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권력은 구름이고 권세는 바람이런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산천을 녹일 듯 한 더위도 한풀 꺾였다. 백악을 타고 내려오는 삼청동 계곡물은 예나 지금이나 졸졸거린다. 권력은 구름이고 권세는 바람이련가. 송현 위를 지나가던 흰 구름이 모아졌다 흩어진다. 소나무 숲 사이에 자태를 뽐내던 취월당은 잿더미로 변했고 현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피 냄새를 맡았을까? 삼각산 바위에서 노닐던 까마귀가 소나무 숲 사이에서 까욱 거린다.

한가위도 넘겼으니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도 예전 같지 않지만 열기로 넘쳐나는 곳이 있다. 순화방 방원의 사저다. 썰렁하던 방원의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80년의 봄 연희동과 흡사하다. 사랑채와 행랑채를 모두 개방했지만 밀려드는 내방객들로 만원 사례다. 바로 앞집 신극례의 집 사랑채도 임시로 터놓았지만 찾아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왕위에 오른 영안군은 생모 한씨를 절비(節妃)로 추존하고 신의왕후로 봉안했다. 아버지가 신덕왕후 강씨에 빠져 소홀히 했던 일을 자식들이 해낸 셈이다. 어느 날 갑자기 왕위에 오른 영안군은 흐트러진 민심을 추스르면서 사회기강확립에 나섰다. 그 시범케이스로 걸려든 것이 기생 국화였다.

조준의 첩이었던 국화는 조준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자 조준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밀고했다. 순군부에서 조사해보니 허위라는 것이 밝혀졌다. 왕은 한강에 침장(沈葬)하라 명했다. 살아있는 사람을 돌을 메달아 강물에 빠트리는 엽기적인 처형이다.

가벼운 형벌로 마무리해도 될 사안이지만 극형을 내렸다. 어느 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희생당하는 사람은 여성과 약자다. 이 사건은 조선이라는 왕조 국가가 칠거지악이라는 이름하에 여성을 억압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대부들이 여성을 보는 시각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나눠먹기 논공행상, "왕을 포위하라"

왕은 공신청을 설치하고 정사공신(定社功臣)을 책록 했다. 정사공신이라는 낱말이 말해주듯이 국가에 공헌한 사람이 아니라 사직을 안정시키는데 공을 세운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의안공 이화, 익안공 이방의, 회안공 이방간, 정안공 이방원, 상당후 이백경, 좌정승 조준, 우정승 김사형, 참찬문하부사 이무, 조박, 정당문학 하륜, 참찬문하부사 이거이, 참지문하부사 조영무를 1등 공신으로 책록했다.

영안후 이양우, 청원후 심종, 봉녕후 이복근, 문하시랑 이지란, 참찬문하부사 장사길, 상의문하부사 조온, 판중추원사 김노, 상의중추원사 박포, 전 중추원학사 정탁, 동지중추원사 이천우, 상의중추원사 장사정, 동지중추원사 장담, 중추원 부사 장철, 우부승지 이숙번, 상장군 신극례, 대장군 민무구, 호조의랑 민무질 등은 2등공신으로 책록 했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인물은 1등 공신에 책록 된 하륜과 2등 공신에 책록 된 이숙번, 신극례, 민무구다. 혁명을 총괄 기획했던 하륜이 비로소 중앙정계에 진출했고 안산군사로 있던 이숙번이 왕의 지근거리에 포진했으며 신극례와 민무구가 군권을 틀어쥐고 있다. 권좌에 오른 새 왕을 호위하고 있는지 임금을 포위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변방을 떠돌던 하륜이 역성혁명 당시 정도전이 그랬던 것처럼 최고의 기획통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정도전처럼 튀지 않고 모나지 않게 처신하는 것이 자신의 꿈을 펼치는데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일찍이 터득한 인물이다. 하륜은 천도후보지로 무악을 주장했고 백악을 반대했던 사람이다. 무학대사가 주장했던 인왕산도 반대했지만 비틀어진 백악이 장자 계승에 방해가 된다는 무학의 통찰에는 동의했었다.

