을 망가뜨려서도 안 되지만 만화가 원작을 설명해 주는 시녀의 역할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 이승숙
그 날로 바로 책을 주문했다. 책이 오자마자 우리 가족은 책읽기에 빠졌다. 암만 봐도 재미있었다. 이번에 나온 만화 <토지>는 5부까지 있는 원작 중에서 1부만 그려낸 거였다. 앞으로 계속해서 5부까지 다 마칠 거라고 했다.

만화 <토지>를 보고보고 또 보다가 몇 년째 책꽂이에 꽂혀만 있던 소설 <토지>를 꺼내서 펼쳐보기 시작했다. 만화 속에서는 이랬는데 진짜 작품에서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해서 책을 꺼내서 훑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교할 필요가 없었다. 책 속의 인물들은 오세영 선생의 손을 통해 살아나 있었다. 내 생각 속의 사람들이 만화 <토지> 속에 다 있었다.

<토지>를 끌어안고 있는 내게 남편이 물었다.

"요즘 당신 글이 안 보이더라. 당신 글 안 써?"

그러고 보니 나는 근 열흘간 글 한 줄 쓰지 않았다.

"응, 여보 <토지>보다 보니까 다른 글들은 다 소소하게 느껴지네. 장강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토지>를 보다 보니까 내가 쓰는 글들이 하찮게 여겨지네…."

박경리 선생도, 그리고 오세영 선생도 모든 걸 다 바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런 작품이 나올 수가 없는 거다. 욕망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에 몰두한 끝에 그런 대단한 작품을 낳은 거다.

오세영 선생이 박경리 선생에게 한 말이 떠오른다.

"이제는 생활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내 시간을 망가뜨리지 말아야겠습니다."

오세영 선생의 건강을 빌며 아울러 앞으로 계속 이어져 나올 <토지>를 기대한다.

오세영 선생과 <토지>

오세영 선생은 고향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는 선으로 우리만의 것을 제대로 그려 내는 작가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1993년에는 <한겨레신문>이 선정한 '우리 시대의 만화가 10인'에 선정되었고, 1999년에는 박태원, 이태준 등 월북작가들의 단편을 만화로 그린 '오세영 중 단편 만화 문학관'으로 출판만화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대표작 <부자의 그림일기>를 비롯해서 국내외 문학 작품들을 만화로 그린 작품들을 많이 발표하였습니다.

오세영 선생은 만화를 시작하고부터 30년 동안 첫사랑처럼 마음속에 두고 있던 <토지>를 만화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현재 만화 <토지>는 1부 7권이 완성되었으며, 앞으로 계속해서 5부까지 나올 예정입니다.

태그:#오세영, #토지, #박경리, #만화가, #신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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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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