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오타와 강이 흐르는, 조용하고 깨끗한 수도 오타와 풍경
ⓒ 김윤주
아름다운 5월, 튤립이 가득한 오타와(Ottawa)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일,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오타와를 처음 만난 건 여름 한복판이었기 때문에 그 유명한 튤립 축제를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튤립 없이도 오타와는 충분히 아름답고 고즈넉한 도시였다.

캐나다는 10개 주와 3개의 준 주로 이루어진 총독 중심 연방제 국가이고, 1867년 연방 결성 이후 영국여왕을 상징적인 국가원수로 두고 있다. 러시아 다음으로 세계에서 제일 큰 영토를 가지고 있는 캐나다는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오대호 연안에 거주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보다 북위에 있어 밤이 길고 춥다. '캐나다(Canada)'라는 국명은 '작은 마을'이라는 의미의 '카나타(Kanata)'라는 휴런족의 언어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오타와(Ottawa)'는 그런 나라 캐나다의 수도이다. 행정수도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수도라 하기에는 다소 작고, 조용하고, 매우 한적한 데다 참 깨끗한 느낌의 도시였다. 쓰레기 투기 시 벌금이 어마어마하다고 하는데 그것이 이 도시의 깨끗함을 유지하는 비결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
ⓒ 김윤주
1857년 빅토리아 여왕은 킹스턴, 토론토, 몬트리올, 퀘벡시티 등 다른 후보지를 제치고 오타와를 수도로 정한다. 오타와를 수도로 정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주로 영국계 인구로 이루어진 도시 토론토와 프랑스계 인구가 주가 되는 퀘벡시티의 딱 한가운데에 오타와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두 인종 간의 화합을 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당시 캐나다의 영토는 오늘날의 퀘벡 주와 온타리오 주에 해당하는 영역이었는데, 캐나다의 동부로 통하는 오타와강과 서부로 통하는 리도 운하, 그 두 개의 수로를 이용하기에 가장 용이한 지점이 오타와라는 것 역시 큰 이유로 작용했다.

게다가 1812년 미국과의 전쟁을 통해 국경 지역의 도시들이 공격 대상이 되기 쉽다는 점을 깨달은 캐나다로서는, 당시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던 이 작은 도시 오타와가 수도로 안성맞춤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빨간색이 산뜻한, 캐나다 초상화 미술관의 불어 표지판과 자전거를 즐기는 시민
ⓒ 김윤주
오타와에는 이름난 박물관과 미술관도 많다. 특히나 문명 박물관, 국립 미술관 등은 욕심 나는 곳이었지만 마음을 비우고 연방의사당으로 향했다. 근위병 교대식을 보려고 서둘러 도착해 보니 의사당 바로 앞길 건너편에 빨간 바탕에 하얀 글씨로 표기된 불어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Le Musée du portrait du Canada, 영어로 표기하자면 'The Portrait Gallery of Canada', 캐나다 초상화 미술관이다.

연방의사당 맞은편 건물 벽면을 채우고 있는 산뜻한 빨간색, 그 위에 자리 잡고 있는 프랑스어 낱말들, 그리고 그 앞을 지나는 자전거 위의 한 남자. 이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이 캐나다의 많은 것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셔터를 눌렀는데 지금까지도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는 사진이다.

초상화 박물관은 2만여 점의 그림, 400만 점에 이르는 사진, 수천 점의 캐리커처 등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유명한 인물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초상화도 대다수 포함하고 있다. 역사 속의 수많은 이야기를 돌아보고,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매개체로 평범한 개개인의 초상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참 의미롭게 느껴졌다.

▲ 연방의사당 본관의 높게 솟아 오른 '평화의 탑'과 중앙 광장의 '꺼지지 않는 불'
ⓒ 김윤주
연방의사당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영국풍의 아름다운 의사당 건물도, 드넓은 잔디밭도 아니었다. 그 넓디넓은 잔디밭을 둘러서서 메우고 있는 어마어마한 관광객의 무리였다. 아주 오래전 런던에서도 버킹검궁의 근위병 교대식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 듯했다.

