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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수의 145m 전방에는 그가 맞추려는 과녁이 놓여있습니다.
ⓒ 임윤수
'어어어어~'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비뚤어지게 날아가는 화살을 보며 지르는 궁수들의 비명입니다.

맑고 잠잠하기만 했던 날씨가 갑작스레 측면바람을 일으키며 날아가는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밀어내고 있으니 심술궂은 바람에 항의라도 하듯 막 화살을 날린 궁수들이 이구동성으로 '어어' 거립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국궁수들이 심판의 구령에 맞춰 일렬 선수들부터 사선으로 나와 나란하게 섭니다. 그리고 심판의 명령에 따라 차례대로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깁니다. 짧지만 심신을 안정시키느라 심호흡을 하는 긴장의 순간 끝에, '팅'하는 소리를 내며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과녁을 향해 경쾌하게 날아갑니다.

힘껏 당겼고, 정확하게 조준했으니 과녁을 향해 날아가야 할 화살이지만 엉뚱하게 옆으로 날아갑니다. 갑작스레 측면바람이 불어오니 옆으로 밀려난 화살이 과녁과는 거리가 멀게 땅바닥으로 떨어집니다.

김유신 장군 탄생지에서 열린 '전국 남녀 궁도대회'

145m의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길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먼 울산에서도 왔고, 가까운 천안에서도 왔습니다.

지난 토요일(9일)부터 월요일까지 3일 동안 충북 진천군 진천읍 민뢰산 자락, 김유신 장군의 탄생지에 있는 활터, 상계리 화랑정에서 열리고 있는 '제8회 전국 남녀 궁도대회'장엘 일요일 오후에 다녀왔습니다.

▲ 일요일 오후. 김유신 장군의 탄생지에 있는 활터, 상계리 화랑정에서는 '제 8회 전국 남여 궁도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전국대회라고 하지만 궁수들 모습엔 여유가 있었습니다. 점수에 일희일비하고, 성적이나 우승 따위에 전전긍긍하는 궁색한 모습이 아니라 국궁을 즐기고, 교류를 기뻐하는 활기찬 모습입니다.

궁수라고 해서 여느 경기종목의 운동선수들처럼 훈련으로 단련됐거나 날카로워 보이는 외모도 아닙니다. 그냥 이웃에서 인사를 나누던 이웃사촌, 할아버지나 아저씨, 아주머니나 누님들의 모습입니다. 머리숱이 적어져 지긋해 보이는 머리,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뱃살이 넉넉해 보이는 어른들이 적지 않습니다.

편한 모습이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국궁으로 단련된 고수들만의 여유가 부드러움 속에 강함으로, 느긋함 속에 날카로움으로 비췄습니다. 활시위를 당기는 궁수들의 모습은 너나없이 꼿꼿합니다. 구부정한 허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가슴이 활짝 열리고, 부드럽지만 반듯한 자세에서 국궁이 주는 운동효과를 가늠해 봅니다.

궁수들은 흰색유니폼을 깔끔하게 입었습니다. 배경처럼 둘러쳐진 푸른 산색에 흰색 유니폼이 한껏 도드라집니다. 과녁마다 6명씩, 세 개의 과녁에 18명이 나란하게 줄을 섭니다. 그리고 심판의 명령에 따라 차례로 활시위를 당기고, 활을 쏩니다.