실력과 능력은 천성의 하위 개념이라고?

적자 왕통문제로 소동을 겪은 지금, 무악산 재 천도를 주장할 수도 있었지만 거론하지 않았다. 또 다른 논쟁을 유발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복궁을 중심으로 우백호는 튼실한 반면 좌청룡은 빈궁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때문에 방원이 개경을 떠나 한양에 이주할 때 서쪽 순화방에 집터를 잡아준 것이 하륜이며 여기에서 세종대왕을 낳았다.

백두산 정기를 이어받은 백두대간이 삼각산을 지나 인왕산에 우백호를 낳고 만리재를 넘어 용(龍山)이 한강에 입술을 대고 목을 축이고 있으나 좌청룡 역할을 해야 할 타락산이 메마른 천(川) 청계천에 입을 대고 있으니 곤궁하다는 뜻이다. 요약하면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청룡세가 우백호 세(勢)를 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정도전도 인식하여 흥인문을 흥인지(之)문이라 명명하며 허(虛)함을 보(補)했지만 정작 자신은 경복궁 동쪽 수송방에 살면서 이방원을 넘지 못했다. 훗날,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서인(西人)이 동인(東人)을 박살내는 것을 보더라도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세사도 그렇다. 청구동이 연희동을 넘지 못했으니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잡설에 능한 하륜은 사람에겐 2인자로서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성적으로 우두머리 기질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정도전이 자신의 능력만 믿고 천부적인 한계는 간과한 반면 하륜은 실력과 능력은 천성의 하위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누가 닦아 놓은 길인데 굴러온 돌이 자리를 잡으려 하는가

왕은 공신에 책록된 29인을 한자리에 모아 충성맹약을 받았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물과 기름처럼 보이지 않는 막이 있었다. 이러한 막에 균열이 생긴 사건이 발생했으니 후궁 유씨 문제였다.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이 권력이다. 하물며 형제지간에는 어찌하랴. 권좌에는 형이 앉아 있고 동생 방원은 순화방 사저에 있다.

후궁 유씨는 영안군의 잠저 때의 첩으로 대사헌 조박의 먼 친척 누이동생이다. 일찍이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서 불노라는 아들이 있었으며 죽주에 살고 있었다. 조박이 유씨의 근황을 임금에게 알렸다. 유씨를 애틋하게 기억하고 있던 임금이 유씨와 그 아들을 조박의 집에 잠시 머무르게 한 후 예절을 갖추어 궐내에 들어오게 했다.

유씨를 가의옹주(嘉懿翁主)로 책봉하고 그 아들을 원자(元子)라 하였다. 그렇다면 죽주에 시집가서 낳은 불노라는 아이가 임금의 아들이란 말인가? 누가 닦아 놓은 길인데 원자라니 어림없는 얘기였다. 깜짝 놀란 이숙번이 단 걸음에 순화방 방원의 사저를 찾았다. 보통의 손님은 사랑채에서 만나지만 숙번은 침실로 불러들였다.

"사직을 안정한 지가 지금 몇 달이 되지 않았는데 조박이 공의 가까운 인척임에도 그 마음이 조금 변했으니 그 나머지 사람의 마음도 또한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공께서는 스스로 편안하게 할 계책을 깊이 생각하시고 병비(兵備) 또한 해이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아라."

"우리들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사직을 안정시킨 것은 공을 추대하여 임금으로 삼고자 한 때문인데 지금 원자(元子)라 일컫는 사람이 궁중에 들어와 있으니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공께서 만약 내 말을 듣지 않으신다면 반드시 후회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진실로 필부이니 머리를 깎고 도망할 수도 있지만 공은 매우 귀중한 몸으로서 장차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 <태조실록>

"괘념치 말라고 했잖은가"

방원이 언짢은 심기를 내비쳤다. 형제간의 일이고 남자들의 아녀자에 관한 일이니 참견하지 말라고 숙번을 윽박지르고 있지만 불쾌한 심정은 지울 수 없었다. 이숙번이 "도망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혁명은 유동적이고 미완의 혁명임을 암시하고 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