연방의사당은 청록색 지붕을 가진 고딕 양식의 건물로 세 개의 건물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의 넓은 잔디 광장을 중심으로 한가운데 높은 시계탑을 가지고 있는 본관이 길게 서 있고, 그 양 옆으로 동관과 서관이 있다. 동관과 서관은 각각 상원과 하원 건물이며 본관은 상·하원 본회장으로 쓰이는 곳이다.

본관의 한가운데 높이 솟은 탑은 높이가 약 89.5m에 이르는데 '평화의 탑'이라 불린다. 1차 세계대전에 전사한 군인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의 탑으로 탑 안에는 추모실이 마련되어 있다. 또 중앙 광장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라는 이름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실제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캐나다 연방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한 조형물이다.

▲ 연방의사당의 위병 교대식
ⓒ 김윤주
의사당의 높고 뾰족한 시계탑 바늘이 10시를 가리킴과 동시에 근위병들이 입장했다. 125명의 위병들이 펼치는 이 위병 교대식은 7, 8월 중에만 선보이는 이벤트로 아르바이트 대학생들이 상당수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진지한 표정의 위병들 중 누가 아르바이트 중인 대학생일까를 점찍어 보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짙푸른 초록 잔디 위, 빨간 재킷에 까만 바지를 입고 까만 털모자를 쓴 100여 명의 근위병들이 펼치는 교대식은 우리 집 꼬마들의 넋을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워낙 넓은 잔디밭인지라 위병들이 정말 꼬마 병정처럼 느껴졌는데 약 30분간 진행된 교대식 내내 아이들은 무척 흥미로워하는 눈치였다.

근위병 교대식이 끝나고도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우리도 넓은 초록 잔디 위에서 병정놀이를 하며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초록 잔디와 빨간 병정이 만들어 내는 재미난 '놀이'를 즐긴 까닭일까 아이들 표정과 몸짓이 한결 가벼워졌다.

특히나 좀처럼 걷기 싫어하는 우리 집 네 살 박이 막내딸이 발걸음도 가볍게 의사당을 나서는데 가만 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꼬마 병정 같은 위병들과 뾰족뾰족 솟아오른 의사당 건물에서 신데렐라 성을 연상한 것이다. 마치 성 안의 무도회에 다녀온 공주라도 된 듯 일순간 환상에 빠져버린 것. 하긴 고된 여행 중에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꼬마들도 견딜 만하겠지.

▲ 총독관저인 리도홀
ⓒ 김윤주
신이 난 아이들을 태우고 리도홀로 이동했다. 도착해 보니 총독관저로 쓰이는 이곳에서도 위병 교대식이 진행 중이다. 이 역시 여름 한 철만 관광객을 위해 벌이는 행사란다. 총독이 사는 곳을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개방하고, 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공원으로 쓰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유모차를 끌며 담소를 나누는 이들, 다정하게 손잡고 산책 중인 이들,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이 곳곳에 있었지만 리도홀의 정원은 말할 수 없이 고요하고 아늑했다. 이곳을 방문한 각국 원수들이 심어 놓은 나무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이름이 쓰인 작은 나무들도 보였다.

예전에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오타와 대학에 1년 동안 방문 교수로 와 계셨던 어느 교수님께서 이곳을 일컬어 '심심한 천국' 같더라고, 당신은 '재미난 지옥'인 서울이 더 그립더라고 그런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떠나는 길, 깨끗하고 고요한 캐나다의 수도, 아름다운 오타와를 창 밖으로 내다보며 나 역시 문득 두고 온 서울을 떠올리고 있었다.

▲ 의사당의 시계탑과 오타와 강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풍경
ⓒ 김윤주

덧붙이는 글 | 2006년 늦여름, 나이아가라 폭포, 천섬, 토론토, 몬트리올, 오타와, 퀘벡시티 등을 둘러본 캐나다 여행기입니다.


태그:#오타와, #캐나다, #튤립, #연방의사당, #근위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시대를 넘나드는 기호와 이야기 찾아내기를 즐기며,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인문학자입니다. 이중언어와 외국어습득, 다문화교육과 국내외 한국어교육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교수입니다. <헤밍웨이를 따라 파리를 걷다>, <다문화 배경 학생을 위한 KSL 한국어교육의 이해와 원리> 등의 책을 썼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