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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4일 밤, 호주의 시드니 올림픽 파크 안에 위치한 에이서 아레나 실내체육관 안에는 비가 내렸다. 강렬한 비트의 리듬을 타고, 혼신을 다해 노래하고 춤추는 만능 엔터테이너 '비'가 만들어낸 폭우였다.

그 비에 젖은 비의 팬들은 끊임없는 환호성을 올렸다. 공연장의 돔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열광의 도가니.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한류가 마침내 시드니를 점령해버린 것 같은 남국의 가을밤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공연장 밖의 시드니한인동포사회엔 끝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먹구름만 잔뜩 끼었다.

<시드니모닝헤럴드>가 '아시안 팝의 경이(Asian pop sensation)'라고 극찬한 비가 처음으로 시드니동포들의 곁에 찾아왔는데, 무슨 연유로 비는 동포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비가 되지 못하고 먹구름이 되었을까?

시드니에 내린 비가 동포 마음 적시지 못한 까닭

▲ '비'의 시드니공연 장면.
ⓒ 신지혜
일단 좋은 쪽으로 분석해보자. 호주에도 마침내 한류의 열풍이 불어 한인동포들이 티켓을 구매하기 전에 동작 빠른 호주사람들이 먼저 구입해서 아쉽지만 집에서 TV나 시청했을 가능성 말이다.

그것도 아니면, 시드니에 한류 물이 잔뜩 든 중국·베트남·일본·말레이시아 등 아시안들의 관람욕구가 한인동포들보다 더 컸던 것일까. 일부 열성 팬들이 일본, 싱가포르 등에서 왔다고 하니, 그럴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을까, 그러나 그 이유는 아주 우울하기 짝이 없는 곳에 있었다. 일부 부유층을 빼면 그렇게 비싼 티켓을 사서 구경할 만한 경제적 여유를 가진 동포들이 많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기 때문이다.

한인 동포신문과 방송에선 비가 뛰어난 가창력과 신기에 가까운 춤 솜씨를 지닌 초특급 스타여서, 한국은 물론 중국과 동남아를 장악한지 오래이고, 머지않아 미국 등 영어권까지 도전할 예정인 '준비된 월드스타'라고 거창하게 전하지만, 비의 공연을 구경하겠다고 1주일치 수입을 한꺼번에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되고 만 것이다.

특히 비의 열렬한 팬들인 일부 한인동포 청소년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파트타임 일을 해서 티켓을 구입한 경우도 있지만, 엄마아빠에게 조르다가 포기한 경우가 더 많았다. 그 여파로 마음고생을 한 부모들도 많고.

티켓 가격이 1주일치 수입... "정신 나갔냐"

'비'의 시드니 공연 다음날인 4월 15일에 만난 스트라스필드 거주 이해영씨는 "비가 공연을 잘 못해서 비난을 받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티켓가격 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티켓문제는 가수에게 비본질적인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서 "주변의 부모들에게 물어보면, 대뜸 정신 나갔냐고 반문한다. 자녀교육 측면에서도 그렇게 비싼 티켓을 사주는 건 나쁘다는 주장인데 그건 나도 동감"이라면서 "비의 호주공연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측면에서 큰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한편, 이스트우드에 거주하는 사업가 S씨는 "나는 초기부터 두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스스로 돈을 벌어서 티켓을 구입하든가 아니면 포기하'라고 말이다. 티켓가격이 웬만한 사람의 1주일치 수입과 거의 맞먹는다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주최 측의 의뢰를 받아 티켓을 판매한 이스트우드 소재 하나식품 주인은 "티켓을 단 한 장도 팔지 못했다. 아예 문의하는 사람조차 전혀 없었다"면서 "그동안 티켓을 많이 팔아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시드니 동부지역 마르부라에 사는 K씨는 "대학교에 다니는 두 딸이 티켓을 구입해서 공연을 관람했다. 처음엔 나무랐지만, 자주 오는 기회도 아니고 어쩌면 그런 콘서트에 갈 수 있는 꽉 찬 나이인 것 같아 눈 질끈 감고 표를 샀다"고 말했다.

