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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소 가락 속에 일꾼들이 모내기를 하면서 농주(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 박도
모내기 때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

농촌에서는 24절기 가운데 소만과 망종이 걸치는 5월 하순부터 6월 상순까지 20여 일간은 가장 바쁜 시기로 눈코 뜰 새 없다. 보리타작과 모내기가 겹치기 때문이다. 이 때를 놓치면 다 된 보리농사를 물에 떠내려 보내기도 하고, 일년 벼농사를 그르치기 때문이다.

낙동강가 농사꾼 집에 자란 나는 어느 해 갯밭에 보리를 베어놓고 그날 밤부터 장마로 강물이 넘쳐 보리 한 톨 건지지 못하고 그대로 떠내려 보낸 걸 보기도 했다. 보리추수에 곧 이은 모내기철은 더 더욱 바쁘다.

'모내기 때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 '모내기 철에는 아궁이 앞 부지깽이도 뛴다' '모내기 때의 하루는 겨울 열흘 맞장이다' 이런 속담이 있을 만큼 이 때는 일손도 부족하고, 모든 사람이 바쁘며, 하루하루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다.

▲ 모를 낸 논에다가 우렁이를 던져넣고 있다.
ⓒ 박도
나는 중학교 때까지 시골에서 자랐는데, 해마다 이맘때면 학교에서는 '가정실습'이라 하여 보리베기철과 모내기 철에는 사나흘씩 쉬었다. 이때를 맞춰서 담임선생님은 자전거를 타고 가정방문을 하시기도 하였다. 어린 우리들이 주로 하는 일은 새참 나르는 일이나 못줄 잡는 일들이지만 머리가 커지면서 보리타작도, 모내기도 거들었다.

나는 군복무조차도 전방부대에서 했는데, 해마다 모내기 철이면 소대장으로 소대원을 인솔하여 농촌 일손돕기를 숱하게 나갔다. 그때 농사꾼들이 모내기를 해 준 고마움의 답례로 마련한 점심을 논두렁에서 먹었던 그 추억은 지금도 혀끝에 남아 있다.

친환경 유기농업만이 살길이다

▲ 버스 앞 창에 붙은 표지
ⓒ 박도
우리 가족의 주식(쌀)을 5년째 대주는 횡성군 갑천에 사는 농사꾼 윤종상씨로부터 이 바쁜 철에 초대를 받았다.

사연인즉, 6월 3일 당신 논에서 손 모내기를 하는데 와서 점심이나 들고 가라는 거였다. 모내기철이나 추수 때의 논두렁에서 먹는 점심밥 별미의 추억이 아련하여 다른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아내와 같이 갑천 들판으로 달려갔다.

갑천면 포동2리 마을회관에 이르자 이미 인드라망 생협 회원들이 손 모내기 체험을 하고자 멀리 서울에서 37명이 도착하여 윤종상, 구현석씨에게 마을소개, 친환경농법, 이날 일정 등을 듣고 있었다. 이들은 대학 졸업 후 도시에 살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온 농민운동가로 횡성군 농민회를 이끌어가는 심지 깊은 친환경 농사꾼이다.

그들은 올해도 당신 논에 화학비료 대신에 깻묵이나 유박 등 유기질 비료를 밑거름으로 썼고, 앞으로도 쓸 예정이며, 제초제 농약 대신에 우렁이를 넣어 농사를 지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야말로 다시 원시 농법으로 돌아간 친환경 유기농업이다.

그들은 이 길만이 사람들의 싱싱한 건강도 찾고 우리 땅도 되살리며 FTA(자유무역) 시대에 우리 농업이 살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지금 우리는 경제 제일주의 거대한 자본 논리의 깊은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이익'을 노리는 경제 원리가 농업에도 아주 깊이 침투되었다.

▲ 즐거운 점심시간(포동2리 마을회관)
ⓒ 박도
농업에서도 더 많은 수확을 위하여 화학비료가 마구 뿌려지고, 일손이 없다는 핑계로 농약과 제초제봉지들이 들판에 온통 흩어져 있다.

이렇게 생산된 우리 농산물마저도 더 값싼 외국 수입 농산물에 밀리고 있다. 값이 싸고 보기 좋은 농산물일수록 잔유 농약 함유량이 더 많다고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거다. 우리 몸에 가장 소중한 먹을거리가 유해한 독성에 잔뜩 오염되어 있는 현실이다.

우리 교육도 마찬가지다. 우리 말, 우리 역사보다 남의 말, 남의 역사를 먼저 가르치겠다고 걸음마를 하는 아이를 해외로 내보내고, 아니 출생부터 외제로 만드는 이 미쳐가는 세상이다.

그런 세태를 쫓기 위해 모두들 야단법석이요, 온갖 비리가 횡행되며, 그도 저도 못한 사람들은 빈부격차를 탓하며 머리에 띠를 두르고 세상을 원망하는 현실이 아닌가.