▲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 참가자가 사선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습니다.
ⓒ 임윤수
▲ 힘껏, 어깨가 뻐근하도록 힘껏 당기고 있습니다.
ⓒ 임윤수
▲ '슈웅'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화살이 활시위를 떠났습니다.
ⓒ 임윤수
▲ 궁수는 날아가는 화살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 임윤수

양궁 과녁엔 동그라미로 점수가 매겨져 있지만 국궁 과녁엔 별도의 점수가 없었습니다. 과녁에 들어가느냐 마느냐 만을 가지고 점수를 매긴다고 합니다. 차례가 되면 화살을 댄 활을 들어올려 활시위를 당기며 과녁을 조준합니다. 얼굴에 활줄 자국이 나고, 어깨가 뻐근해 보이도록 힘껏 당기니 활줄이 팽팽합니다. 숨까지 멈춘 듯 미동도 하지 않는 적막한 시간입니다.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당겨진 활줄만큼이나 긴장감이 돕니다. 화살 촉을 가늠하는 궁수의 눈은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처럼 날카롭습니다. 그러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 화살이 활시위를 떠납니다. 화살이 바람을 가르는 '슈웅~' 소리도 저만치 화살이 날아가고 나서야 들리는 듯합니다.

사선에 서고,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날리는 동안까지는 그렇게 긴장된 분위기지만 일단 활시위를 놓고 나면 모든 것을 초월한 듯 초연한 모습입니다. 날아가던 화살이 바람을 맞아 옆으로 밀리면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바람에 대한 아쉬움이지 승리나 점수에 대하 미련은 아닌 것으로 보였습니다.

▲ 참가선수 중에는 이렇듯 이웃사촌처럼 친근한 느낌을 주는 여성참가자도 있었습니다.
ⓒ 임윤수
▲ 여자선수 역시 힘껏 활시위를 당깁니다.
ⓒ 임윤수
▲ 활시위가 떨고 있는 순간에도 궁수의 눈은 화살을 쫓고 있습니다.
ⓒ 임윤수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 40대 중반의 아주머니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지만 승부를 다투는 악착스러움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격의 없는 희희낙락거리는 분위기도 아닙니다. 당당하게 경기에 임하지만 여느 경기처럼 다툴 이유도, 다툴 명분도 없는 깔끔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로 격려하고, 서로 칭찬하는 화기애애한 모습입니다.

화살 같은 서민인생, 잘못된 정치바람에 빗나가

궁수들의 모습과 날아가는 화살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우리네 인생도 궁수나 화살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반듯하게 삶의 목표를 설정하지만 예기치 않게 전개되는 정치상황이나 주변 환경으로 인생이 꼬이고 삶이 고단해 질 수도 있는 게 국민으로 지칭되는 우리네 인생이라는 생각입니다.

힘이 되는 순풍, 격려와 북돋음을 만나도 도달하기 어려운 게 인생이며 삶의 목표일지 모릅니다. 동반자를 만나도 그렇게 어렵기만한 게 삶이며 인생일진데 허구한 날 역풍이나 측면바람처럼 상대적 박탈감이나 소외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이런저런 불미스런 소식들을 듣다보면 과녁에서 멀리 떨어지는 화살 꼬락서니처럼 실패하거나 타락한 인생이 될지도 모른단 생각입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야말로 국가라는 활시위에 자신의 인생을 화살로 얹어 놓은 궁수라는 생각입니다. 꼿꼿한 화살을 고르고,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반듯한 화살촉을 끼우며 과녁을 향해 어깨가 뻐근하도록 힘껏 활줄을 당기는 모습이 백성들이 연출하는 궁수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 화살촉에 머물고 과녁을 가늠하는 궁수의 눈은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처럼 날카롭기만 합니다.
ⓒ 임윤수
그런 궁수들에게 천정부지로 치솟던 부동산 가격, 끊이지 않는 당파 싸움, 몰염치한 말 바꾸기와 자가당착적인 정치 행태야말로 화살을 곤두박질하게 하던 측면바람처럼 사람들의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몹쓸 상황이며 역풍입니다.

순풍은 아닐지언정 역풍이나 측면바람을 일으키는, 마음을 부글부글 끓게 하는 모리배 정치나, 사람을 기죽게 하는 이런저런 일들이 이젠 정말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허공 과녁을 향한 마음 화살을 힘껏 튕겨봅니다.

태그:#국궁, #활시위, #만뢰산, #김유신, #화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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