한편 시드니 주재 총영사관의 김영수 공보관은 기자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어떻게 보면 가치관의 차이일 수 있다"며 "비 공연을 직접 관람해보니 엄청난 예산이 투입된 공연이었다, 한국의 최고급 공연예술을 호주에 선보였다는 측면에서 그만한 가치를 인정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 가수 비의 시드니 공연 장면.
ⓒ 스타엠
▲ 비의 공연에 열광하는 한국과 동남아 팬.
ⓒ 스타 엠 제공
"도대체 비가 누구길래 그렇게 비싸냐"

기자가 비 공연의 티켓가격을 알게 된 것은 평소에 알고지내는 호주 주류언론의 한 소수민족 담당기자 덕분이었다. 그가 전화를 걸어서 "언뜻 이해할 수가 없다, 주변의 기자들도 다 그렇게 얘기하는데, 도대체 비가 어떤 가수인지 소개 좀 해다오"라고 말한 것.

그는 한 술 더 떠서 "내가 알기로는 비라는 가수를 아는 호주사람이 전혀 없는 것(Nobody knows Rain) 같은데, 왜 그렇게 큰 공연장에다 높은 티켓가격까지 매겼는지 무척 궁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비의 공연티켓은 $399. 이에 비해 현재 최고의 성가를 올리고 있는 비욘세나 핑크, 호주출신 여배우 니콜 키드먼의 남편인 키스 어번의 공연 티켓가격은 $110에서 $130 선이다. 그들의 공연은 곧 같은 장소에서 열릴 예정이다.

호주에선 무명인 비가 세계정상급 가수들의 3배 가까운 티켓가격을 책정한 것이었다. 참고로 미시 히긴스, 델타 구드름, 에스키모 조(록그룹) 같은 호주 정상급 가수들의 공연 티켓은 $60 선이다.

또한 비의 티켓이 매진되지 않은 것과는 달리 이들의 티켓은 판매 한두 시간이면 매진된다. 비욘세나 키스 어반의 티켓도 순식간에 매진됐다. 그럼에도 그들은 티켓가격을 올리지 않는다. 표를 구입하기 위해서 텐트를 치고 밤샘을 하는 걸 감안하면 티켓가격을 올려도 충분히 매진사례일 텐데도 말이다.

그들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정으로 우리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비싼 티켓가격 때문에 오지 못하는 걸 원치 않는다. 특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젊은 팬들을 비싼 티켓으로 쫓아버리면 우리의 설 자리가 금방 없어질 것이다."

이름이 공개되는 걸 거부한 그 기자는 결국 비의 공연을 관람했다. 그러고 나서 하는 말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난 그렇게 큰 규모의 무대세팅과 퍼포먼스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눈이 빙빙 돌 정도로 무대는 화려했다, 그러나 비의 음악성에 대해서 묻는다면 '노코멘트'다, 아직 친숙하지 않은 탓일 것"이라고 말끝을 얼버무렸다.

▲ 비의 공연장인 시드니 에이서 아레나.
ⓒ 스타 엠 제공
"짧은 기간에 준비하느라 소홀한 점 있었다"

비의 공연을 기획한 공연기획회사 (주)민교의 김선영 대표이사는 1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호주시장과 동남아시아 시장 등에서 특별히 내세울 수 있는 공연문화를 갖지 못했는데 이번 콘서트를 통해서 한국의 수준 높은 공연문화를 시드니에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포부로 이번 공연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주)민교는 그동안 조수미, 패티 김의 오페라하우스 공연과 '난타' '앙드레 김 패션쇼' 등을 시드니에 유치해서 한국문화를 호주에 알리는 가교역할을 했다. 특히 '난타' 등 몇몇 공연은 한국문화를 호주주류사회에 전파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손해를 무릅쓰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김 대표이사는 "결국 집까지 팔아야 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지만" 자신의 선도적인 역할로 한국대중문화의 물꼬를 텄고, 그 덕분에 지금은 많은 대중문화이벤트 회사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대표이사는 이어서 "이번 비의 시드니 공연을 한 달 남짓한 짧은 기간에 준비했고, 그것마저 장소와 일정이 바뀌어서 여러 가지 소홀한 점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면서 "특히 티켓가격에 대한 논란은 어느 정도 예상한 대목이었지만 선택의 폭이 아주 좁았다"고 토로했다. 다음은 김선영 대표이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이번 공연을 결산해보았는가?
"공연이 끝난 지 이틀밖에 안 됐고, 비 일행이 오늘 아침에 서울로 떠나서 아직은 어수선한 상태다. 그러나 이번 공연을 통해서 한국대중문화를 거의 모르는 호주 대중문화 종사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소개했다는 점이 가장 큰 소득이다."