가장 현명한 선택은 유기농업을 하게 된 일

오전 체험단들의 일과는 이미 모내기가 끝난 논에 우렁이를 넣어주는 일이다. 그 일을 마치자 곧 점심시간이었다. 체험단원들은 밥을 논두렁까지 옮기는 수고를 들고자 다시 마을회관으로 와 차려놓은 정성이 담긴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는 곧장 모를 낼 논으로 갔다.

이 날 참가한 일꾼들은 절반 정도는 처음 모를 내는지라 윤종상씨가 모내기에 앞서 시범 교육을 한 뒤 모두들 무논으로 들어갔다.

▲ 논에 들어가서 잡초를 뜯어먹고 살 우렁이들.
ⓒ 박도
내 어린 시절 모내기를 하려고 무논에 들어가면 물뱀이 머리를 쳐들며 다니고, 개구리는 지천이요, 시꺼먼 거머리가 종아리에 붙어 피를 빨아먹었다. 손바닥으로 종아리의 거머리를 때려도 여간해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른들은 피가 줄줄 흘러내려도 손바닥으로 한 번 칠 뿐 그대로 모를 심었다.

그 뒤 거머리의 습격을 예방하고자 여성 나이론 스타킹을 신었는데 그 무렵 여자대학에서는 농촌 모내기에 보낸다고 떨어진 스타킹을 수집하곤 했다. 이제는 이앙기 모내기로, 농약 살포에 따른 수질 오염으로, 그런 일들도 '믿거나 말거나' 옛 이야기가 된 양, 무논에는 거머리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최고령자 최세양(71·서울 방학동 거주)씨는 옛날이 생각나서 오셨다고 했고, 최연소 일꾼은 서울 신림동에 사는 장은서(미성초 1) 어린이로 어른들 틈에서 아주 진지하게 모를 내는데 매우 재미있다고 끝까지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내 입에 들어가는 쌀이 산에서 나는지 들에서 나는지도 모르고, 단군 할아버지 세종대왕 대신에 워싱턴이나 링컨을 지껄이는 어린이가 크면 어찌 이 나라와 이 겨레를 위한 참 일꾼이 되겠는가.

못줄을 네댓 번 넘기고는 일꾼들은 막걸리 사발을 들이킨다. 오늘같이 좋은 날 풍악이 없을쏘냐. 이웃 정금리 민속놀이패 유정호 씨가 논두렁에서 태평소를 불어 젖히자 더욱 흥이 무르익었다. 두어 시간만에 논 한 곳을 모두 내었다. 위 논은 윤종상씨가 시범으로 이앙기로 모를 냈는데 잠시 잠깐 새 마쳤다. 이앙기 한 대가 마흔 사람 몫은 더 하는 듯했다.

▲ 친환경 도정공장(정미소)
ⓒ 박도
▲ 친환경 도정공장 원종욱 대표
ⓒ 박도
이제 농업에서조차 사람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나마 일자리도 힘들다고, 수입이 적다고 모두들 농촌을 떠난 현실이다. 다음 일정은 도정시설 견학이다. 거기서 이십 리 정도 떨어진 우천면 두곡리 마을에 있는 '횡성군 친환경 곡류 센터'로 가서 원종욱 대표로부터 친환경유기농업과 도정과정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당신이 평생 선택한 일 가운데 가장 현명한 선택은 농사꾼이 되었다는 것과 유기농업을 하게 된 일이라고 당당히 자랑했다. 일반 영농을 하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 친환경유기농을 하면서 무공해 식품만 먹었더니 저절로 건강해졌다고 하면서 요즘 창궐하는 불치병의 발병원인도 유해 식품에 있다고 체험에서 우러난 말씀을 들려주었다.

이 도정공장(정미소)은 횡성군에서 60% 지원받아 세운 친환경전용 도정공장으로, 일반 곡물은 일체 도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날 견학자를 위하여 특별히 남겨둔 두 부대 벼를 도정하였는데, 지난해 친환경 유기농으로 생산된 마지막 벼라고 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양보다 질을 더 중요시하고, 참살이(웰빙)를 중요시하기에 윤종상씨나 구현석씨의 우렁이 농법 벼는 오래 전에 다 팔려 올 가을 추수 벼를 예약받고 있단다. 듣기에 가장 반가운 이야기였다. 값이 좀 비싸더라도 우리 농산물을, 친환경 유기농법의 농산물을 먹을거리로 삼는 일이 가족의 건강을 지킬 뿐 아니라 우리 농업을 살리고 우리 땅을 살리는 지름길이다.

안팎의 온갖 바람과 시련에도 나라와 겨레를 위해 꿋꿋이 땅을 지키는 젊은 일꾼들이 있기에 그래도 조국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하면서 내 집으로 돌아왔다.

▲ 윤종상 씨가 모내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 박도

▲ 무논에 들어가기 전에 원기소로 마시는 농주.
ⓒ 박도

▲ 요즘 보기 힘든 손 모내기 광경.
ⓒ 박도

덧붙이는 글 | 친환경 유기 농사 문의 : 011-399-7960 (윤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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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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