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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복폭행'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온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1일 밤 남대문 경찰서 유치장에 구속 수감되고 있다. 폭력 혐의로 재벌 총수가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먼저 일면식도 없는 분께 글을 쓰는 게 저에게는 참 어색한 일입니다. 하지만 오늘 뉴스에서 본 회장님의 기자회견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한 아버지의 아들 입장에서 이 글을 드립니다.

회장님은 자신을 '어리석은 아비'라 했습니다. 물론 회장님의 말씀대로 아들의 멍든 얼굴을 보고 순간적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보통의 아버지'일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회장님은 조금 다르셨습니다.

법이 무섭지 않으셨나요

보통의 우리네 아버지라도 피붙이 자식이 밖에서 매를 맞고 왔는데 화가 나지 않는 부모는 한 분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보통의 아버지들은 참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분들이 회장님과 반대로 인격수양이 잘 돼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분명 '법'이라는 게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 자식이 맞고 왔다고 해서 내가 똑같은 방법으로 보복하는 행위는 분명 법에 저촉된다는 상식적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너무 화가 나서 내 아들을 때린 녀석을 똑같이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상황이 끝나고 뒷수습에 들 합의금을 생각하면 그 어떤 아버지라도 멈칫하기 마련입니다.

회장님은 평범한 아버지들이 참 무서워하는 법과 돈 이 두 가지가 전혀 무섭지 않으셨나 봅니다. 재벌 회장이니 '그깟 돈'은 얼마든지 가지고 계셨을 것이고, 그룹 내에 계시는 전직 경찰 간부 출신 고문과 전관예우 자격이 충분하신 전직 판검사 출신 고문들의 얼굴을 떠올리셨나요? 아님 몇 대 때리고 아예 그 자리에서 돈으로 그 사람들의 인격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문제의 초점은 회장님이 '어리석은 아비'라는 것이 아니라 돈이면 국가의 법질서도 무력화할 수 있다는 '회장님의 오만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법과 돈에서 자유로운 재벌의 프리미엄을 아들에게 확인시키고 싶으셨나요? 아니면 자신의 기업경영 방식처럼 세상의 모든 일은 공격적인 해결과 경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래 한화그룹의 주인이 될지도 모르는 아들에게 몸소 가르쳐주고 싶으셨나요?

제가 생각하기에 회장님은 결코 '어리석은 아비'가 아닙니다. 세상의 어떤 아버지도 아들에게 해줄 수 없는 행동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힘을 가지지 못해 세상의 일들에 너무나 무력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우리네 아버지보다 훨씬 '대단한 아버지'였습니다.

한화 임직원과 주주에게 사과하세요

또 하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회장님은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경제인들에게 폐를 끼치고 오해를 사게 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과연 누구한테 먼저 미안해야 할까요?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바로 한화의 임직원들과 주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밤 9시가 넘었는데도 임직원들은 회장님의 구속여부가 걱정 돼 퇴근을 못 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진심으로 회장님을 걱정하는 사원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들 중 일부는 회장님의 아들사랑 덕에 소중한 가족과의 약속을 미뤘을 수도 있고, 안 좋은 몸을 이끌고 억지로 책상에 엎드려 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공식적으로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은 마음이 편할까요? 한화그룹의 미래를 보고 투자한 다수의 주주들에게 미안하지는 않으신지요? 물론 회장님이 그룹의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주주격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재벌그룹이겠지요. 하지만 회장님의 우호주주세력 이외에도 많은 주주님들이 계십니다. 그들은 회장님에게 진정한 회사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그저 스쳐가는 손님 이상의 의미는 아닙니까?

회장님은 다른 재벌 그룹의 이미지 훼손에 대해 사과할 게 아니라 바로 회장 개인에 의해 기업가치가 하락해 피해를 본 주주와 초과근무를 해야하는 한화의 임직원에게 먼저 사과하시는 게 도리가 아닌지요?

한화라는 그룹은 주식회사지 개인이 임의로 경영하는 '가내 수공업'이 아닙니다. 한화라는 회사는 회장님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개인적인 일로 회사 법무팀 소속 변호사를 참여시키고 많은 회사의 경비인력을 마음대로 사용하실 수는 없는 것이지요.

회장님이 일관되게 부인하던 사실을 급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또 반성하는 듯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보고 쇼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회장님이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을 하시고, 아들에게 몸소 실천하신 것처럼 국민들에게도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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