"공연규모를 줄일 수 없어 가격이 높았다"

▲ 한인밀집거주지역인 이스트우드의 식품점 앞에 붙은 비의 포스터와 티켓판매 안내문.
ⓒ 윤여문
- 동포사회에서 이번 공연의 티켓가격이 너무 높았다는 비난이 있는데.
"이미 알고 있었고, 진작부터 예상했던 비난이라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최대한 티켓가격을 낮추었고, 가격이 비싸서 공연장에 올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해서 할인티켓을 내놓기도 했는데, 홍보기간이 워낙 짧아서 잘 운용되지 못했다. 그 대목이 큰 아쉬움이 남고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동포 여러분들께 죄송하고."

- 그럴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가?
"잘 알려진 대로 이번 공연은 비의 월드투어 시드니 편이었다. 더구나 처음부터 기획했던 공연이 아니라 중간에 추가한 공연이라서 준비기간이 짧았다. 그러다보니 시행착오가 발생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미 완벽하게 콘티가 짜여진 비의 월드투어 공연내용을 축소시킬 수 없었다. 결국 가격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 비가 서울로 떠나면서 무슨 말을 남겼나?
"역시 공연준비 기간이 짧았던 점을 아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공연준비를 해준 시드니 관계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호주(멜버른)는 자신의 첫 뮤직비디오를 찍은 곳이라서 각별한 애정이 있다면서 다음 호주공연은 더 완벽하게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과 동남아에서 대표적인 한류 스타로 자리잡고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 하기 위해 월드투어를 이어가고 있는 가수 비. 주최측의 신중하지 못한 처사로 한 촉망받는 스타가수, 나아가 한류의 미래에 먹구름이 낄 지 모른다는 우려는 기우일까.

"장소 바뀌어도 연락 없고, 홍보 안돼 공연장 썰렁했다"
호주 누리꾼들, 매니지먼트 잘못 성토 '시끌'

비의 시드니 공연을 보도한 <시드니모닝헤럴드> 기사에 대한 호주 누리꾼들의 댓글이 아주 구체적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댓글은 주로 아시아계 독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아시아계 팬으로 보이는 이들은 비의 공연 자체에 대해서는 '아시아의 스타, 월드 스타'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나, 시드니공연을 주관한 회사의 무성의한 매니지먼트는 강하게 비판했다.

아이디가 'H'인 한 누리꾼은 "3월말에 티켓을 구입했는데, 그후 갑자기 콘서트가 연기되고 장소가 바뀌었지만 이에 대해서 주최 측에서 어떠한 연락도 주지 않았다"며 "비 팬클럽에서 콘서트 변경 소식을 들었고, 이후 직접 문의를 한 뒤에야 사실을 확인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또 다른 누리꾼은 "에이서 아레나 공연장이 다 채워지지 않은 것에 화가 난다"며 "이처럼 훌륭한 공연에 공연장이 채워지지 않은 것은 매니지먼트를 담당한 회사의 책임"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아이디가 'Babe'인 누리꾼 역시 "비의 공연장이 반밖에(에이서 아레나는 2만 1000명 수용 가능) 차지 않은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홍보 부족이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아이디가 'Baker'인 누리꾼은 "보통 아시아의 유명 가수들이 호주에 오면 중국커뮤니티가 모르는 경우가 거의 없으나 이번 비의 공연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 허스트빌에 붙여진 포스터는 딱 2개뿐이었다"면서 "비와 같은 대형 가수가 호주에서 공연을 하는데 이 정도 밖에 홍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멜버른에서 공연을 보러 왔다는 중국인 Yen씨는 댓글을 통해 "인터넷 판매를 한다고 했지만 사이트는 항상 다운된 상태였다"고 주장했고, 'KC'라는 누리꾼은 "비의 팬이 대부분 10대 소녀들인데도 불구하고 티켓이 너무 비싸 팬들이 크게 실망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한 누리꾼은 "카메라를 가져오지 말라고 광고해 가져가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관객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너무 속상했다"는 댓글을 남겼다. 댓글의 내용이나 아이디를 감안하면 대부분 중국계 팬들이 올린 것들이다.

태그:#공연, #티켓값, #한류,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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